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생활

영산강은 남도의 역사와 문화, 그리고 민초들의 웃음과 애환을 고스란히 안고 흐르는 호남의 젖줄이다. 그 유역에서는 찬란한 농경문화가 꽃피었다. 서남해안으로 열린 물길을 통해 수산물을 실어 날랐고, 일본과 중국과 문화를 주고받았다. 이처럼 물은 강에서 바다로 막힘없이 흘러야 한다. 그것이 자연의 대원칙이다.
영산강 뱃길 복원사업은 2004년 전라남도지사 공약사업이자 4백만 전남·광주 시·도민들의 숙원사업이기도 했다. 단순히 영산강에 배를 띄우자는 것이 아니라, 이를 통해 바다와 소통했던 옛 영산강의 풍요로움을 다시 일궈내라는 열망이었다.
역사를 들여다보면 바다를 향해 일찍 문을 열고 적극적으로 경영에 나선 나라와 민족이 세계의 중심에 섰다. 과거 식민지 개척시대 때 영국은 미국, 캐나다를 개척해 영어권 국가로 만들었고, 스페인은 남미제국을, 포르투갈은 브라질을 그들의 신세계로 만들었다.
우리나라도 신라 때 해상왕 장보고가 청해진을 세우고 바다를 경영하면서 한·중·일 해상 무역권을 장악했었고, 중국도 명나라 때 적극적인 해양개척정책의 결과로 정화선단이 세계무역을 지배했다. 반대로 해양경영에 수동적이면 그 나라와 민족은 쇠퇴를 면치 못한다.
이런 역사적인 교훈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지난 1981년 정부가 식량 증산과 농업용수 확보를 이유로 하굿둑을 축조하면서 바다를 향한 영산강 물길이 막혔다. 숭어, 장어, 낙지를
비롯해 많은 수산물이 없어졌고, 영산강의 낭만으로 표현되던 황포돛배의 모습 역시 우리
기억 속에서 사라졌다.
더욱이 식량증산을 목적으로 했던 영산강 하굿둑이 축조된 직후, 우리나라의 산업구조는 1차 산업에서 2·3차 산업으로 대대적인 전환이 이루어졌다. 불과 몇 년 후를 보지 못해 많은 화를 불러왔다.
악화된 영산강의 수질은 친환경농업을 어렵게 만들었으며, 강변의 수많은 관광자원은 빛바랜 채로 방치되고 말았다.
전라남도가 영암호 통선문 설치를 요구하는 것은 영산강 주변에 사장되어 있는 전남의 수많은 역사·문화 자원을 연계해서 전남만의 독특한 관광자원을 만들자는 것이다. 과거 뱃길이 활발했던 목포와 영산포 사이에는 40여 개의 크고 작은 나루터가 5~10리마다 있었다. 그 나루터에는 흑산도 홍어를 비롯한 서남해의 수산물을 가득 실은 수많은 배가 떼를 지어 드나들었고 사람과 사람들로 흥청거렸다.![]()
이런 수산물과 영산강변 곡창지대에서 생산되는 풍부한 농산물은 한국을 대표하는 먹을거리를 탄생시켰다. 영산포 홍어, 구진포 장어, 웅어, 토하젓, 나주곰탕, 세발낙지, 짚불고기 등이 그것이다. 이런 영산강의 옛 영화를 다시 한 번 재현하기 위해 통선문을 설치하자는 것이다.
영암호 통선문은 전남의 운명을 바꿀 서남해안 관광·레저도시와 F1 국제자동차 경주장을 연계한 관광 인프라 구축을 위해 반드시 필요하다. 또 매년 1백억 달러가 넘는 우리나라의 관광수지 적자를 메우는 매우 훌륭한 대안이 될 것이다.
영산강 나루에서 출발한 요트와 유람선, 황포돛배가 영암호 통선문을 통해 흑산도로, 홍도로 그리고 보길도로, 엑스포가 열리는 여수로 가는 그런 멋진 모습을 상상해 보라. 가는 뱃길에 보이는 쪽빛 바다와 크고 작은 보석 같은 섬들, 길고 아름다운 오밀조밀한 해안선은 세계 그 어디에서도 흔히 볼 수 없는 관광자원이 될 것이다.
영암호 통선문이 설치되지 않는다면 광주 전남 시·도민들의 열망으로 시작된 영산강 뱃길복원사업의 성과는 단지 수질을 정화하고 물길을 바로잡는 절반의 성공에 머물 수밖에 없다.
글·송재준 (목포대학교 환경공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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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K-공감누리집(gonggam.korea.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