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생활


“해외에 나갈 때마다 대형 서점에 꼭 들렀어요. 그런데 어느 나라에서도 변변한 한식 요리책을 찾기 힘들더군요. 얼마나 속상하던지…. 제대로 된 한식 책 하나 꼭 내야겠다고 결심한 지 6년 만에 마무리를 하게 됐네요.”
한국전통음식연구소 윤숙자(61) 소장은 자식 같은 책들을 꺼내보였다. 기자의 앞에 펼쳐진 책은 2008년 펴낸 <아름다운 한국음식 300선>과 최근 나온 2탄 격인 <건강밥상 300선>. 두 권의 책으로 6백 종 한식의 표준 조리법을 담은 ‘표준화’ 시리즈가 완간됐다.
“전 세계 어느 누가 요리하더라도 동일한 ‘한국의 맛’을 낼 수 있도록 준비했어요. 한국을 찾은 외국인은 물론, 요리 초보자도 좋은 맛을 낼 수 있도록 정확한 조리법을 담았습니다.”
윤 소장은 ‘손맛’을 강조해온 기존의 두루뭉술한 조리법이 한식 세계화의 걸림돌 중 하나라고 지적한다. 식당마다 맛이 다른 데다, 자칫하면 수준 이하의 한식을 외국인에게 선보이기 쉽기 때문이다.
“2년 전 홍콩에 간 적이 있는데, 한류 바람이 한창일 때였죠. 그때 만난 현지 한국문화원 관계자가 ‘한국에 가서 한식을 먹어보고 실망했다는 홍콩 사람들이 많다’고 하더라고요. 제멋대로 된 조리법으로 요리를 하니 어떻게 한식의 맛을 제대로 살렸겠어요. 이대로 두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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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나온 <…300선>은 농림수산식품부와 문화체육관광부의 지원으로 만들었다. 대표 음식 3백 종을 고르고 골라 선정했으나 ‘추어탕은 왜 없느냐’ ‘닭볶음탕도 있었으면 좋겠다’는 의견이 여럿 들어왔다. 3백 종 정도는 더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에 2차분 발간을 결심했다. 여기에 드는 비용은 윤 소장이 직접 댔다. 집필에는 각 대학 조리학부 교수 등 연구원 15명이 참여했다. 이 책에는 6백 종 요리가 밥, 찌개, 생채, 조림 등 종류별로 찾기 쉽게 분류돼 있다.
특히 다듬기 전 재료의 분량은 물론, 조리 후 중량, 총 조리시간 등을 명시해 초보자라도 쉽게 만들도록 배려했다. 센불, 중불, 약불에 몇 분을 끓여야 하는지도 명확하게 제시했다. 
‘한국적인 맛’을 살리기 위해 16세기 <수운잡방>, 17세기 <요록>, 18세기 <증보살림경제> 등 고서들을 꼼꼼하게 살폈다. 기존 요리 전문가들의 저서도 샅샅이 훑었다. 하지만 권위 있다는 조리서도 ‘파 한 대’ ‘마늘 한 쪽’ 식으로 모호하게 분량을 적어놓은 경우가 많았다. 그대로 만들어보면 분량이 지나치게 많거나 맵고 짜기 일쑤였다. 결국 음식 한 가지 조리법을 완성하려면 적어도 예닐곱 번을 다시 만들어야 했다.
“책에 담긴 맛은 맛에 대한 훈련이 된 전문가들이 ‘최고의 맛’으로 인정한 맛입니다. 모양새는 깔끔하면서도 적당한 크기로 준비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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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애를 먹은 음식은 장아찌였다. 최소한 한 달은 장 속에 둬야 맛을 알 수 있기 때문에 한번 실패하면 다시 만드는 데에 시간과 공이 크게 들었다. 석 달짜리는 싱겁고 1년짜리는 짜서 5개월 혹은 6개월짜리로 다시 담갔다.
땀도 많이 흘렸다. 모인 연구원들이 주로 교수이다 보니 여름방학 기간에 작업을 집중적으로 진행했다. 에어컨이나 선풍기를 켜면 불꽃이 바람에 따라 흔들려 불땀이 일정하지 않았다. 하는 수 없이 연구원들은 모든 냉방장치를 끄고, 뜨거운 불 앞에서 국을 끓이고 전을 부쳤다. 윤 소장은 “여름 내내 땀띠로 크게 고생했다”고 혀를 내둘렀다.
재료를 모두 국산으로만 쓰다 보니 제철 나물이 없을 때가 큰 문제였다. 봄에 잠깐 나오는 세발나물, 원추리나물 등은 다시 무치다 보면 어느새 시장에서 사라졌다. 어쩔 수 없이 다음 해로 조리법 정리를 미뤄야 했다.
조리법을 완성하고 나니 더 높은 ‘산’이 기다리고 있었다. 과연 일반인도 조리법대로 만들 수 있을까. 윤 소장은 연구소 초보자반 수강생 40명을 불러 조리법대로 만들어보도록 했다. 초보자들도 잘하는 건 그대로 살리고 어렵다고 하면 다시 쉽게 바꿨다.
외국인에게도 쉬운 조리법인지 확인하기 위해 10년째 한국에 살고 있는 미국인 부부를 불렀다. 일단 시중에 나와 있는 영어 조리법 책을 보여주고 갈비찜을 시켰다. 조리법대로 그들이 만들어낸 것은 갈비찜이 아니라 갈비탕이었다. 물의 양이 불분명하고 얼마나 끓여야 되는지도 명기돼 있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부부는 윤 소장의 책을 보고서야 갈비찜 조리에 성공할 수 있었다.
‘표준화’ 시리즈의 가장 큰 장점 중 하나는 9대 영양소 정보다. 식생활이 서구화할수록 건강을 위협하기 쉬운 트랜스 지방 등의 함유율을 분명히 밝혔다. 영양소 분석은 한국식품연구원이 맡았다. 윤 소장은 “각 학교나 회사 급식 담당 영양사가 따로 계산을 하지 않더라도 바로 만들 수 있도록 꼼꼼하게 신경 썼다”고 말했다.
글·신정선(조선일보 엔터테인먼트부 기자)
<아름다운 한국음식 300선> 한국전통음식연구소 지음 / 질시루 펴냄·3만원
<건강밥상 300선> 윤숙자 지음 / 질시루 펴냄·3만원

한영용(43) 호원대 식품조리학과 교수는 25년 경력의 한식 요리 전문가다. 열아홉 살 때 음식 세계에 발을 들여놓은 뒤 포장마차 ‘사장님’에서 특급호텔 조리사까지 이 분야에서 안 해본 일이 거의 없다. 특히 전통발효식품 개발에 남다른 애착을 가져왔다.
1999년엔 직접 개발한 ‘짜지 않은 간장’으로 발효시킨 게장 음식점을 열어 화제가 됐다. 그가 생각하는 ‘한식의 세계화’란 어떤 것일까.
“문화는 나라마다 다양합니다. 먼저 그런 다양성을 인정하는 것이 한국문화를 세계에 알리는 기본자세라고 생각해요. 음식도 마찬가지죠. 우리 음식에 대한 생각을 달리해야 합니다. 우리만의 ‘밥상’을 차려놓고 외국인들에게 그대로 맛보라고 강요하는 것이 세계화는 아닙니다. 지금은 한국 사람들이 중국 김치를 즐겨 먹는 시대입니다. 일본도 자국 김치의 세계화를 위해 다채로운 변화를 시도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 또한 김치에 커피를 뿌려 먹을 수도 있다는 열린 자세를 가져야 해요.”
이런 이유로 한 교수는 한식의 세계화를 위해 학계 주도로 표준화 모델이 논의되고 있는 것은 우려스럽다고 했다. 오히려 표준화가 한식의 개성과 다양성을 훼손할 수 있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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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마다 집집마다 김치맛, 장맛이 제각각인데 어떻게 한식을 표준화할 수 있다는 것인지 모르겠어요. 한식에 녹아들어 있는 다채로운 손맛과 개성을 간과하는 위험한 발상이라고 생각합니다.”
한식의 조리법을 억지로 꿰맞춰 ‘레시피’화하는 것에 부정적인 한 교수는 “한식의 특수성을 이해하는 것이 세계화를 위해 먼저 할 일”이라고 강조했다. 그리고 한식의 개성을 살려내는 데 무엇보다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이 발효식품이라고 했다.
특히 그는 ‘장’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한식은 서양음식의 맛인 5미(味), 즉 쓴맛, 단맛, 신맛, 짠맛, 매운맛에 발효미가 더해져 차별화되는데, 이 맛은 곧 ‘장’에 달려 있다는 것이다. 그는 아예 “장이 빠진 음식은 한식이 아니다”라고 말할 정도다. 줄기차게 발효미를 변화시키려는 노력이 한식의 차별화를 위한 첩경이라 말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서양 사람들은 염도가 낮고 향기가 있는 소스를 직접 음식에 뿌려 먹습니다. ‘드레싱’ 개념이죠. 그런 사람들에게 무작정 짜디짠 ‘조선간장’을 주면 먹을까요? 우리 간장도 바꿔야 합니다. 외국인들이 우리 간장을 음식에 뿌려 먹을 수 있도록, 스테이크에 직접 묻혀 먹을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게 우리가 할 일이죠. 그러려면 염도를 낮추고 향을 내기 위해 봄철 냉이를 간장에 넣고 숙성시킨다든가 하는 노력이 있어야 해요. 시중에 판매하는 간장은 솔직히 간장이라고 보기 어렵죠. 공장에서 화학적으로 제조된 ‘약품’에 가까워요. 아무리 보기 좋은 신선로며 갈비를 외국인 앞에 내놓는다 해도 그런 간장을 쓰면 무슨 의미가 있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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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요즘 그는 보이차가 함유된 간장을 개발하느라 여념이 없다. 보이차는 녹차를 완전 발효시킨 것이다. 이것을 간장에 넣고 다시 발효를 시키니 두 번의 발효를 거친 간장이 만들어지는 셈이다.
“녹차엔 카로틴 등 항암물질이 함유돼 있을 뿐 아니라 염도를 낮추는 효과도 있어요. 발효 과정에서 녹차 특유의 향이 간장에 퍼지기도 합니다. 발효되면서 노랗고 하얀 곰팡이가 나오는데 이것들은 몸에 좋은 곰팡이죠. 한마디로 ‘신개념 간장’이라 할 수 있죠.”
한 교수가 외국인에게 가장 추천하고 싶은 발효식품은 어떤 것일까. 그는 주저 없이 막걸리 식초가 들어간 고추장을 먹어본 기억을 떠올린다.
“10년 전 전라도에 사는 친척 결혼식에 간 적이 있어요. 결혼식 음식 중에 홍어무침이 있었는데 오로지 홍어와 고추장으로만 무쳤더라고요. 보통 홍어무침은 오이도 넣고 해서 맛이 ‘버라이어티’에 가깝지 않습니까. 별 생각 없이 맛을 봤는데 깜짝 놀랐어요. 향수를 뿌린 것처럼 열매향이 나고 꽃맛이 나더군요. 알고 보니 막걸리 식초를 섞은 고추장이 맛의 비밀이었어요. 식초 균이 쌀의 효모를 먹고 배설을 하는데, 그 배설물인 초균이 독특한 향과 맛을 낸 겁니다. 아마 외국인들도 회를 그 고추장에 찍어 먹으면 깜짝 놀랄 겁니다. 이런 걸 개발해내야 한식을 전 세계로 확산시킬 수 있어요.”
이처럼 고집스럽게 발효식품, 우리 장맛의 세계화에 몰두하고 있는 한 교수는 정작 국내에서 발효식품 전문가가 양성되지 않는 데 대해 진한 아쉬움을 드러냈다.
“국내 대학에 조리학과가 2백 개가 넘는데 전통발효식품을 전문으로 가르치는 곳은 하나도 없어요. 조리사 지망생들이 한식의 뿌리를 파고들기보다는 그저 화려한 꽃 만들기에만 열중하고 있는 것 같아 걱정스럽습니다.”
아쉬움을 뒤로하고 그는 다시 ‘발효 여행’으로 빠져든다. 진정한 ‘한국의 맛’에 도달하기 위한 험난한 여정이 기다리고 있다.
글·유재영 기자/사진·조영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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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K-공감누리집(gonggam.korea.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