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으로 바로가기

문화/생활

<제47호>조세희의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

[SET_IMAGE]2,original,center[/SET_IMAGE] [SET_IMAGE]3,original,left[/SET_IMAGE]1970년대 말, 독재와 가난의 사슬이 한반도를 무겁게 내리누르던 시절, 조세희의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일명 난·쏘·공)은 우리에게 충격이었고 새로운 개안(開眼)이었다. 난쟁이 아버지와 그 가족의 이야기는 당시 사회상의 가장 실제적이면서도 동시에 상징적인 자화상이었다. 평생을 막노동으로 살아온 아버지, 인쇄소에서 접지 일을 하는 어머니와 각종 잡일을 도맡아하는 나, 또한 인쇄소와 철공소의 조수 역할을 하는 영호, 그리고 강남 부동산업자 2세에게 몸을 팔아 집문서를 찾아오는 빵집 점원 영희, 이들의 삶 자체는 ‘실제’였던 것이다. 그러나 사회적·경제적·문화적 소외의 전형인 난쟁이 아버지는 당시 독재와 가난의 압제에 살고 있던 민중의 상징이었고, 남편의 고통을 모두 이해하고 온 마음으로 끌어안은 그의 아내는 한국적 모성의 상징이었다. 또한 가난하지만 정의로운 나, 가난하지만 순진한 동생 영호, 그리고 가난하지만 그 가난의 질곡에 대해 자기 식으로 저항했던 동생 영희는 모두 그 시대 군상들의 상징이었던 것이다. 끝내 난쟁이 아버지는 처절하게 하늘을 향해 있는 굴뚝 위로 올라가 자신의 희망인 종이비행기를 날리다가 굴뚝 아래로 몸을 던지는 비극의 종말이었지만, 영희에게 나타난 피 흘린 아버지의 모습 뒤에 까만 쇠공이 쏘아 올려지고 있기에 그것은 또 다른 역설적인 희망을 말하고 있다. 그러나 그 희망은 결코 눈부시다거나 찬란하지 않고 까만색의 무거운 쇠로 만들어진 공이기에 역설적이다. 현실에서 구현되지 않을 것 같은 ‘역설의 희망’인 것이다. ‘난·쏘·공’이 나온 지 30년 가까이 흐른 지금 이 책을 다시 읽는 이의 눈에 새로운 감흥이 이는 것은 이제 다 지나간 한때의 회한어린 우리 사회의 ‘어둠’에 대한 추억 때문만이라 할 수 없다. 아직도 ‘난·쏘·공’에서 보여준 사회상은 우리 시대에서 가시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SET_IMAGE]4,original,right[/SET_IMAGE]수십만 명이 넘는 결식아동과 결식노인, 1만 명의 노숙자, 기초생활보장 대상자 150만, 차상위계층 350만 명…. 나열하기 고통스러운 이 통계 뒤에 감추어진 우리의 이웃은 바로 이 시대의 난쟁이 아버지이고 어머니이고 그들의 자식일 수 있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참여정부가 추진 중인 양극화 해소는 필요한 것이다. 최근 불거진 양극화의 문제는 이러한 동시대 문제로서의 공감이 과장이 아니리라 고백하게 한다. 소득의 양극화, 교육의 양극화, 정보의 양극화, 주거의 양극화, 임금의 양극화, 의료의 양극화, 소비의 양극화 등 수없이 많은 측면의 양극화는 아직도 우리 사회의 한구석에서 가파르게 굴뚝 위를 오르며 희망을 쏘아 올리는 절망의 군상들이 엄존한다는 사실을 인정하게 한다. 이러한 절망이 우리 사회에서 우리 내부를 좀먹고 갉아먹는 한, 우리 사회의 한 편에서 쏘아 올리는 샴페인은 ‘그들만의 축제’일 뿐 우리 모두의 기쁨일 수는 없을 것이다. 진정코.


지금 정책주간지 'K-공감' 뉴스레터를 구독하시고,
이메일로 다양한 소식을 받아보세요.
구독신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