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생활

구불구불 이어지는 골목 저 끝에는 무엇이 있을까 궁금해 자꾸만 걸어가고 싶은 곳. 어릴 적 기억 속 한 장면 같은 오래된 가게들이 동네 단골손님들을 맞는 곳. 마을버스에 올라타면서 낯익은 이웃사촌들과 눈인사를 건네는 곳.
북촌은 서울 한복판에 자리 잡고 있으면서도 타임머신을 타고 되돌아간 것처럼 아련한 옛 모습이 남아 있는 동네다. 북촌 주민이 된 지 10년째인 영화 칼럼니스트 옥선희(52) 씨가 펴낸 책 <북촌 탐닉>은 이 동네의 소박하고 은은한 옛 정취에 대한 진한 애정과 이제는 정말 조금밖에 남지 않은 우리네 옛것을 오래도록 붙들어두고 싶다는 깐깐한 염려를 담았다.
“북촌의 멋이 우리를 끌어당기는 것은 사람 사는 모습이 옛날 그대로 남아 있어서인데 점차 상업화, 관광화하고 있어 제 모습을 잃을까 안타깝습니다.”
옥 씨는 10년 전 북촌 원서동에 보금자리를 마련했다. 어릴 적 고향 수원의 한옥에서 살던 그에게 한옥집이 많은 북촌이 정겹게 느껴졌고, 운전을 하지 않는 터라 사대문 안 어디든 걸어다닐 수 있는 서울 한가운데 자리한다는 점이 마음에 들었다. 책 읽고 글 쓰는 일이 직업인 그에게는 정독도서관이 가까이 있다는 것도 큰 매력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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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 와서 가장 먼저 반한 것은 가지를 친 듯 미로처럼 이어지는 북촌의 골목길 기행이었다. 묵은 세월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 있는 골목골목을 따라 비탈길을 오르다 보면 어느새 발아래로 탁 트인 전망이 자연경관과 어우러지고, 정겹게 이어지는 지붕들 위로 붉은빛을 던지는 석양이 아름다웠다.
“삼청공원을 지나 서울 성곽길을 걷는 산책길도 좋고, 청와대 옆을 지나 자하문 밖으로 이어지는 코스도 산책하기 좋지요. 중앙고등학교 교정을 지나 창덕궁 후원까지 걷는 길도 참 고와요. 장을 보고 싶으면 통인시장, 종로5가 꽃시장, 명동까지 걸어다닐 수 있고요.”
또한 북촌은 경복궁과 창덕궁 사이에 있고 뒤로 산을 끼고 있는 데다 골목 안으로 차가 못 들어오는 곳이라 공기가 여간 깨끗하지 않다. 서울 한복판이지만 차 소리가 안 들리고 소음이 없어 집 안에 있으면 절간처럼 조용하다고 한다.
“그뿐인가요. 술집, 여관 같은 유해환경이 없어 아이들한테 좋고 시골 공동체의 분위기가 남아 있어 노인들 살기에도 좋습니다. 북촌을 떠나 다른 데로 이사 갈 생각은 한 번도 해본 적이 없어요.”
이렇게 만나는 사람마다 북촌 예찬을 전하다 보니 “말로만 하지 말고 책으로 한번 써보라”는 권유를 받았다. 동네 주민만이 찾을 수 있는 골목길에 대한 정보, 터줏대감처럼 지켜온 가게들에 대한 단상에다 ‘지금의 삼청동 동양문화박물관 자리는 조선시대 정승 맹사성의 집이었는데, 매일 소를 타고 피리를 불며 궁궐로 출근했다’는 등의 역사 이야기 등을 꼼꼼하게 모아 책을 펴냈다.
3년 전부터는 한국을 찾는 외국인에게 홈스테이를 제공하고 있다. 작은 집이지만 남는 방 하나에 손님을 재워주고 아침밥을 해주면서 한국을 알리고 외국 문화를 체험하는 일도 북촌에 살기에 누릴 수 있는 일상의 작은 즐거움이다. 보통 일주일 남짓, 길면 3주 정도 묵고 가는 외국 손님들과는 돌아간 뒤 e메일로 안부를 전하는 친구가 되기도 한다. 홍콩에서 한국 여자친구를 만나러 왔다 실연당하고 떠난 청년 브라이언은 옥 씨의 책에 실린 사진들을 찍어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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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 씨는 25년째 영화에 관한 글을 쓰는 것 외에 서울 YMCA, ‘미디어세상 열린사람들’ 등의 시민단체에서 미디어 비평을 해오고 있다. 1990년대에는 서울 YMCA ‘좋은비디오숍’을 운영했다. 불법 다운로드가 한국 영화의 부가시장인 비디오산업을 붕괴시키는 과정을 누구보다 가까이에서 지켜봤던 그는 “나 하나쯤이야 하는 불법 다운로드가 모여 한국 비디오시장을 삼켜버린 것처럼, 하나둘씩 북촌 주택가로 들어오는 상가들로 인해 북촌의 옛 모습이 사라져갈까봐 걱정된다”고 했다.
북촌이 한옥마을로 지정되고 유명해지면서 집값이 오르자 돈 있는 사람은 한옥을 사서 리모델링한 뒤 갤러리 카페나 파티 장소로 만들고, 돈 없는 사람은 북촌을 떠나게 되는 지금의 현실을 누군가 ‘강력한 손길’을 뻗어 막아주기를 바라는 것이 솔직한 심정이라고 했다.
“북촌에 살다 보니 좋은 환경과 아름다운 공간에는 사람을 건강하게 만들고 행복하게 해주는 기운이 확실히 있다고 믿게 됐어요. 지금까지 망가지고 변한 거야 할 수 없으니 이제라도 이 좋은 환경과 기운을 보존했으면 좋겠습니다.”
그는 “오래된 방앗간과 40년 된 목욕탕, 할머니 약사가 약을 지어주는 약국같이 북촌의 풍경을 구성하는 주민 시설은 북촌이 사람 사는 동네로 남아 있어야 유지될 수 있다”고 말한다. 그러나 북촌이 총리 공관을 빼곤 온통 카페와 식당, 액세서리 가게가 점령한 삼청동처럼 변할까봐 걱정이다.
“지금까지 너무 빠른 속도로 변해왔으니 이제는 멈추고 생각을 해야 할 때가 아닌가 싶어요. 사람의 마음을 끌어당기는 북촌의 매력은 관광지가 아니라 사람 사는 동네로 남아 있을 때 계속 살아남는 것이지요. 북촌의 예스럽고 고즈넉한 멋과 넉넉하게 안아주는 기운 안에서 오래오래 살고 싶습니다.”
글·오진영 객원기자 / 사진·조영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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