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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생활

가정의 빈자리 채워주니 ‘비행’ 사라졌다





“아버지가 보고 싶어요.” 5학년 1학기 시작하는 날 자기소개 시간. 영호(가명)는 ‘지난해에 아버지가 돌아가셨다’는 말로 자신을 소개했다.

쉬는 시간에 교실에 앉아 “아버지가 불쌍해, 불쌍해”라고 중얼거리기도 했다. 늘 찡그린 얼굴로 학교와 집을 오가던 영호는 오래지 않아 학교폭력에 연루되기 시작했다. 학생들과 다투는 것은 물론이고, 자전거 도난사건에 연루되어 경찰의 감시까지 받았다.

여름방학이 되어 학교에서 단체로 연수를 떠났다. 여기에서 영호가 드디어 일을 저질렀다. 자신을 놀린 6학년 학생의 눈썹 밑을 부러진 우산대로 찔렀다.

사건을 해결하기 위해 영호의 집에 전화를 건 서울 등마초등학교 김중환 교사(당시 정목초등학교 재직)는 충격적인 얘기를 들었다. 영호가 아버지의 자살 장면과 어머니의 음독자살 시도 장면을 목격한 후로 달라졌다는 것이다.

김 교사는 부인에게 영호의 이야기를 했다. 부인은 “이번 여름방학만이라도 영호의 아버지가 되어 아이의 마음을 어루만져주라”고 했다. “우리 딸들은 고등학생이라 공부에 바쁘니 방학 내내 집을 비워도 괜찮다”는 말도 덧붙였다.




김 교사는 서울 근교의 가볼 만한 곳을 30여 곳을 적어 영호에게 보여줬다. “이 중에 가고 싶은 곳 다섯 곳만 골라. 어디를 가고 싶니.”

영호는 “다 가보고 싶다”고 했다. 차마 안 된다고 할 수 없었다.

그 다음 날부터 둘만의 여행은 시작됐다. 축구박물관, 남산한옥마을, 역사박물관, 어린이대공원, 영화관…. 다른 아이들은 주말마다 부모의 손을 잡고 여유롭게 구경했을 곳을 영호와 김 교사는 30일 동안 순례하듯 다녔다.

여의도공원에서는 어떤 꽃이 제일 예쁜지 고르는 둘만의 대회를 열고, 인근 산에 올라 땀을 뻘뻘 흘리며 네잎클로버를 찾으면서 김교사는 영호에게 틈 날 때마다 노래를 불러줬다. “나는 영호가 좋아요. 그렇게 좋을 수가 없어요. 영호도 나를 좋아하나 봐요. 나는 영호 사랑해요.” 천번쯤 불렀을까. 영호도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나는 선생님이 좋아요. 그렇게 좋을 수가 없어요. 선생님도 나를 좋아하나 봐요. 나도 선생님 사랑해요.” 그렇게 여름방학이 흘러갔다.

그 이후로 영호는 많이 달라졌다. 지금은 레슬링으로 세계를 제패하겠다는 꿈을 안고 운동을 한다. 김 교사는 “영호가 공부와 운동을 병행하느라 바빠서 자주 못 만난다”며 너털웃음을 지었다. 5년 전 여름방학, 30일간 선생님의 손을 잡고 서울 곳곳을 누비던 아이가 이제는 전 세계를 누빌 준비를 하고 있다.


지난해 2월 어느 날, 평택 안중중학교 신영철 교사는 신입생들의 명단을 훑어보고 있었다. 유독 한 학생의 이름이 눈에 들어왔다. 경민(가명)이의 이름 아래로 출신 초등학교 교사가 쓴 편지가 첨부되어 있었다. “이 학생은 인터넷 과다 중독 학생으로 정서가 불안하고 결석을 수시로 하며, 절도·폭행·금품갈취·방화 등으로 인한 보호관찰 대상자로….”

신 교사는 이런 ‘거물’만은 안 맡았으면…’ 하며 명단을 덮었다.

그의 바람과 달리 경민이는 신 교사의 반으로 배정됐다. 신 교사는 경민이만을 위한 ‘상담수첩’을 만들며 다가올 1년을 준비했다.

경민이는 어떤 아이일까. 신 교사는 조심스럽게 경민이를 관찰했다. 경민이가 할머니, 아버지, 형, 그리고 이혼한 작은아버지와 사촌동생 2명, 미혼인 삼촌과 함께 22평 임대아파트에서 살고 있고 광고지 배포 아르바이트로 용돈을 번다는 것을 알았다.

경민이와 처음 상담했을 때, 신 교사는 경민이 눈에서 ‘먹이를 노리는 사자의 눈빛’을 보고 순간 섬뜩했다. 경민이는 초등학교 선생님이 ‘예고’한 대로 급우들과 자주 다투고, 수업시간에는 졸기 일쑤인 학교생활을 이어나갔다.

반 아이들은 경민이를 멀리했다. 그런 경민이에게 한 가지 특이한 점이 있었다. 신 교사가 경민이에게 맡긴 임무인 ‘교장실 청소 담당’을 아주 성실하게 해내는 것이었다. 교장이 여러 번 칭찬할 정도였다. 여기서 신 교사는 ‘희망’을 봤다.


신 교사는 매주 마지막 날 종례 후에는 아이들을 차례로 껴안으며 귓가에 “사랑한다”고 속삭여주었다. 경민이는 매번 자기 차례가 오기 전에 교실 밖으로 도망갔다. 그렇게 3주일이 지난 어느 점심 시간, 학교 도서관 옆 공터에서 혼자 노는 경민이를 발견한 신 교사는 그 근처에 서서 하늘을 보는 척 두리번거리고 있었다.

경민이가 다가와 말을 걸었다. “선생님, 뭐하세요. 일광욕하세요?” “응, 햇살이 아름답구나! 너도 선생님 옆에 서보렴.” 이 5분간의 대화 이후로 신 교사는 경민이를 만나기 위해 공터를 자주 서성거렸다. 그는 “경민이가 마음 깊은 곳에서는 ‘사랑받는 것’을 무엇보다 원한다는 것을 이때 알았다”고 했다.

신 교사는 학급 반장을 경민이의 후견인으로 세웠고, 다른 학생들에게는 경민이와 싸우지 말 것을 당부했다. 경민이의 무표정하던 얼굴에 웃음기가 돌기 시작하더니 수업 시간에 조는 빈도도 줄어들었다. 면담 후 포옹을 하며 “저도 선생님 사랑해요”라는 말도 하기 시작했다.

큰 사건 없이 1학기와 여름방학이 지나갔다. 그리고 2학기 첫 학급회의에서 반장을 뽑는 선거 시간에 일이 일어났다. 경민이가 부반장 후보로 추천됐다. 그리고 투표를 거쳐 부반장으로 뽑혔다.

이날 신 교사는 하늘을 향해 “오늘이 거물을 진짜 거물로 키운 날”이라고 외쳤다. 경민이는 독서시간 지도를 비롯한 학급 임원의 임무를 잘해냈다. 더 이상 ‘사전 경고’가 필요한 비행 청소년이 아니었다. 신 교사는 1년간 기록한 경민이의 상담수첩을 모두 분쇄해버렸다. 상담수첩 속 경민이는 사라지고 새로운 경민이가 태어났으니까.

글·하주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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