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생활

지난 2007년. 민간단체가 중심이 되어 지리산과 제주도에서부터 시작된 장거리 도보길 조성 사업은 많은 사람의 주목을 받고있다. 전 국민적 걷기 열풍이 이어지면서 최근 몇 년 사이 전국적으로 수많은 길이 조성되거나 조성 중에 있다. 이미 60여 년 전부터 시작된 외국에 비해 많이 늦었지만, 그 자체만으로 환영할 만한 일이다.
다만 지역의 문화와 환경을 존중하면서 대안적 지역 발전의 모델로서 걷는 길을 구상했던 민간부문의 애초 의도와는 달리 중앙부처별로 유사 사업에 경쟁적으로 뛰어들면서 여러 문제점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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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처 간 걷는 길 관련 사업의 중복 문제가 심각하다. 동일 공간에 유사 사업이 중복 시행되면서 사업이 시너지 효과를 내지 못하고, 오히려 예산이 낭비되는 결과를 초래하고 있다. 이는 탐방로상에 하드웨어 시설을 과도하게 설치하면서 오히려 자연 및 경관을 훼손하는 결과를 낳기도 한다.
또 이용자에게 혼란을 일으키기도 한다. 동일 공간 안에 여러 부처가 조성한 다양한 이름의 탐방로가 존재해 탐방 서비스의 질을 떨어뜨리는 것이다.
지속적인 관리·운영 계획이 무엇보다 중요함에도 불구하고, 우선 조성부터 하고 보자는 식의 사업 방식 또한 짚고 넘어가야 할 문제 중의 하나다.
중장거리의 선형 공간을 이어주는 사업의 특성상, 특히 중앙부처 단위에서는 국토 전역을 밑그림에 깔고 광역 간 네트워크에 대해 고민해야 한다. 그런데 실제 조성 과정을 보면 각 부처별로 한정된 공간 범위 내에서만 사업을 진행하고 있을 뿐 부처별 협력체계를 갖춰 전 국토적 관점에서 네트워크를 구상하고 있지 않다.
부처별 기본 계획상에는 거의 모두가 길의 위계를 국가급·광역급·지역급으로 나누고 있지만, 실제 조성 운영되고 있는 탐방로에는 이런 구분이 지켜지지 않고 있다. 중앙부처는 중앙부처대로, 지자체는 지자체대로 종합계획 없이 사업이 개별적으로 이뤄지고 있기 때문에 이런 결과가 나타난다.
이는 길의 구분을 애매하게 만들 뿐만 아니라 안내 체계의 중복 등으로 이용자에게 혼란을 주기 쉽다. 따라서 걷는 길을 조성할 때, 전체 공간에 대한 계획을 부처 공동으로 세운 뒤, 공간별로 관계 부처가 책임지고 조성하는 권역별 조성 사업 시행 하고 운영과 관리는 민간단체와 해당 지자체가 공동으로 책임지는 지혜가 필요하다.![]()
이를 위해서는 국가 탐방로 제도(National Trail System)의 도입이 시급하다. 적어도 국가를 대표하는 국가급 탐방로의 경우 조성계획에서부터 향후 운영·관리 계획까지 관련 부처가 모두 참여하는 ‘국가 탐방로 종합계획’을 수립하여 보다 체계적으로 탐방로를 조성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부처별 장점을 살려 상시 협력체계를 구축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환경부는 자연 자원을 보호하고 관리하는 부서의 특성상 국립공원 같은 보호구역을 통과하는 탐방로 사업을 총괄하면 된다.
산림청은 국유림 등 산림 지역을 통과하는 탐방로를, 국토부와 행안부는 안전한 도로 보행을 위한 인도 개설 및 각종 안전시설, 안내시설의 설치 등을 관할하면 된다.
문화체육관광부는 콘텐츠 및 프로그램 개발, 관리·운영 계획수립 등 국가 탐방로 전체의 종합계획을 수립하는 등 컨트롤 타워 역할을 하면 좋을 듯하다.
현재 민간단체가 발굴하여 조성하는 사업 외에 중앙정부가 지원하는 사업의 대부분은 지자체의 실리에 의해 조성된다. 이는 실제 현장에서 길 조성 사업의 키를 쥐고 있는 것은 해당 지자체임을 의미한다.
지금까지 대부분의 지자체에서는 중앙 부처의 예산 확보 차원에서 큰 틀에서의 계획 없이 그때그때 사업을 시행하여 왔다. 이러다보니 같은 지자체 내에서도 해당 실·과별로 사업 연계가 안 돼 걷는 길이 서로 연계되지 못하고 단절되기 일쑤다.
특히 광역권 탐방로의 경우 인접 지자체 간 협력이 이뤄지지 않으면서 그 연결이 끊기거나, 기형적으로 연결되는 등의 여러 문제가 발생하고 있다. 지자체의 개별적 역량 부족도 그 원인이지만, 예산만 내려보낼 뿐 지자체와 구속력 있는 협력체계를 만들어내지 못한 중앙 부처의 책임도 크다.
적어도 광역급 규모의 걷는 길 사업에 있어서는 지자체와의 긴밀한 협력체계를 구축하고, 지자체를 견인할 수 있는 체계적이고 세부적인 사업 가이드라인을 제시해야 한다.
각 부처별로 조성을 위해서는 적지 않은 예산을 배정하지만, 길 조성 이후 그 길의 유지·보수 비용과 함께 최소한의 운영을 위한 예산에 대한 배려가 없다. 오히려 전체 예산 중 하드웨어 관련 조성사업 비중을 줄이고, 일정기간 동안 관리·운영 예산을 지원함으로써 탐방로가 빠른 시일 내에 정착할 수 있도록 그 기반을 만들어주는 것이 훨씬 바람직하다.
또한 제도와 예산은 중앙 단위에서 마련하되, 지속적인 관리·운영을 위해서는 NPO(Non Profit Organization·비영리기구) 같은 민간 기구를 육성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결국, 관리·운영의 주체는 지역의 민간부문이 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걷는 길 사업으로 인해 지역 경제가 활성화될 수 있도록 사회적 일자리를 지원하는 등 다양한 형태의 정책적인 지원 또한 절실하다. 외국에 비해 많이 늦었지만, 지금이라도
현재까지 나타난 여러 문제점을 파악하여 긍정적인 의미에서 출발한 걷는 길 조성 사업이 연착륙할 수 있도록 민관 모두 힘을 모아야 할 때이다.
글ㆍ윤정준 (한국의길과문화 상임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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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K-공감누리집(gonggam.korea.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