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생활

대학등록금 문제가 사회적으로 큰 관심사가 되고 있다. 여당이나 야당 가릴 것 없이 정치인들은 서민의 대변자를 자칭하며 마치 선심이나 쓰듯이 일부는 ‘반값’을, 일부는 ‘무료’를 주장한다.
대학교육이 백화점 세일품목이나 구호품쯤 되는 줄 아는 모양이다. 어쨌든 대학등록금이 가계에 부담이 되는 것은 사실이다. 대학생 자녀를 둔 가정이 많기 때문이다.
반면 대학생들은 대학을 졸업해도 취직이 안 된다고 아우성이다. 대졸자 수가 천문학적으로 급증했으니 당연한 귀결이다. 전 세계에 이렇게 많이 대학에 진학하는 나라도 없다. 자랑거리가 아니라 고민거리다. 전국적으로 4년제 대학은 2백여개, 2년제는 1백50여개에 달한다. 대학생 수는 3백50만명에 이른다. 우리나라 전체 인구의 7퍼센트가 대학생인 셈이다.
우리나라의 대학은 더 이상 ‘고등교육 기관’이 아니다. ‘대졸 실업률’이라는 용어는 특별한 의미가 없다. 실제 대학 진학이 1980년대 고등학교 진학보다 쉬워진 반면 대학생들의 평균 학력은 경악할 정도로 저하됐다. 하지만 대학생들은 대학 진학률이 20퍼센트도 안 되던 시절의 대졸자들이 누리던 좋은 직장만 바라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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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같은 문제의 가장 근본적 원인은 학력지향적 사고다. 지나친 학력지향 현상 해결을 위해 가장 시급한 일은 고등학교의 진로지도 기능을 활성화하는 것이다. 대학 진학을 위한 지도도 중요하지만,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바로 경제활동을 할 수 있도록 직업교육과 취업지도를 강화하는 것이다.
유럽의 선진국들은 18세기부터 고등학교 교육을 인문계와 실업계로 2원화해 고졸자들의 직업교육에 역점을 두는 교육 시스템을 유지해 왔다. 이런 선진국들에서도 과거 20~30년간은 고등교육의 문호개방을 요구하는 정치적 압력에 의해 대학 진학률이 상승했다.
하지만 아직도 유럽에서 실업계는 전체 고등학교의 60퍼센트 이상을 차지하고 있다. 향후 우리 고등학교의 직업교육 정책도 유럽 선진국 사례에 대한 심층적이고 체계적인 분석을 토대로 수립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현재 직업교육을 담당하는 전문계 고등학교는 좀더 현장감 있는 교육 프로그램을 마련해야 한다. 산업체와의 연계교육과 실습교육의 내실화도 절실하다. 스위스의 경우처럼 직업고등학교를 전일제가 아닌 소위 파트타임제로 운영하는 방식도 고려해 볼 만하다. 현 정부가 교육부문에서 중점사업으로 추진 중인 마이스터고의 확대와 보편화도 바람직한 대안이다.
이와 더불어 일반계 고등학교도 미국과 같이 취업반을 운영할 필요가 있다. 고등학교 3학년 졸업반을 위한 직업교육이 충실하게 이루어질 수 있는 체제를 정비해야 한다. 이렇게 되면 많은 학생들은 굳이 대학에 진학해 비싼 등록금을 지불하고 장시간을 투자하지 않아도 경제적 자립을 영위할 수 있다. 물론 이로 인한 사회적 자존감까지 만끽할 수 있다.
인문과정과 실업과정을 병행 운영하는 종합고교(종고) 체제의 부활을 심각하게 검토해 볼 때도 됐다. 과거 우리나라에도 대학 진학을 위한 인문계와 취업을 위한 실업계가 한 학교에 공존하는 종합고등학교가 있었다. 하지만 대학교육이 양적으로 폭발하면서 종합고등학교는 유감스럽게도 그 자취를 감춘 상태다.
물론 고등학교에서의 직업교육을 비판적으로 바라보는 시각도 있다. 고교교육을 대학 진학과 취업으로 이원화함으로써 사회계층을 고착화시킨다는 비판이다. 그러나 취업을 선택한 고교 졸업생에게도 대학의 문호가 개방되는 체제 아래서는 크게 문제될 것이 없다.
이와 아울러 전국적으로 2백여개나 되는 우리나라 4년제 대학들의 기능별 차별화도 시급하다. 고등교육의 수난과 위기는 사실 우리나라에만 국한된 현상이 아니다. 현재 유럽 선진국의 대학들도 거의 재정난과 학생수준의 질적 저하로 인해 허덕이고 있다.
반면 미국의 대학들은 상대적으로 견실한 편이다. 그 비결은 바로 기능별 차별화에 있다. 하버드대나 스탠포드대 같은 최고 수준의 연구대학도 있고, 실용적 기능교육에 역점을 둔 취업중심 대학도 있다는 뜻이다. 우리처럼 대학들이 하나같이 서울대를 모방하려는 풍토 속에서는 대학들의 생존조차 위협받을 수 있다.![]()
능력중심 사회로 가기 위해 고쳐야 할 병폐가 또 하나 있다. 바로 학력 철폐다. 얼마 전 이명박 대통령까지 “정부가 먼저 학력 차별을 철폐해야 한다”고 신신당부한 바 있다. 이에 일부 정치인들이 학력 철폐를 위한 법률을 제정하려 한다는데 실소(失笑)를 금할
길이 없다.
학력 철폐는 하루아침에 근절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사회 전체의 지속적인 관심과 노력이 중요하다. 고졸 취업자들이 자신들의 업무를 성실히 수행하고 기량을 발휘함으로써 사회에 귀감이 된다면 그 또한 학력 차별에 큰 도움이 될 것이다. 최근 고졸 출신 사원들이 유수의 기업에서 두각을 나타내는 것은 바람직하다.
물론 학력이 아무런 의미가 없다는 것은 아니다. 그리고 그동안 우리 사회의 학력에 대한 욕구가 교육과 사회발전에 기여한 공도 있다. 그러나 이제 대졸이라는 학력을 맹목적으로 추구하는 현상은 지양해야 한다. 대졸이란 학력은 더 이상 개인의 능력을 가늠하는 지표가 될 수 없는 것이 현실이다.
몇 해 전 모 대학에서 교수들이 ‘학생들의 수준이 낮아 수업이 안된다’는 불만을 토로했다고 한다. 이에 학교에서 대학 신입생들을 대상으로 간단한 학력검사를 한 결과 이들의 평균 학력이 서울 시내 중학교의 3학년 평균 정도로 나타났다는 소문이 돈 적이 있다.
충분히 가능한 얘기라고 생각한다.
끝으로 학부모와 학생들에게도 교육의 진정한 가치와 실용성을 토대로 진로를 결정하라고 당부하고 싶다. ‘일단 아무 대학이나 가고 보자’는 생각은 대학의 희소가치가 있던 시절이나 통했다. 많은 학생들이 “고등학교만 졸업해도 취업에 큰 지장이 없는데 굳이 대학 진학을 고집할 필요가 있을까”란 문제로 진지하게 고민하는 상황이 곧 오리라 믿는다.
글·이성호 (중앙대 교육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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