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생활

막다른 상황에서는 희망이 이루지 못할 꿈처럼 아득하게 여겨질 때가 있다. 그래도 희망은 공기와 같아서 우리는 희망 없이 살아갈 수 없다. ‘1번가의 기적 ’는 재개발확정지역 청송 1번가에서 일어난 꿈과 희망을 그린 휴먼 코미디 영화다. 윤제균 감독은 철거촌이나 자신의 삶에서 느꼈던 체험들을 가슴으로 담아보려고 했다고 말한다. 우리 주변에서 듣던 아픈 이야기들을 웃음과 따뜻함으로 엮어 함께 웃고 공감하게 만든 게 이 영화의 미덕이다.
조직폭력배 필제는 주민들의 이주동의서에 도장을 받기 위해 에쿠스를 타고 거들먹거리며 `1번가에 들어선다. 수돗물마저 자주 끊어지는 산동네. 이제까지 당연히 누렸던 삶과는 너무나 다른 갑갑한 환경 속에서 필제의 기적이 시작된다. 딱한 동네 사정을 외면하지 못하고 1번가 사람들의 삶에 엮여 버려 빗물 막아주는 옆집 아저씨로 변해가는 필제. 이웃에는 권투선수 명란이 살고 있다. 동양챔피언이었던 중환자 아버지에게 보여줄 게 권투밖에 없어 복서가 되었다. 쓰러지기 직전에도 아버지를 위해 10라운드를 견뎌내는 명란이 “아직 괜찮아요”라며 글러브를 쳐들고 두들기는 탄력있는 소리는 보는 사람 마음에까지 투지를 불러일으킨다.
필제가 동네에 들어서면서부터 맞닥뜨린 어린 남매 일동과 이순은 웃음을 주며 영화를 감칠맛나게 하는 주역이다. 모욕과 아픔을 뚫고 아이들은 자란다. 물장난 속에서 울려 퍼지는 건강한 웃음소리와 배경 노래가 화창하다. 감독은 이 동네의 건강함과 밝음이야말로 기적을 낳은 자산이라고 주장하고 싶은 듯하다. 산동네를 철거하려고 들어갔던 필제가 동네의 보호자가 되는 기적같은 변화 과정이 무리없이 와 닿는다.
집이 철거되는 것을 보고 우는 아이들을 돌려 세우고 필제는 새 집을 달라고 기도하라고 한다. 아이들의 간절한 기도에 응답하기 위해 필제는 에쿠스 승용차를 포기해야 했다. 1번가의 ‘기적’은 오토바이가 고급 승용차로 변하는 과정이 아니라 승용차가 오토바이로 줄어드는 기적의 역발상을 보여준다. 기적은 바로 아픔을 함께하는 마음에서 일어난다. 에쿠스는 오토바이가 되어버렸지만 일동과 이순은 암에 걸린 할아버지를 위해 그렇게 얻고 싶어했던 토마토가 주렁주렁 달린 비닐하우스에서 엄마와 함께 살게 된다.
인간이 추구할 수 있는 기적은 판타스틱한 기적이 아니라 열린 마음에서 이루어지는 나눔과 희망이 이루어내는 기적일 것이다. 장면마다 나오는 욕설과 비어가 웃음을 주기도 하지만 과연 필수불가결한 것일까. 폭력적 장면들이 더욱 절제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인문학교육을 통해 사회 소외층에 자기 성찰과 비판적 사고의 기회를 주자는 움직임이 세계적으로 일어나고 있다. 뉴욕에서 가난한 소외계층을 상대로 1995년부터 시작한 클레멘트코스는 우리나라에서도 다섯 곳에서 개설되었다. 광명시 평생학습원에서 강의를 했던 성공회대학 교수들이 번역한 <희망의 인문학> 개정판이 나와 있다. 창설자인 얼 쇼리스가 기적을 만드는 클레멘트 코스를 열게 된 과정과 목적, 교육과정에 대해 구체적으로 기술한 것이다. 인문학 교육으로 고양된 한 사람의 자존감은 그 한 사람에 그치지 않고 세상을 진화시키는 기적의 연결 고리가 될 수 있다. 이것은 소외층에만 해당되는 이야기가 아닐 것이다. 세상의 아픔을 나누어 짊어지려는 치열한 노력은 언제나 아름답다.
정혜경 <자유기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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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K-공감누리집(gonggam.korea.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