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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생활

앞 못보는 이에게 독서의 즐거움을 주다




시각장애인을 위한 각종 도서를 펴내는 ‘도서출판 점자’는 ‘사회적기업’이다. 하지만 육근해(陸根海·51) 대표에게 이 일은 대를 이은 가업(家業)이기도 하다. 육근해 대표의 아버지 육병일씨(陸柄一)는 시각장애인이었다. 일찍부터 시각장애인을 위한 봉사활동에 뜻을 두었던 육병일씨는 시각장애인들의 실태를 접하면서 그들에게 가장 필요한 복지는 교육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마흔 살이 되던 1969년, 육병일씨는 사재를 털어 종로5가에 12제곱미터(약 4평)짜리 한국점자도서관을 열었다. 한국 최초의 점자도서관이었다. 하지만 ‘장애인 복지’라는 개념조차 없던 시절이었다.

도서관 인가를 얻기 위해 찾아간 공무원은 “멀쩡한 사람 읽을 책도 없는데, 무슨 점자책이냐”고 면박을 주었다.

육병일씨는 점자책을 직접 펴내기 시작했다. 육병일씨는 점자도서관을 시작한 지 4~5년 만에 가산을 모두 날리다시피 했다. 육근해 대표은 “끼니를 못 잇고, 학교 등록금을 제때 내지 못한 게 한두 번이 아니었다”고 말했다. 그런 상황에서 점자책을 펴내는 데 사람을 쓸 여력이 있을 리 없었다. 육병일씨의 부인과 5남매가 점자책 만드는 일을 거들었다.




1997년 아버지 육병일씨가 별세한 후에는 어머니 장순이씨가 한국점자도서관장을 맡았다. 2004년부터는 육근해 대표가 관장직을 물려받았다.

육근해 대표에게 이 일에서 벗어날 기회도 있었다. 경기대에서 문헌정보학 박사 학위를 받은 후 2008년 나사렛대 점자문헌정보학과 교수로 임용된 것이다. 하지만 그는 2009년 교수직과 점자도서관 사이에서 점자도서관을 택했다.

그동안 점자책을 내는 사업은 한국점자도서관의 운영주체인 ‘사단법인 장애인과 사랑나눔본부(현 청송교육문화진흥회)’에서 해 왔다. 이 사업이 2006년 ‘사회적 일자리’ 사업으로, 2008년에는 사회적기업으로 인증받았다. 이듬해 2월 ‘도서출판 점자’가 정식으로 출범했다. 흔히 시각장애인용 서적이라고 하면 점자책을 연상하지만, ‘도서출판 점자’에서는 점자책 외에도 다양한 형태의 시각장애인용서적을 펴낸다. 2009년에는 점자라벨도서, 촉각도서, 큰글자도서 등을 새로 개발했다.

촉각도서의 경우 기획에서 샘플이 나올 때까지 6개월 가까이 걸린다. 게다가 일일이 수작업으로 만들어야 하기 때문에 책값이 비싸질 수밖에 없다. 육근해 대표가 펼쳐 보인 <무섭지 않아>라는 촉각도서의 경우 몇 페이지 되지 않는 그림책인데, 가격은 4만5천원에 달했다. 육 대표는 “촉각도서의 경우 30~50부 정도씩 소량 주문생산을 하다가 외부의 지원이 들어오면서 2백~5백 부로 발행부수를 늘렸다”고 말했다.


‘도서출판 점자’에서 지금까지 판매한 촉각도서는 1천6백71권, 큰글자도서는 7천2백23권. 촉각도서는 일본·프랑스 등에서도 관심을 보이고 있다. 큰글자도서는 공공도서관에서 노인용도서로 관심을 보이면서 판매가 크게 늘었다.

‘도서출판 점자’가 지난해 사업을 통해 벌어들인 매출액은 5억5천만원이었다. 여기에 고용노동부 지원금 3억원을 비롯한 각종 외부지원금까지 합하면 매출액은 10억원 가까이 된다. 문화체육관광부의 시각장애인 대상 정책홍보지 <손끝으로 읽는 국정>도 내고 있다.

서울 명일동에 있는 ‘도서출판 점자’ 사업장에서 만난 김숙영씨는 뇌성마비 1급이다. 그는 2001년 한국점자도서관에 들어가면서 점자편집일을 시작했다. 그는 “여기서 일하는 게 어떠냐”는 질문에 “좋아요”라고 말할 뿐, 길게 의사표시를 하지는 못했다. 하지만 그는 컴퓨터로 한글텍스트를 점자로 변환시키는 작업을 능숙하게 처리했다.

입사 3년차인 박혜경 큰글자팀장은 “‘사회적기업’이라고 하면 뭔가 다른 시각으로 보는 사람들이 있는데, 업무상의 어려움 같은 것은 보통 회사와 다를 바 없다”면서 “우리가 만든 큰글자 책을 보면서 기뻐하는 어르신들을 볼 때면, ‘사회적으로 좋은 일을 한다’는 생각이 들어 보람을 느낀다”고 말했다.

글과 사진·배진영 기자


아버지가 시각장애인이었는데, 그 때문에 콤플렉스를 느끼거나 집안 분위기가 어둡지는 않았습니까?

“아버지에게는 그런 콤플렉스가 없었어요. 늘 당당하셨죠. 길을 갈 때 남들이 ‘장님’이라며 수군거려도 오히려 우리에게 ‘저건 우리보고 하는 얘기가 아니란다’라고 말씀하셨어요. 가정도 화목했고요. 덕분에 학교 다닐 때 다른 사람들이 나중에 아버지가 시각장애인이라는 사실을 알고서는 ‘그런 줄 몰랐다’고 할 정도로 구김살 없이 자랐어요.”

교수가 되려다 그만두었다고 들었습니다. 그에 대해 후회는 없습니까.
“교수가 되려는 사람은 제가 아니어도 많지만, 점자책을 만드는 일은 저 말고는 할 사람이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부모님은 ‘내가 조금 덜 누리더라도 나보다 더 도움을 필요로 하는 사람에게 베풀면서 살아야 한다’고 하셨어요. 지금도 제 결정에 후회는 없습니다.”

점자책을 내면서 특히 보람을 느낀 일이 있었다면 얘기해 주시죠.
“작년에 한화그룹의 도움으로 시각장애 아동들에게 촉각도서를 지원했어요. 애들이 자기 책이 생겼다고 너무 좋아하면서 손에서 놓으려 하질 않더군요. 그걸 보면서 가슴이 뭉클했어요.”

직원들은 어떻게 채용합니까.
“다른 회사와 다를 바 없어요. 빈자리가 생기면 인터넷 등을 통해 공개채용합니다.”

직원수는 얼마나 됩니까.
“현재는 25명입니다. 많을 때는 45명까지 간 적도 있지만 고용노동부의 지원이 줄면서 인원이 많이 줄었습니다.”

직원들이 회사에 잘 붙어 있습니까.
“입사 후 1~2개월 정도 있다가 그만두는 사람들도 있지만, 일단 자리를 잡으면 꾸준히 일하는 편이에요. 2006년 ‘사회적 일자리’ 사업으로 시작할 때 들어온 10명 가운데 7명이 아직도 일하고 있어요.”

급여수준은 어느 정도입니까.
“최저 월(月) 1백만원에서 시작하는데, 평균 1백50만원 정도 됩니다. 더 주고 싶은데 재료비 등이 비싸고, 판로에 한계가 있어 그러지 못하는 것이 안타깝습니다.”

사회적기업을 경영하는 입장에서 원하는 점은 무엇입니까.
“행정 일선에서 아직도 사회적기업에 대한 인식이 많이 약한 것이 아쉽습니다. 해당 사회적기업이 소재한 지역 차원에서는 그래도 좀 관심을 가져주지만, 중앙정부의 공무원들은 ‘그게 뭔데’ 하는 식의 반응을 보이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렇다고 정부에 무조건 도와달라는 것은 아닙니다. 그런 지원에 기대는 사회적기업은 이미 기업이라고 할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사회적기업 제품에 대한 우선구매 같은 방법으로 판로개척에 정부가 도움을 주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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