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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생활

배영희 교수의 음식 이야기 | 냉콩국


[SET_IMAGE]2,original,left[/SET_IMAGE]이곳저곳 식당 입구에 ‘냉콩국 개시’가 붙은 걸 보니 한여름이긴 한가 보다.   
더운 여름에는 냉면이라 하지만, 예나 지금이나 입맛 없는 삼복더위엔 냉콩국이 제격이다. 하얀 국수사리에 뽀얀 콩국물을 부은 냉콩국은 더위에 지친 심신에 활력을 주는 진정한 여름 보양식이다.

콩은 밭에서 나는 고기라고 할 정도로 단백질과 지방이 풍부한 식품이다. 콩에 들어 있는 단백질은 농작물 중 최고요, 구성 아미노산의 종류도 육류에 결코 뒤지지 않는다.

콩은 날것으로 먹으면 거의 소화가 안 되고 익혀 먹어도 65%가량밖에 소화가 되지 않는다. 날콩은 비린내가 날 뿐 아니라 특수 성분으로 소화효소인 트립신의 작용을 방해하는 트립신 방해제가 있다. 그러나 이 유해물질은 열에 아주 약하기 때문에 익혀 먹으면 문제가 되지 않는다.

조선 말기 요리책인 ‘시의전서(是議全書)’에서는 콩국수 만드는 법을 “콩을 물에 담가 불린 다음 살짝 데쳐서 가는 체에 걸러 소금 간을 맞춘 후 밀국수를 말고 그 위에 채소 채 친 것을 얹는다”라고 간단히 표현하고 있다.

이때 콩을 제대로 다루는 법이 맛난 콩국수를 만드는 비법이다. 약한 불에서 뚜껑 있는 냄비에 물을 넉넉히 담고 불린 콩을 넣어 익히게 되는데 콩이 잘 익었나 판단하는 기준은 색이 노란 색을 띠고 비린내가 가시며 달차근한 냄새가 날 때다. 이 시간이 더도 덜도 아니어야 적당하게 콩을 익힐 수 있으며 끓어 넘치지 않게 조심스레 물을 뿌려 가며 익힌 콩은 재빨리 물에 담가 껍질을 벗기고 찬물에 담가 식힌다.

식으면 맷돌이나 블렌더(믹서기)에 조금씩 넣고 곱게 갈아 콩국을 낸다. 혹 거칠면 면보나 거즈에 걸러 콩국물만 받을 수도 있지만 요즘은 기계가 좋아 곱게 간 후 물을 부어 콩국의 묽기를 맞춘다.

삶아서 사리지어 놓은 밀국수에 소금 간을 해서 깔끔하게 맛을 낸 콩국을 부어내면 그것이 여름을 이기는 우리식 여름 별미이니, 이토록 단순하면서도 겉치레 없는 음식 하나를 만들기 위해 불리고, 삶고, 식히고, 갈고, 밭치고 하는 과정을 거쳐야만 하는 콩국이야말로 진정한 슬로 푸드(Slow Food)의 대표 원조 음식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콩국에 어울리는 찬이라면 무엇보다도 가룻국 넣어 만든 잘 익은 열무김치가 아닐까?

뿌연 김칫국물 속의 아작거리는 열무김치를 한 저 집어 콩국수 위에 올려 씹는 촉감과 새콤한 맛은 고소하고 담백한 콩국과 천생궁합이다. 요즘은 오이채도 얹고, 수박도 얹고, 오이나물, 버섯나물을 얹어 놓기도 하지만 콩국에는 콩맛을 느끼게 하고 맛과 향의 혼합 없이 단출함 속에서 여름의 시원함을 느끼게 하는 열무김치가 음식을 제대로 즐기게 만드는 찬물일 것 같다.

냉장고 속 하얀 유리그릇의 물속에 잠겨 있는 노랗게 삶아진 콩알들을 보고 있노라면 정갈함과 담백함, 소박함과 정성이 있는 우리네의 여유로운 정서를 보여주는 맛과 멋이 있는 한국의 음식을 보는 것 같다.

오산대 호텔조리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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