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생활

몇 년 전부터 강원도 대관령 눈꽃마을에서부터 경포대와 정동진 등으로 이어지는 트레킹코스 바우길 탐사에 나섰다. 제주도에 올레길이 개척된 이후 고향 사람들을 만나면 강원도의 옛길에 대해서 말했다. 마을 안에 있는 길들은 자동차가 다니는 길로 모두 넓혀지고 포장됐지만 이 마을에서 저 마을로 마을길보다 더 빠르게 갈 수 있는 산길은 그대로 남아 있지 않으냐고.
제주 올레길이 부상한 이후 많은 제의가 와도 선뜻 나서지 못했던 것은 그것이 나의 창작활동에 방해가 되지 않을까 하는 우려 때문이었다. 그런데 주말에 고향에 내려가 마을과 마을을 잇는 옛길을 걷다 보니 고향을 떠나 있는 작가로서 우선 내가 고향의 정서를 듬뿍 느끼며 지친 심신에 많은 위로를 받는 것 같았다. 마치 그 길의 정령과 나무들의 정령이 내 발끝을 통해 올라오는 것 같았다. 이렇게 이따금 시골길을 걷는 나 자신이 이렇게 좋은데 내 조상 대대로 내려오는 옛길을 찾아 마을과 마을을 잇는 트레킹 코스를 개발하면 이곳을 찾아오는 손님들도 즐겁고 고향사람들도 좋아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길이나 사람이나 이름이 중요한지라 길 이름도 강원도 정서에 맞게 ‘바우길’이라고 정했다. 그것은 강원도 감자바우를 상징하기도 하고, 그리스 신화보다 이천 년 이상 앞선 바빌로니아 신화에 나오는 건강의 여신(Bau) 이름이기도 했다.
한 코스든 여러 코스든 자신이 사는 곳 가까이 걷고 싶은 길이 있으면 주말의 생활이 달라진다. 걸어서 몸에 좋고 자연과 함께하니 마음에도 여유가 생긴다. 그런데 나 자신이 걷는 길을 개척하다 보니 여기에도 몇 가지 패턴이 있는 듯하다. 강원도 바우길처럼 지자체로부터 일절 지원을 받지 않고 순수 민간단체가 자신들만의 힘으로 개척하는 데가 있는가 하면 지자체가 앞장서서 주도적으로 개척하는 데도 있다. 일장일단이 있겠지만 순수하게 민간의 힘으로만 개척을 하다 보면 길 개척에 돈 들어갈 일은 아예 피해 버린다. 작은 나무 다리를 놓으면 더 멋지게 길을 연결할 수 있는 곳도 멀찍이 돌아서 길을 낸다.
그러지 않고는 방법이 없기 때문이다.
예산을 가지고 있는 지자체의 후원을 받거나 지자체 스스로 길을 내는 경우는 때로 굳이 돈을 들이지 않아도 될 곳에까지 돈을 들이는 경우가 많은 것 같다. 그것은 전국 각지에 산재해 있는 마을 등산로만 봐도 그렇다. 자연 상태로 두어야 할 곳에 방부목을 깔고 경사가 그다지 심하지 않은 곳에도 인공적으로 계단을 설치해 소와 말이 등에 짐을 싣고도 걸을 수 있던 길을 이제는 사람만 걸을 수 있게 만들어버린다.
옛길은 누구의 이익을 위한 길이 아니라 어제와 오늘의 삶을 잇고 일과 휴식과 놀이를 잇는 길이다. 부디 전국의 길을 여는 사람들 모두 순리대로, 또 자연 그대로 길을 개발했으면 좋겠다. 바로 그럴 때 길이 빛난다.
글·이순원
소설가 (사) 바우길 이사장 한국길모임 초대 상임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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