문화/생활

야구 규칙상 스트라이크존은 좌우는 홈플레이트, 상하는 타자의 가슴에서 무릎까지로 정해져 있다. 그런데 올 들어 우리 프로야구에선 몸쪽과 바깥쪽으로 볼 반 개씩(3.6센티미터) 스트라이크존을 넓혔다. 스트라이크존을 확대한 것은 경기를 빠르게 진행하기 위해서였다.
유영구 KBO 총재가 지난 1월 세미나를 통해 ‘스피드 업’의 필요성을 크게 강조했고, 이후 12초 룰(투수가 준비 동작에 들어간 후 12초 안에 투구), 5회 말 클리닝타임 폐지 등과 함께 스트라이크존 확대 룰이 생겨났다. 빠르고 박진감 있는 경기를 팬들에게 선사하려는 조치의 일환이다.
그러나 스트라이크존 확대에 대한 현장의 우려는 컸다. 스트라이크존은 ‘헌법’과도 같은데 즉흥적으로 뜯어고쳤다는 비판도 나왔다. 적응 기간도 없이 갑작스럽게 도입할 경우 일선 감독과 선수들에게 심각한 혼란을 야기할 수 있다는 걱정도 많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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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 현장의 반발은 예상보다 거셌다. 김성근 SK 감독은 “존 확대는 혁명과도 같은 것이다. 이는 현장의 의사를 무시한 처사”라며 반발했고, 제리 로이스터 롯데 감독도 “차라리 홈플레이트를 키워라”고 비아냥거렸다.
스트라이크존 확대를 제안한 조종규 심판위원장은 지난 2월 일본의 스프링캠프를 돌며 감독들에게 배경을 설명했다. 캠프 경기에 심판들을 파견해 새로운 스트라이크존 시범을 보이기도 했고, 3월 시범경기에선 본격적으로 새 룰을 적용했다. 그러면서 각 구단은 새로운 스트라이크존에 어느 정도 적응하려는 듯 보였다.
하지만 막상 시즌에 돌입하자 혼돈의 상황이 조성됐다. 일부 선수들은 바뀐 스트라이크존 규정에 적응하지 못해 발을 동동 굴렀다. 규정을 바꾼 심판들의 기준 없는 판정도 불만을 더욱 키웠다.
볼 반 개가 아니라 한 개 이상이 빠진 투구에 대해서도 스트라이크 판정을 받는 경우가 나오면서 선수들의 항의는 경기마다 끊이질 않았다. 7월 초 현재 7명의 감독과 선수들이 심판 판정에 항의하다 퇴장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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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볼 판정은 심판마다 개인 차이가 있다. 사람의 육안으로 판정을 내리기 때문에 달리 보이는 것은 어쩔 수 없다. 요는 심판 개개인이 얼마나 판정에 일관성을 갖고 있느냐다. 비슷한 볼에 대해 양 팀에 모두 비슷한 판정을 내린다면 큰 문제가 되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 스트라이크존 확대로 심판의 재량이 더욱 커지게 됐고, 이에 따라 판정이 들쑥날쑥할 가능성이 높아졌다. 이러다 보니 불리하면 일단 물고 늘어지는 아전인수식 해석과 맞물려 충돌이 증폭될 수밖에 없었다.
일관성의 결여는 신뢰성에 치명적인 타격을 입혔다. ‘판관’의 판결에 의심부터 보낸다면 건강한 사회가 될 수가 없다. 지금까지는 별 논란이 없었던 볼 판정에 노골적인 불만이 쏟아지면서 결과적으로 심판들의 신뢰성이 땅에 떨어졌다.
스트라이크존의 혼돈은 심판부의 재편에서도 원인을 찾아볼 수 있다. 올해부터 심판부는 새로운 실험을 했다. 1군을 4개조에서 5개조로 늘리고, 한 조가 돌아가면서 2주일간 2군에서 근무하는 방식을 취한 것. 5개조가 되면서 자동적으로 2군 심판 5명도 1군조에 포함됐다. 2군 심판들의 기량과 위상을 높이기 위한 조치였다.
그러나 아무래도 실전 경험이 적은 심판들이 1군 경기에서 주심 마스크를 쓰다 보니 실수가 자주 나왔다. 1군 투수들의 볼 스피드나 변화구 각도, 제구력 등에 완전하게 적응하지 못한 상황에서 바뀐 규정을 적용하다 보니 순간적으로 애매모호한 볼 판정이 늘어난 것. 더욱이 ‘12초 룰’까지 생기면서 심판들은 두 가지를 한꺼번에 신경 써야 하는 처지가 됐다.
심판들은 적응 기간이 어느 정도 필요한데도 감독과 선수들이 기다려주지 않았다고 입을 모은다. 한 심판은 “심판들도 사람이고 육안으로 관찰하기 때문에 초반에는 익숙하지 않은 면도 있었다. 베테랑들은 큰 어려움이 없지만 경험이 적은 심판들은 고생할 수밖에 없다. 적응할 때까지 기다려주지 않은 게 문제”라고 지적했다.
심판들은 시즌 초반에는 비교적 스트라이크존을 넓게 설정하면서 자신의 존을 가다듬어간다. 어찌 보면 이러한 적응기에서 현장과 거센 충돌이 벌어진 셈이다.
주목할 만한 것은 스트라이크 판정 문제가 심각해지자 심판들이 슬그머니 예전의 스트라이크존으로 판정 기준을 바꾸고 있다는 점. 실제로 최근 감독이나 선수들 중에는 “존이 다시 좁아진 것 같다”며 공공연한 사실로 받아들이고 있다.
최근 며칠 동안 볼 판정에 대한 어필이 줄어드는 걸 보면 감이 잡힌다. 심판들도 논란이 벌어지는 것을 달가워할 리 없으니 결국엔 보수적인 판정을 내릴 수밖에 없다. 고친 헌법이 다시 무용지물이 될 판국이다.
KBO 관계자는 현장의 책임도 지적한다. 새 규정을 도입하는 과정에서 현장에서 충분한 목소리를 내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 관계자는 “감독들은 지난 1월 세미나에 참석하지 않았다. 코치와 구단 관계자들이 나왔지만 별다른 말이 없었다. 그래서 2월 심판위원장이 캠프를 돌며 자세히 설명했다. 그때 항의하고 시행을 늦추자고 의견을 낼 수도 있었다”며 불만스러워했다. 이 때문에 논란의 책임을 모두 심판에게 돌릴 수 만은 없다는 목소리도 적잖다.
이번 스트라이크존 파동은 심판의 권위 추락과 함께 주먹구구식 정책에 또 한 번 경종을 울렸다. 치밀한 준비 없는 정책 시행으로 난맥상을 보여주면서 씁쓸한 뒷맛을 남겼다.
글·이선호 OSEN 야구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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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K-공감누리집(gonggam.korea.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