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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생활

한땀 한땀 꼼꼼한 특성이 경쟁력




실밥 하나도 놓치지 않는 사람들이 있다. 지난 8월 24일 서울 노원구 하계동 ‘동천’ 공장 1층 생산라인은 분주하게 돌아가고 있었다. 돌돌 말린 천 묶음이 작업대에 펼쳐지자 천은 재단선에 따라 싹둑싹둑 잘려나갔다. ‘드르르’ ‘드르르’ 재봉틀도 숨 가쁘게 돌아갔다. 차츰 모자의 형태가 잡혀가는가 싶더니 이내 모자 하나가 뚝딱 만들어진다. 하지만 여기서 끝이 아니다. 만들어진 모자는 실밥 제거 등 마무리 작업을 위해 한쪽 작업대로 옮겨졌고 마지막 검수 단계를 통과하고 나서야 비로소 납품 상자에 담겼다.

“17개 공정, 어느 하나 쉬운 작업이 없어요. 좀 더디지만, 이분들처럼 꼼꼼하게 해내긴 어렵습니다. 너무 정직하고 솔직하게 일해 답답할 때도 있지만 생각해 보면 그게 우리 회사의 경쟁력이 된 것 같습니다.” ‘동천’ 성선경(73) 대표의 말이다.

‘동천’은 제작 관련 전 과정에 발달장애인을 고용하고 있다. 70명의 직원 중 제작에 참여하는 43명 모두 발달장애인이다. ‘발달장애인’이라는 사전 정보가 없다면 생산라인은 여느 공장과 별반 다를 게 없어 보인다. 작업대 가까이 가서야 ‘손이 조금 느리다’는 것을 눈치챌 수 있었다.




“43명 장애 직원 중 50까지 숫자를 셀 수 있는 사람은 단 두 명뿐입니다. 작업 속도도 일반인들과 비교하면 3배 이상 느려요. 하루 생산량은 많지 않지만, 불량품 없는 걸 보면 참 신기하죠. 그만큼 직원들 모두 맡은 일에 최선을 다하고 양심에 찔리는 짓은 안 하기 때문입니다.”

조금 느리더라도 맡은 일만큼은 최대한 꼼꼼히, 책임감 있게 처리하는 직원들 덕분에(?) 생긴 유명한 일화도 있다. 지난해 2월 이명박 대통령이 ‘동천’을 방문했을 때다.

당시 이명박 대통령이 검수를 담당하던 한 작업자가 불합격 처리해 버린 멀쩡한 모자를 보고 “이건 왜 불합격이냐”고 묻자 작업자는 모자의 한 귀퉁이를 가리키며 “여기 색깔이 다르다”고 답했다. 해당 모자는 검수자의 말대로 육안으로는 구별하기 힘들 정도의 미세한 색 번짐이 있었다. 성 대표는 “각각 한 가지 작업에만 몰두하다 보니 완성도가 높은 모자를 생산하게 되는 것 같다”고 말했다.


‘동천’은 사회복지법인 ‘동천학원’이 장애인 특수학교 ‘동천학교’ 졸업생들의 일자리 마련을 위해 2002년 설립한 모자 제작 기업으로 2007년 2월 고용노동부로부터 사회적 일자리 사업장으로 선정된 이후 같은 해 10월 사회적기업에 선정됐다.

“처음에는 체신부, 육군, 공군 등에 모자를 만들어 납품했습니다. 직원들 월급 주고 공장 유지하기도 빠듯했어요. 그러던 중 2007년에 사회적기업에 선정되면서 세제혜택과 2년간 전문인력 20명분의 최저 인건비 등을 지원받게 됐어요. 당시 정부 지원이 오늘날 ‘동천’의 기반을 잡는 데 큰 역할을 했습니다.”

‘동천’은 회사를 설립한 지 10년이 다 됐지만 정작 흑자를 내기 시작한 것은 지난해부터다. 스포츠 업계가 기존 OEM(주문자상표부착) 생산방식에서 ODM(제조업자개발) 방식으로 생산 방식을 바꾸면서 ‘동천’도 과감하게 디자인 사업에 뛰어들어 경쟁한 결과다.

지난 몇 년간 5억원에서 10억원에 머무르던 매출은 이후 25억원으로 크게 상승했다.

모자를 납품해 남는 이윤은 15퍼센트 남짓. 70명의 인건비와 유지비를 감당하고 나면 ‘남는 것 없는’ 상황이지만 성 대표는 “‘흑자를 냈다’는 데 의의를 두고 싶다”고 말했다. ‘설립 후 첫 흑자’ 덕분에 지난해 추석에는 성과급도 지급할 수 있었다.

“적은 액수지만 상징적인 의미로 흑자를 낸 기쁨을 함께 나눌 수 있어서 좋았다”는 게 성 대표의 말이다. 성 대표는 “다가오는 추석에도 성과급을 지급할 수 있을 것”이라며 빙그레 웃었다.

생산해 낸 제품의 우수성을 인정받아 최근 수주를 의뢰해 오는 기업들도 늘었다. 이름만 대면 알 만한 국내 유명 업체들이다. 하지만 성 대표는 “큰 욕심은 없다”고 말한다.

“직원들은 주 5일 근무에 아침 9시 출근, 6시면 퇴근합니다. 직원들의 작업 속도, 하루 생산량을 알고 있기 때문에 딱 그 능력만큼만 생산하고 있어요. 수주 기업이 늘어난다고 해도 불량 없이 정확한 날짜에 납품해 주는 게 우리의 몫이기 때문에 우리가 생산할 수 있는 만큼만 성장했으면 좋겠습니다.” ‘동천’의 한 달 모자 생산량은 약 2만 개다. 현재 동천에서 생산한 모자는 뉴발란스, 헤드, EXR, 엘레쎄 등 고급 스포츠 브랜드로 전국 유명 스포츠웨어 매장이나 백화점에서 3만~8만원대에 판매되고 있다.


2008년부터 ‘동천’은 기존에 해오던 모자 사업 외에 카트리지 재생사업에도 뛰어들었다. 모자는 성수기와 비수기가 뚜렷해 매출이 들쑥날쑥하기 때문이다. 카트리지 재생 사업은 안정적인 매출을 확보할 수 있다는 장점 외에도 환경친화적인 사업이며, 작업과정이 장애인이 감당할 수 있을 만큼 단순하다는 점을 감안한 것이었다. 회사 이름을 ‘동천모자’에서 ‘동천’으로 바꾼 이유도 그 때문이다.

성 대표는 “회사의 안정이 곧 장애인 일자리의 안정”이라면서 “제품 제작 외에 마케팅이나 판로 개척 부문은 전혀 신경을 못 쓰는 만큼 정부가 힘을 실어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글ㆍ박근희 기자 / 사진ㆍ유창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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