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생활

새해가 시작되는 정월 초가 되면 가족끼리 모여 세배를 하고 차례를 지낸다. 설날 아침에 조상에게 올리는 세배는 정조차례(正朝茶禮)라고 한다. 또한 설 차례는 떡국을 올린다 하여 ‘떡국차례’라고도 일컫는다. 차례는 본래 제사를 간소하게 지내는 ‘약식 제사’라 할 수 있다. 그리고 ‘차례(茶禮)’라는 말에서 알 수 있듯 원래 의미는 ‘차를 올리는 예’로, 조상의 신주를 모신 사당에서 매월 보름에 찻잔을 올리는 예에서 비롯됐다. 이 사당에 올리던 차례가 명절 제사로 남게 된 것이다.
차례상에 오르는 음식은 종류도 다양하지만 지역에 따라 큰 차이가 있다. ‘남의 제사에 감 놔라 배 놔라 하지 말라’는 속담에서도 알 수 있듯이 차례 음식은 지역은 물론 집안에 따라서도 다른 경우가 많다.
그렇다면 그리 넓지 않은 우리나라의 차례상 음식이 왜 지역마다 이렇게 다른 것일까. 그 이유를 찾자면 먼저 우리나라의 씨족사회적 특성을 짚고 넘어가야 한다. 예부터 우리나라는 같은 성씨끼리 모여 사는 씨족사회로 지역의 근간이 이뤄져왔다. 같은 혈족이다 보니 체질도 비슷하다. 그러한 체질은 같이 모여 사는 지역에서 나는 음식을 섭취하면서 형성됐을 터. 또 하나, 성씨를 일컫는 ‘씨(氏)’는 바꿔 말하면 종자다. 종자에 따라 맺는 열매가 다르듯, 사람도 성씨에 따라 체질이 달라 몸에 맞는 음식이 다르다. 그 집안이 모여 사는 지역의 특산물이 그 집안 성씨의 체질에 맞는다는 얘기다.
이는 흔히 회자되는 ‘신토불이’와도 일맥상통하는 것이다. 이렇게 각 지역에서 뿌리내리며 살아온 선조들은 자연스레 그 지역에서 나는 음식을 제사상에 올리게 됐다. 그러다 보니 지역마다 차례 음식이 달라지게 됐다. 차례상은 각 지역마다 어떻게 다를까. 제사는 ‘가가례(家家禮)’라 해서 각 집의 풍습에 따라 다른 경우가 많지만 큰 틀에서 지역별 특색을 띠는 제물 위주로 소개해본다.
경기지역은 조선시대부터 한양을 포함한 중심지로, 통북어를 구이적으로 꼭 올렸다. 북어를 다산과 풍요의 상징으로 여기며 중요시했기 때문이다. 또 녹두를 갈아 배추를 고명으로 넣고 만드는 녹두전을 부침전으로 올리기도 한다. 생선은 다른 지역에 비해 적게 올린다. 예부터 생선 가운데 으뜸인 굴비를 올렸으나 요즘은 참조기나 가자미를 올리기도 한다.
경북지역, 특히 대구 쪽은 적으로 참상어살을 구워서 올린다. 대구 사투리 ‘돔배기’로 더 많이 알려졌는데, 특히 영천이 돔배기 특산지로 유명하다. 경남지역은 바다를 옆에 끼고 있어서 어물을 제사상에 많이 올린다. 조기뿐 아니라 민어, 가자미, 방어, 도미 등 여러 종류의 생선을 올리고 조개 등의 어패류를 올리는 지역도 있다. 생선포도 북어포만 올리지 않고 대구포, 가오리, 피문어 등을 함께 올리는 경우가 많다. 안동에서 유명한 안동식혜는 그 지역의 차례상에 빠지지 않고 오르는 제물이다. 삭히지 않은 엿기름과 고춧가루로 만든 안동식혜는 소화불량의 명약으로도 알려져 있다.
삼도가 인접한 충청도는 다양한 제물을 올리기로 유명하다. 경북에 인접한 지역에서는 건어물인 대구포, 상어포, 오징어, 가오리포, 피문어 등을 올리고 호남과 인접한 지역에서는 말린 홍어, 병어, 가자미, 낙지, 서대묵 등을 올린다. 바다가 인접하지 않은 내륙 지역에서는 배추전, 무적 등 전과 부침류를 많이 올린다고 한다.
전라도는 제사상에 홍어를 올리는 것이 특징이다. 잔치 때 절대 빠지지 않는 음식이 홍어이다 보니 제사상에도 반드시 오르는 제물 가운데 하나다. 먹을거리가 풍성하고 음식문화도 발달한 지역이어서 제사상에는 다양한 음식이 오른다. 병어나 낙지, 그리고 남도 쪽에서 많이 나는 꼬막 같은 어패류도 단골로 오르는 제물이다.
대부분이 산간지방인 강원지역은 나물과 감자, 고구마를 이용한 음식이 많다. 특히 메밀꽃으로 유명한 평창은 차례상에 반드시 메밀전을 올리며, 감자전이나 무와 배추로 만든 적을 올리기도 한다. 버섯류도 부침이나 전의 단골 재료. 특히 송이 같은 귀한 버섯은 소적으로 구워내 제사 음식으로 올린다. 어물이 많이 나는 동해와 강릉지역의 차례상에는 명태포와 생선전이 빠지지 않는다.
지금은 교통이 발달해 도서지역이라 해도 못 구할 농수산물이 없다. 하지만 옛날에는 제주도 같은 섬에서는 농산물이 육지와 많이 다를 수밖에 없었다. 제주도는 다른 지역에서 볼 수 없는 특산물이 많으니 제사 때도 그런 음식 위주로 상을 차렸다.
특히 옥돔처럼 제주도에서만 잡히는 생선이나 전복 등을 차례상에 올린다. 근래에는 제주도에서 재배하는 다양한 과일들이 상에 올라온다. 귤은 물론 파인애플 같은 열대과일까지 올린다고 하니 우리나라의 차례상도 기후변화에 따라 점점 변해갈 듯하다.
명절 때면 귀가 따갑게 홍동백서(紅東白西), 조율이시(棗栗梨枾) 등의 사자성어가 넘실댄다. 왜 그런 말들이 생겼는지 정확하게 아는 사람은 많지 않은 듯하다. ‘조율이시’는 말 그대로 棗(대추), 栗(밤), 梨(배), (감) 순으로 제사상을 차려야 한다는 뜻이다.
그런데 이 말의 유래를 엄밀하게 따지면 ‘조율이시’가 아니라 ‘조율시이’가 옳다는 설도 있다. 즉 대추는 씨가 하나라 임금을 의미해 맨 왼쪽 상석에 올린다는 말이 있고, 통씨라서 순수한 혈통을 의미한다고도 한다. 밤은 밤송이 하나에 보통 세 톨이 들어 있어 3정승을 의미해 두 번째에 놓이고, 감은 씨가 여섯 개여서 6조 판서를 의미해 세 번째에 놓이게 됐다. 또한 배는 씨가 여덟 개라서 8도 관찰사를 의미하니 네 번째에 놓여야 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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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이런 얘기가 분명히 기록으로 전해지는 것은 아니다. 또한 홍동백서는 붉은 제물은 동쪽, 하얀 제물은 서쪽에 놓는다는 의미인데 지금은 청사과도 재배되니 이 또한 현재 차례상에는 맞지 않을 수 있다. 좌포우해(左脯右 ·포는 왼쪽, 젓갈류는 오른쪽)나 어동육서(魚東肉西·생선은 동쪽, 육류는 서쪽) 등의 진설법을 나타내는 한자성어에는 중요한 의미가 내포돼 있다. 선조들이 후손에게 음식을 통해 건강하게 오래 살 수 있는 비결을 알려주고 있는 것이다.
예컨대 좌포우해에서 보듯 왼쪽의 말린 포보다 오른쪽에 있는 젓갈류가 우리 몸에 더 좋은 것이고, 서쪽에 놓는 육류보다 동쪽(오른쪽)의 생선이 더 좋으니 자주 먹으라는 뜻이다. 또한 차례상에 놓인 순서를 보면 밥과 국 밑으로 탕(찌개류), 불에 구운 적, 채소류, 과일 등으로 차려지는데, 이는 사람이 식사를 할 때도 손에서 가까운 음식부터 먹어야 건강에 좋다는 선조들의 ‘밥상 지혜’를 보여준다.
이렇듯 차례는 단순히 상을 차리고 절만 하기 위해 지내는 요식행위가 아니다. 우리 후손들이 선조들로부터 이어온 음식문화와 지혜가 담긴 음식 섭생법을 알기 위한 소중한 전통교육인 것이다. 요즘 세태를 보면 차례상을 너무 가볍게 여기고 선친이 좋아했다는 이유로 빵과 과자를 올리기도 하지만, 선조들이 가르쳐온 건강한 식문화가 잊혀져선 안 될 것이다.
글·조창윤(가례원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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