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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생활

명품 축제의 핵심은 경쟁력 있는 콘텐츠




먼저 정치적 필요에 의해 생겨난 축제들이 많다. 축제기원의 당위성이 크게 떨어지는 이벤트성 축제가 많다는 뜻이다. ‘축제’는 서민들의 삶 속의 즐겁고 유쾌한 단상이 일시적으로 ‘축제’란 그릇에 담기는 것이다. 당연히 축제의 소재와 주인공은 서민들의 삶 속에 ‘숨은 그림찾기’ 처럼 숨어 있을 터다.

하지만 우리의 지역축제는 사람들의 삶 속에 파고든 ‘희로애락’을 고찰하기보다는 정치적 필요에 의해 억지스럽게 만들어진 것이 많다. 부실하고 흥미도 떨어지는 전시성 행사에 그치고 마는 것이다. 애초의 목적이 다르기 때문에 축제시기도 정책적 필요 시점에 맞춰 열리기 때문이다.

아시아를 수차례 방문했던 독일의 한 축제전문가는 이런 한국의 상황을 예리하게 짚어냈다. “동네축제가 발달한 일본을 제외하고는 아시아의 축제는 매우 정치적이다”고 말했다.




이런 난항 속에 우수한 한국의 지역축제들이 덩달아 폄하되는 현상은 안타깝기 그지없다. 또 한국의 축제에는 예술가가 없다. 관공서 위주다. 좀더 정확히 말하면 관공서와 축제사업을 수주한 홍보광고업체가 주도하고 몇몇 예술가가 차후에 고용되는 구조적 문제를 갖고 있다. 문화축제에 문화예술인이 뒷전이니 주객이 전도된 셈이다. 축제는 콘텐츠와 지역성을 ‘예술’이란 촘촘한 그물로 엮어야 한다. 이런 끊임없는 작업을 통해 탄탄한 문화축제로서의 골격을 갖추고 유럽의 성공한 축제들처럼 장기적 생명력을 갖출 수 있다.

우리의 현실은 이와 정반대다. 관공서의 공무원이 1차 기획을 하고, 사업을 수주한 업체가 그럴싸하게 살을 붙인다. 그 다음 어느 예술가를 고용할지를 함께 고민하는 식이다. 해외 축제들에 비해 한국 축제가 전반적으로 예술성이 떨어지는 이유도 여기서 원인을 찾을 수 있다.

의욕 있는 예술가나 예술단체가 정부와 지자체의 축제 또는 대형문화행사에 주도적으로 참여할 수 없는 구조적 한계점이 숨어 있다. 바로 입찰자격제한이다. 예컨대, ‘3년 이내 단일수주 30억 이상, 혹은 10억 이상 수주했던 경험 있는 업체’ 같은 자격제한은 대형업체들만 참여할 수 있게 하는 제도적 장벽이다.


결국 대다수 한국 예술가들은 참여자격이 없으니 국가적 축제에 참여할 수 없다. 경험이 없으니 앞으로도 참여자격이 없는 구조다.

업체들끼리도 자격이 되는 업체와 안 되는 업체끼리 종속관계가 지속된다. 물론 최근 들어 이를 개선하려는 움직임이 조금씩 생겨나고 있다. 하지만 필자의 경험으로는 입찰자격요건을 정하는 단계부터 대형업체들이 이미 관여하고 있는 경우가 적지 않았다.

축제를 관광학적 측면에서만 접근하는 것도 문제다. 한국의 축제는 지방자치제가 시행된 이후 급격하게 늘기 시작했다. 그러다보니 전국적으로 부실축제가 난립하게 됐다. 이 과정에서 축제의 본질보다 상품으로서의 요건을 중요시하는 결과를 가져왔다.

예를 들면 우수축제를 뽑는 평가기준이다. 매년 문화체육관광부를 포함한 지자체의 우수축제 선발기준 혹은 만족도 평가항목을 보면 콘텐츠에 대한 분석보다는 편의시설·접근성·먹거리·숙박시설·홍보상태, 심지어 화장실 수까지 평가에 엄격히 반영하고 있다.

물론 이는 좋은 축제를 만들기 위한 중요한 사안들이다. 그러나 축제의 본질은 콘텐츠와 지역성의 조화, 주제에 충실한 효과적인 프로그래밍과 재미, 예술성이다. 축제의 근간이 되는 요소보다 관광상품으로서의 요건을 더욱 비중 있게 다루는 것이 현재 한국 축제의 일반적 현상이다.

이는 한국의 축제문화가 충분히 성숙하지 못한 상황에서 섣불리 축제의 방향성을 정한 데 그 원인이 있다. 중앙정부의 지원을 바라는 지역축제들이 이에 따라 맞춰가는 것은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축제가 부실한지 튼실한지는 차치하고라도 한국의 지역축제들이 점점 비슷비슷해지는 현상은 이런 측면에서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이같은 상황에서 스페인의 부뇰(Bunol)이란 작은 도시에서 열리는 토마토축제의 운영 노하우를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축제가 열리는 부뇰은 인구수가 채 1만명도 안 된다. 당연히 숙박시설과 교통, 편의시설들이 충분할 리 없다. 하지만 토마토축제를 전후한 며칠 동안 5만명 이상의 관광객이 방문한다.

때문에 축제운영위원회는 관람객을 인근 도시로 분산시켜 축제로 인한 경제적 효과를 이웃 도시들과 나누고 협업하는 탄탄한 관광네트워크를 형성하게 됐다. 오랜 기간의 시행착오 끝에 얻은 결과다. 특별한 관광콘텐츠가 없는 주변도시로서는 반가운 소식이 아닐 수 없다.

축제의 근간인 콘텐츠의 재미를 놓치지 않기 위한 노력은 더욱 돋보인다. 예를 들면 식량낭비라는 비난의 목소리를 해소하기 위해 상품가치가 떨어진 토마토만 사용하거나 안전한 축제를 위해 토마토를 던지기 전에 반드시 손으로 으깨서 던져야 하는 독특한 게임규칙, 샤워시설이 따로 없으니 게임 후 살수차가 지날 때 스스로 충분히 씻는 것, 숙박시설 분산을 위해 인근 도시로 가는 교통방법과 소요시간 등의 적극적 사전안내 등이다.


매년 이 마을에서 열리는 축제를 즐기기 위해 전 세계에서 몰려드는 관광객은 축제의 불편함을 감수할 각오를 하고 오는 셈이다. 결국 아무리 좋은 시설을 갖추고 관광여건이 편리해도 끝까지 살아남는 축제의 경쟁력은 오로지 ‘콘텐츠’에 달렸다는 말이다.

또 관공서 위주의 축제행정이 야기하는 문제는 관련 전문가들과 함께 재검토할 필요가 있다. 최고의 축제로 알려진 에든버러 축제와 아비뇽 축제는 양질의 콘텐츠를 모으는 시스템과 전문가의 지속적인 축제형태 정비, 그리고 축제의 질서와 예산확보, 도시의 장기적 발전방향과 조화를 이룰 수 있도록 뒤에서 든든한 버팀목이 돼주는 관공서 등 세가지 요소가 절묘히 맞아떨어진 결과다.

단순한 수박겉핥기식이 아니라 각각의 역할과 기능성을 벤치마킹할 필요가 있다. 최근 K팝이 세계의 젊은이들을 사로잡은 것처럼 이번 가을축제에 한국문화가 응축된 ‘축제’로 한국을 기억시키는 성공사례를 남겨 보는 건 어떨까.

글·유경숙 (세계축제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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