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생활

연말연시는 평가의 계절이다. 학생은 성적표로, 샐러리맨은 인사 고과로, 기업은 결산으로 지난 한 해의 학점을 평가받고 새해를 준비한다. 정치에도 학점이 있다. 후보자는 당락 여부와 득표율로, 정당은 의석수로 평가받는데 그 필요충분조건이 유권자의 정치 참여다. 유권자의 정치 참여 학점은 투표율이다. 그런데 지난해 12월 19일 17대 대선의 유권자 학점이 영 시원찮다. 투표율이 63.0%로 대학 학점으로 치면 겨우 C 수준이다. 우리 국민의 대선 학점이 처음부터 이리 나쁘진 않았다. 국민의 손으로 직접 대통령을 뽑은 역대 대선 투표율을 보면 3대, 4대 대선에는 A학점 이상이었다. 물론 4대 선거는 부정선거로 얼룩져 4·19의거를 촉발시켰지만, 그 이후 간선제 체육관 선거로 바뀌기 전까지 투표율은 80%대로 B학점 이상을 유지했다.
1987년 이후 네 차례 대선 … 26.2%포인트 하락
1987년 6월 민주항쟁의 결과 대통령직선제가 다시 열린 그 해 투표율은 89.2%. 반올림하면 A학점이다. 그런데 그 이후 투표율은 5년마다 9~10%포인트씩 미끄럼을 탔다. 20년 동안 네 차례의 대선을 치르면서 26.2%포인트나 낮아졌다. 투표율 하락은 선진국 현상이자 세계적 추세로 인식돼 왔다. 하지만 이게 달라지고 있다. 과거 낮았던 미국 대선 투표율이 1996년 49%, 2000년 51.2%, 2004년 60.7%로 점차 높아지는 추세다. 2007년 5월 프랑스 대선 결선 투표율은 84.0%를 기록했다. 2007년 덴마크 총선은 86.6%, 2006년 스웨덴 총선은 82.0%의 투표율을 나타냈다. 이들 선진국과 비교할 때 한국의 대선 투표율은 너무 급격하게 떨어졌다. 정치에 대한 무관심과 불신, 혐오의 결과라고들 하지만 20년 사이 A학점에서 C학점으로 주저앉은 것은 아무래도 너무 지나치다. 대선이 이럴진대 국회의원을 뽑는 총선 학점이라고 괜찮을까? 1992년 14대 총선까지 70%대를 지켰던 투표율이 15대 63.9%, 16대 57.2%, 17대 60.6%로 C학점의 굴레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민주주의 최고 통치자는 유권자, 제 권리 찾아야
유권자 열 명 중 넷이 기권하는 현상이 고착화하면 정치인과 정치행위만 왕따를 당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 정부 정책에 대한 신뢰도가 떨어지고 추진력이 약해져 국가경쟁력을 좀먹고 민주주의를 후퇴시킨다. 정치는 정치대로, 정부는 정부대로, 국민은 국민대로 따로따로 헛바퀴만 돌고 만다. 정치판 행태가 싫어서, 찍을 만한 사람이 없다는 이유로 기권하는 유권자가 많아질수록 정치 발전 기회는 그만큼 줄어든다. 어쨌든 투표는 해야 내 손으로 정치인, 정치, 나라를 바꿀 수 있다. 미국 루스벨트 대통령이 말했다. “민주주의의 최고 통치자는 대통령, 의원, 관료가 아니라 유권자”라고. 유권자들이여! 새 학년, 새 학기 총선 학점은 좀 더 높여보자. 적어도 다시 B학점으로!
글 | 양재찬 (중앙일보시사미디어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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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K-공감누리집(gonggam.korea.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