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생활

1962년 정부는 ‘제1차 경제개발계획’을 발표했다. 가난에서 벗어나는 것이 최우선 정책이었던 고 박정희 전 대통령이 주도한 계획이었다. ‘한강의 기적’이 드디어 시동을 건 것이다. 하지만 그 과정은 결코 순탄치 않았다. 우리에게는 경제를 일으킬 아무런 자원도 없었다. 돈도 경험도 인재도 부족했다.
미국을 비롯한 해외에서도 경제개발계획에 그다지 큰 기대를 걸지 않았다. 선진국으로부터 받는 구호물자로 연명하는 가난한 나라가 연평균 7.1퍼센트씩 성장하겠다는 것은 애당초 말이 안되는 것으로 여겨졌다. 발표 당시 미국이 시큰둥한 반응을 보인 것은 어쩌면 당연한 것이었다.
그러나 1차 경제개발계획의 성과는 기대를 뛰어넘었다. 계획을 전면 수정하는 등 시행착오가 적지 않았지만 결국 계획보다 더 큰 성공을 거두었다. 수정된 계획은 연평균 5퍼센트 성장을 목표로 삼았지만 1962~1966년의 5년간의 실제 성장률은 8.5퍼센트에 달했다. 같은 기간 1인당 국민소득은 83달러에서 1백25달러로 연평균 5.6퍼센트의 증가율을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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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개발계획은 우리나라 경제발전의 견인차 역할을 했다. 정부 주도의 수출전략은 지구촌 최빈국인 대한민국이 단기간에 세계경제의 중심으로 진입할 수 있었던 원동력이었다. 제한된 재원을 효과적이고 계획적으로 분배한, 말하자면 선택과 집중 전략이 맞아떨어진 것이다.
경제개발계획이 처음 도입된 1962년으로부터 반세기가 지난 2012년 우리나라의 경제적 위상은 한마디로 ‘천양지차’라고 할 수 있다. 1962년 4억7천만 달러에 불과했던 무역량은 지난해 말 1조 달러를 돌파했다. 50년간 2천 배 이상 성장한 것이다. 무역 1조 달러를 돌파한 나라는 지금까지 우리나라를 포함해 9개국뿐이다.
무역수지도 사상 최대 흑자를 달성했다. 1962년 3억6천만 달러 적자였던 것이 2009년 4백4억 달러 흑자로 신기록을 세우더니 이듬해인 2010년에도 4백11억 달러의 흑자를 내며 2년 연거푸 사상 최대치를 경신했다.
우리나라의 경제발전은 처음부터 수출에 의존했기 때문에 경제에서 무역의 역할은 절대적이라고 할 수 있다. 지난해 우리나라의 무역의존도는 84.6퍼센트, 2000~2011년 사이 무역의 경제성장 기여도는 67.9퍼센트에 달했다.
무역의 성공은 경제 전체의 성장으로 이어졌고 국민들의 살림살이도 윤택해졌다. 1962년 83달러에 불과했던 1인당 국민소득은 2만 달러를 상회하고 있다. 반세기 만에 2백40배 이상 부유해진 셈이다.
소득 2만 달러는 인구 2천만명 이상 국가를 기준으로 하면 세계 10위권 수준이다.
특히 2011년은 역대 최고의 1인당 국민소득을 기록할 것으로 기대된다. 기획재정부에 따르면 2011년 1인당 국민소득은 2만3천5백 달러에 이를 것으로 예상된다. 전년 2만7백59달러보다 13퍼센트가량 불어난 수치다. 이로써 우리나라는 역대 처음으로 2년 연속 1인당 국민소득 2만 달러를 달성하게 됐다.
7차에 걸친 경제개발계획과 함께 우리나라의 주력 산업도 변화의 과정을 거쳤다. 이를 통해 우리나라의 산업 스펙트럼은 더욱 넓어졌고 부가가치는 높아졌다. 1960년대 경공업 중심이던 산업구조는 1970년대에 철강, 비철금속, 화학, 기계, 조선, 전자 등 중화학공업 중심으로 이동해 갔다. 경공업으로는 성장의 한계가 분명했고 안보적인 측면에서도 중화학공업의 발전이 필요했다. 1970년 12.8퍼센트였던 총수출 대비 중화학공업 비중은 1980년 41.5퍼센트로 크게 확대됐다.
1980년대 이후에는 IT산업이 크게 발전했다. 메모리반도체의 경우 후발주자임에도 불구하고 단기간에 세계 최고에 올랐다. 1983년 처음 메모리반도체 산업에 진출한 우리나라는 1998년 일본을 추월했고 그 후 1위 자리를 지키고 있다. 이동통신 등 정보통신산업과 디스플레이, 인터넷 등도 비약적인 발전을 거듭하며 우리나라 산업의 고부가가치와 다각화에 일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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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를 겪으면서 세계는 새로운 산업과 경제의 패러다임이 필요하다는 것에 공감했다. 미래의 성장을 담보할 수 있으면서도 기후변화 등 지구적 환경문제에도 대응할 수 있는 산업이 요구됐다. 녹색성장이 그것이다. 한국은 녹색성장의 캐치프레이즈를 가장 먼저 올린 나라로 꼽힌다. 이명박 대통령은 2008년 건국 60주년 경축사를 통해 ‘저탄소녹색성장’을 새로운 비전으로 제시하며 장기적인 육성 대책을 수립했다.
2009년 정부는 ‘녹색성장 국가전략 및 5개년 계획’을 발표했다.
2020년까지 세계 7대, 2050년까지 세계 5대 녹색강국에 진입한다는 목표로 장기적인 녹색성장 로드맵을 설계한 것이다. 60년대 국가경제발전의 견인차였던 경제개발계획을 현대화한 셈이다.
녹색성장은 이미 시작됐다고 할 수 있다. 이는 신재생에너지산업의 성장에서 확인할 수 있다. 지식경제부에 따르면 2007년 1조2천5백억원이던 신재생에너지 매출액은 2010년 8조800억원, 수출액은 6억2천5백만 달러에서 45억3천5백만 달러로 각각 6.5배, 7.3배 성장 계획이다.
경제개발계획은 기본적으로 정부 주도의 수출전략이었다. 수출 선택이었다고 할 수 있다. 수출은 자연스럽게 우리나라 경제를 개방경제체제로 이끌었다. 경제개발 초기 빗장을 걸고 보호주의무역을 유지하던 우리나라는 1980년대 들면서 장벽을 조금씩 낮춰가기 시작했다.
1980년대 들자 당시 경기부진을 겪고 있던 미국 등 선진국들은 개발도상국에 시장 개방을 강하게 요구하기 시작했다. 특히 미국로 지정하고 개도국에 부여하던 일반특혜관세 대상에서 제외했다.
또 수퍼 301조 우선협상대상국에 포함할 것을 검토하기도 했다. 이에 우리나라는 보복을 피하기 위해 외국인투자 규제 완화, 농산물시장과 보험시장 등을 개방하며 수입자유화와 자본자유화의 문을 열게 됐다.
조금씩 개방되던 문은 외환위기를 거치면서 거의 완전히 열렸다.
국제통화기금은 우리나라에 개방경제를 강하게 요구했고 단기간에 선진국 수준의 시장개방과 자본자유화가 이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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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장과 자본의 전면개방은 경제 주체들이 맨몸으로 세계의 경쟁자와 맞서야 하는 상황을 불러왔다. 자연히 글로벌 수준의 경제 체질을 갖춰야 한다는 위기의식이 강해졌고 그 결과 경쟁력이 향상됐다. 우리나라가 짧은 기간에 무역대국으로 발돋움할 수 있었던 것도 개방경제를 받아들였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우리나라의 개방경제는 더욱 확대될 전망이다. FTA를 적극적으로 체결하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2011년 EU와 FTA가 발효됐고 올해는 미국과 FTA가 발효된다. 이로써 우리나라는 아시아와 유럽, 북미 등 세계 3대 경제권과 FTA 네트워크를 구축하게 됐다. 미국과 FTA가 발효되면 우리나라는 GDP 기준으로 세계 경제영토의 61퍼센트와 자유무역을 하게 된다. 정부는 FTA를 호주, 콜롬비아, 중국, 일본 등으로 더욱 확대해 나갈 계획이다.
FTA는 무역 확대에 크게 기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칠레와의 무역량은 FTA 발효 후 3.9배, 싱가포르와는 1.8배, 아세안과는 1.6배 증가했다. 일자리 창출에도 적잖은 기여를 하는 것으로 분석된다. OECD에 따르면 자유무역은 비숙련근로자 3.94퍼센트, 숙련근로자 4.01퍼센트 등 장기적으로 일자리를 4퍼센트가량 창출하는 효과가 있다.
세계적으로도 유례를 찾기 어려운 기적적인 성공을 거두기는 했지만 늘 순조로웠던 것은 아니다. 1970~1980년대에는 두 차례에 걸친 오일쇼크가 있었고 1990년대엔 외환위기, 2000년대엔 글로벌 금융위기를 맞았다. 위기 시마다 우리나라의 경제는 뒷걸음질을 쳐야 했다. 1차 오일쇼크가 발생한 1973년 10억 달러이던 무역적자는 1974년에 24억 달러로 2.4배나 불어났고 1979년엔 2차 오일쇼크의 영향으로 전년보다 2.3배 많은 53억 달러의 적자를 냈다.
1997년 외환위기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때에도 타격이 컸다. 하지만 위기는 오래가지 않았다. 두 번의 위기 모두 ‘세계에서 가장 빠른 속도로’ 극복했다. 2008년 8천5백72억 달러였던 무역량이 2009년 6천8백66억 달러로 움츠러들었지만 2년 연속 큰 폭의 성장을 하며 1조 달러를 넘어섰다. 2년 사이에 무려 58퍼센트나 성장한 것이다. 특히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는 오히려 우리 경제의 위상이 높아진 계기가 됐다. 정부의 적극적인 재정확장책과 민간의 수출증가가 맞물리면서 경쟁국들을 따돌릴 수 있었다. 위기가 약이 된 셈이었다.![]()
최근 유럽을 위협하고 있는 재정위기도 또 다른 도전이 되고 있다.
우리 경제 역시 성장률이 둔해질 것으로 예상된다. 그러나 재정건전성이 워낙 양호해 위기가 전염될 가능성은 거의 없다. 2010년 기준으로 우리나라의 GDP 대비 국가부채는 33.2퍼센트로 금융위기 전인 2007년 27.9퍼센트보다 5.3퍼센트 악화됐다. 하지만 이는 다른 나라에 비해 매우 낮은 수준이다. 2010년 유로의 평균 GDP 대비 국가부채는 85퍼센트, G7은 1백8.8퍼센트, G20은 74.5퍼센트였다.
한국조세연구원이 경기조정 기초재정수지(실제 재정수지에서 일시적인 지출과 수입을 뺀 수치), 순채무(총채무에서 정부 보유 금융자산을 차감한 액수), 경제성장률과 금리의 격차 등 3가지 지표를 통해 측정한 국가채무 건전성 비교 결과 한국은 OECD 회원국 가운데 가장 높은 점수를 받았다. 스웨덴과 핀란드가 한국에 이어 2위와 3위를 차지했다. 정부는 재정건전성을 더욱 높여 2013년까지 균형재정을 달성할 계획이다.
우수한 재정건전성은 국가신용등급 상승으로 이어졌다. 최근 선진국들의 국가신용등급이 강등되고 있는 데 비해 우리나라는 현 수준을 유지하거나 오히려 상향조정되고 있다. 피치는 지난해 11월에 ‘A+안정적’이던 우리나라의 신용등급을 ‘A+긍정적’으로 올렸고 무디스는 2010년에 A2에서 A1으로 상향조정했다.
글·변형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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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K-공감누리집(gonggam.korea.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