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으로 바로가기

문화/생활



 

여름맞이 통과의례처럼 주룩주룩 내리던 봄비가 처마 끝에서 잠시 숨을 고른다. 동그랗게 부풀어 오르기 무섭게 바닥에 떨어지는 빗방울의 경쾌한 리듬에 맞춰 통유리창 너머 한복 차림의 여성이 시선을 잡아당긴다.

조심스럽게 문을 열고 들어서니 네모난 패널 안에 그 여인이 서 있다. 사진인가 싶더니 갑자기 눈을 깜박인다. 치마에 새겨진 도자기 문양이 화사한 연꽃 문양으로, 또 가지런한 고무신 문양으로 변화를 거듭한다. 마치 한 권의 사진첩처럼 제작된 이 기발한 영상은 텍스타일 디자이너 장응복(49) 작가가 아이디어를 낸 것이다.

서울 종로구 안국동의 갤러리 아트링크. 이곳에선 ‘숨은 꽃(Hidden Flowers)’이란 주제로 그의 작품 전시회가 5월 30일까지 열리고 있다.

우리 고유의 미감을 살린 텍스타일, 가구, 인테리어 디자이너로 유명한 그는 패브릭 브랜드 ‘모노콜렉션’의 대표로 활동하며 최고급 아파트 모델하우스의 인테리어 작업에도 참여해왔다.

전시실의 한쪽 방에서는 황백색 한지 테이블이 기다랗게 늘어선 채 발광다이오드(LED)의 은은한 불빛을 뿜어냈다. 건너편 방은 정선의 <금강산도>와 민화의 이미지를 응용해 만든 열두 폭 한지 병풍이 차지하고 있었다. 더 안쪽으로 들어가니 바닥에 환한 모란꽃이 피어 있는 가구가 보였다.





 

장응복 작가는 보는 각도에 따라 느낌이 다른 이 한지 가구를 “가장 애착이 가는 작품”으로 꼽았다. 그는 “조선시대에 관복을 보관하던 옷장에서 착안해 10년 전부터 준비해온 ‘조각’이다. 간결하고 검소한 외양과 달리 부귀영화를 상징하는 모란꽃이 좋은 기를 뿜어낸다”고 작품 설명을 덧붙였다. 기의 흐름과 음양의 조화, 여백의 미는 그의 모든 작품을 이어주는 공통분모다.






 

그는 이번 전시의 주된 재료로 한지를 사용했다. 한지는 숨을 쉬며 빛과 공기의 순환을 원활하게 만들어 예전엔 옷장에 바르거나 한옥의 창호지로 쓰였다. 우리 고유의 정서를 품은 단아한 인테리어 아이템이 전통과 현대, 자연과 삶의 조화를 추구해온 장응복 작가의 작품세계를 제대로 느끼게 한다.
 

글·김지영 기자 / 사진·조영철 기자

갤러리 아트링크 Tel 02-738-0738



지금 정책주간지 'K-공감' 뉴스레터를 구독하시고,
이메일로 다양한 소식을 받아보세요.
구독신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