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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생활

한옥은 그 자체가 자연이고 완벽한 미학




“발언시간이 너무 짧은 게 아쉬웠어요.”

서울 성북구 동소문동 6가의 한옥에서 40년째 살고 있는 피터 바돌로뮤(64) 왕립아시아학회 이사는 업무보고 참석 당시 “한옥 보전에 대해 할 말이 무척 많았다”며 이렇게 말했다.

바돌로뮤 이사가 ‘한옥 지킴이’로 널리 알려진 것은 동소문동 6가의 한옥촌 주민 20여 명과 함께 한옥촌 재개발을 취소해달라며 서울시를 상대로 소송을 내 2009년 6월 1심, 2010년 7월 항소심에서 연속 승소하면서부터다.

서울시가 2004년 동소문동 6가 일대를 정비예정구역으로 지정했고, 성북구청은 2007년 이 지역에 지어진 지 20년이 넘는 노후·불량주택이 60.37퍼센트나 된다며 주택재개발 정비구역 지정처분을 내렸지만 실제 노후·불량주택이 60퍼센트 미만으로 밝혀진 것.




한국인도 그 중요성을 잊고 있던 한옥 보전에 앞장선 그가 지난 문화체육관광부 업무보고에 참석한 것은 문화체육관광부 지역민족문화과 김수현(26) 사무관이 바돌로뮤 이사에 대해 관심을 갖고 보아왔기 때문이다.

업무보고에 참석해 먼저 한옥은 어떤 가치가 있나, 왜 살려야 하나 역설했다고 한다.

“어느 나라를 가도 도시의 정체성을 보여주는 것은 건축물입니다. 한옥은 국민성의 가장 중요한 표현입니다.”

이어 한옥 보전을 위해 지금과 같이 구역지정을 하지 않고도 보전하는 방식으로 폭을 넓혀야 한다고 강조했다. 서울의 경우 북촌한옥만 구역지정이 되어 있으나 동서문동을 비롯해 옥인동 혜화동 익선동 낙원동 등 구역지정이 안 된 지역에 있는 한옥들도 보전할 수 있도록 관련법을 바꿔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또 한옥 보전을 위한 상담센터를 설립해 일종의 ‘한옥응급실’도 운영하고, 한국인 스스로 한옥의 가치를 깨달을 수 있도록 교육도 할 것을 제안했다.

“한옥 보전은 지금 시작해도 너무 늦었어요. 40년 전 서울에 있던 한옥은 70만채 정도였다는데, 지금은 5천채 미만입니다.”

바돌로뮤 이사의 한옥 앞마당은 은행나무가 우뚝 서 있는 아담한 정원으로 가꿔져 있었다. 담장을 따라 늘어선 대나무들의 푸르름이 겨울을 잊게 만들었다.

“은행나무는 1980년도에 15년 된 걸 심은 건데 이렇게 자랐어요. 감나무, 살구나무, 단풍나무, 모과며 앵두나무까지 가을이면 지붕에서 단풍을 쓸어내리기 힘들어요.”

하지만 그의 표정을 보니 즐거운 엄살로 들렸다. 겨울이어서 집 앞쪽에 방한용 유리덧문을 달아두었다. 마당으로 나가는 덧문 입구에 검정고무신이 눈길을 끌었다.

“단풍 쓸어내려면 지붕 위로 올라가야 하는데 다른 신발들은 기와가 깨져요.”




미국 뉴욕 태생인 바돌로뮤 이사는 1968년 평화봉사단원으로 한국에 온 뒤 강릉 선교장에서 생활하다 한옥의 매력에 빠져 한국에 정착했다. 동소문동 한옥은 그가 1973년 서울에 올라와 구입했다.

그는 선교장에 살면서 배웠던 방법으로 깨진 기와를 손수 갈고 대청마루 천장도 직접 수리한다. 한지창에 덧댄 갑창문에는 곱게 표구한 글씨나 그림들이 장식되어 있다. 필요한 자재는 이웃의 한옥이 헐릴 때마다 구해온 기와며 황토벽 등으로 활용한다.

바돌로뮤 이사는 이렇게 정성껏 가꿔온 이 집에 대해 “나의 예술작품”이라고 자부했다. 한옥뿐 아니었다. 집안 구석구석 반상이며 호롱불, 떡살, 경대, 침상 등등 정작 한국인이 잊고 지내온 역사가 살아 숨 쉬고 있었다. 그러면서도 주방이며 욕실 세탁실 등은 현대식으로 고쳐 한옥의 전통성을 유지하면서도 생활에 불편이 없는 상태였다. 그가 1980년대부터 인연을 맺은 진해 해군의장대 출신 대학생들이 매년 6명씩 그의 집에서 무상으로 기거하고 있는데, 학생들 공부방은 마치 시대드라마를 보는 듯했다.

“한옥은 어딜 봐도 자연자재입니다. 나무, 돌, 흙, 종이, 기와 등등 어딜 보아도 자연이 느껴져요.”

그는 ‘자연’ 다음으로 한옥의 ‘완벽한 미학’을 다음 매력으로 꼽았다. “어디를 봐도 너비며 깊이며 길이며 균형을 이루고 있어요. 게다가 한자를 집어넣어 철학이 담긴 문살이며 과학이 담긴 온돌 등은 철학 문화 예술 과학 등이 다 이어져 있어요.”

이렇게 훌륭한 한옥이 도시개발 관련 정책과 법들에 쫓겨 철거되는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고 그는 지적했다.

“한옥 철거를 하는 것은 한옥의 문화가치를 모르기 때문이에요. 불편하다, 현대 생활에 안 맞는다, 유지보수비가 많이 든다고들 생각해요. 그래서 한옥의 중요성을 국민들에게 알리는 교육이 필요합니다.”

하지만 바돌로뮤 이사는 온돌과 같은 한옥의 핵심 요소를 간직하면서도 주방이나 욕실은 얼마든지 현대식으로 고칠 수 있고, 한옥을 새로 짓는 것보다는 기존 한옥을 리모델링하는 것이 더 저렴하게 가치 있는 한옥을 가질 수 있는 방법이라고 말했다. 한옥뿐 아니라 어느 주택도 고쳐서 사는 건 다 마찬가지라는 것이다.


이곳 동소문동 6가에는 2005년 결성된 재개발추진위원회가 지금도 재개발을 밀어붙이는 상황이어서 한옥 보전을 주장하는 주민들은 나날이 스트레스가 쌓여가는 상황이라고 한다.

“오래 되면 무조건 재개발해야 한다는 공식이 깨져야 해요. 단독주택이든 타운하우스든 각자 원하는 형태의 자기 집에서 살 수 있도록 존중해야 합니다. 한옥은 특히 매력적인 포인트죠.”

김수현 사무관은 “바돌로뮤 이사님은 그동안 제도적인 사각지대에 있던 한옥 보전의 문제점에 대해 좋은 지적을 해주셨다”며 “특히 국민의 인식 전환이 필요하다는 말이 가슴에 와 닳았다”고 말했다.

“한옥은 문화체육관광부와 지방자치단체, 국토해양부 등이 관련된 분야입니다. 이들 기관들 간의 협의체 결성을 추진하고 제도적으로 보완할 부분을 검토하면서 한옥의 과학성과 예술성에 대한 인식개선작업도 해나가려 합니다. 앞으로도 바돌로뮤 이사님으로부터 좋은 의견을 듣고 싶어요.”

글·박경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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