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생활

영화는 역사를 얼마만큼 표현할 수 있을까. 영화에는 감독의 역사관이 드러나지만 영화를 보면서 그 안의 역사에 대해 사유하는 것은 관객의 몫이다. 최근 아일랜드가 비약적인 경제 성장으로 세계를 놀라게 하고 있다. 1987년 ‘사회연대협약’(Social Partnership) 이후 노·사·정(勞使政)이 양보와 화합을 통해 IT산업을 발전시켜 성과를 이뤄낸 것이다. 경제성장뿐 아니라 고유 언어인 게일어의 회복과 역사의 영화화 등 문화적인 면에서도 주목을 끌고 있다. 닐 조던 감독은 역사를 다루면서 인간적인 따뜻함을 느끼게 함으로써 더욱 호소력을 가진다. 그가 아일랜드 독립운동가 마이클 콜린스에 대해 직접 각본을 쓰고 영화를 만들었다.
1916년 4월 더블린에서는 영국 지배에 저항하고 아일랜드공화국을 선포하는 부활절 봉기가 일어난다. 항쟁 끝에 투옥되었던 마이클 콜린스는 석방되자 과감하게 독립운동을 추진한다. 그를 감시하던 형사를 감화시키고 그 형사를 통해 역으로 정보를 얻어내며 게릴라전을 벌인다. 영국 경찰을 공격하고, 그 보복으로 축구장에서 총기난사 사건이 벌어지며 피가 피를 부르는 상황들이 계속되자 마침내 영국이 휴전을 제의하고 협상을 요구한다.
마이클 콜린스는 자의가 아닌 타의에 의해 영국과의 협상에 나간다. 협상 조건인 여왕에 대한 충성과 북아일랜드 독립 포기를 수락하자 이제 그를 민족 배신자로 보는 사람들까지 생긴다. 마이클 콜린스는 더 이상 전쟁을 원하지 않았고 저항할 군사적 여력도 없었다. 1922년 자치령 아일랜드 자유국이 탄생했으나 그는 과격파에 의해 암살된다. 마이클 콜린스는 이념을 넘어서 동지를 포용하려 했고 현실적 판단을 중요시한 인물로 그려진다. 무력과 희생을 통한 방법이었지만 마이클 콜린스가 주도한 게릴라전은 영국과의 협약을 이뤄냈다. 49년 마침내 아일랜드는 완전한 독립국이 됐다. 게릴라전 성공은 700년이 넘는 영국의 지배 아래 고통 받던 아일랜드 국민의 협조와 지지가 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96년 제작된 이 영화가 개봉되자 영국과 벨파스트에서는 역사를 왜곡했다는 거부운동이 벌어지기도 했지만 11년이 지난 지금 많은 정치적 현안이 해결됐다. 98년 북아일랜드평화협정으로 분쟁지역이었던 벨파스트에 평화가 왔고 2007년 역사적인 공동자치정부가 출범했다. 이 영화는 평화에 대한 열망을 일깨워준다. 영화라는 작업으로 세계적인 소통을 시도하는 것이 갈등 해결과 상호 이해에 힘을 주지 않았을까. 영화를 찍을 당시 수천 명의 더블린시민들이 기꺼이 무보수 엑스트라를 맡아 강한 역사의식을 보여주었다. 새로운 세대들에게 역사를 기억하게 하는 것이 역사의 바른 물줄기를 놓치지 않는 길일 터이다.
87년 6월 민주화 열망에 시민들이 한 마음으로 거리로 나섰다. 6월 항쟁은 한국정치에서 장기간 지속된 군사독재체제를 민주주의체제로 이행하게 한 역사적 사건이다. 광주항쟁으로부터 이어지는 민주화운동의 정점이라 할 수 있는 6월 항쟁을 되돌아볼 수 있는 연구서로 <6월 항쟁과 한국의 민주주의>(정해구 김혜진 정상호 지음,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2004년)가 있다. 6월 항쟁과 이를 통한 민주화 이행은 한국 민주주의 역사에서 대전환의 계기가 되었지만 민주화 이행 이후 한국의 민주주의가 기대만큼 진전을 이루었던 것은 아니다. 경쟁과 자기 이익에 기울어지는 세태를 극복하고 연대와 합의에 이를 수 있을 때 민주주의는 발전하고 개인의 삶도 진정 풍요로워진다. 각각의 이해관계에 고착된 시선을 버리고 전체의 시각에서 국민적 통합을 지향하는 것이 6월 민주항쟁의 의미를 이 땅에 뿌리내리게 하는 지름길이다.
정혜경 <자유기고가>
K-공감누리집의 콘텐츠 자료는 「공공누리 제4유형 : 출처표시 + 상업적 이용금지 + 변경금지」의 조건에 따라 자유롭게 이용이 가능합니다. 다만, 사진의 경우 제3자에게 저작권이 있으므로 사용할 수 없습니다. 콘텐츠 이용 시에는 출처를 반드시 표기해야 하며, 위반 시 저작권법 제37조 및 제138조에 따라 처벌될 수 있습니다.
[출처] K-공감누리집(gonggam.korea.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