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생활

한 일간지의 공연담당 기자가 전화를 걸어 왔다. 연말 공연가 추천작을 선정해 달라는 부탁이었다. 몇 작품이나 올려지는지 손꼽다가 깜짝 놀라고 말았다. 이번 달 막을 올리는 뮤지컬 작품 수가 자그마치 40여 작품에 육박했기 때문이다. 그나마 어린이나 교육용 뮤지컬은 제외한 수치다. 아무리 평론가라지만 매일 밤 공연장을 찾아도 소화불량에 걸릴 수밖에 없다. 2011년 대한민국은 그야말로 뮤지컬 르네상스의 한가운데 서 있는 것만 같다.
물론 모두가 관객 동원에 성공적이거나 소위 ‘짭짤한’ 수익을 올리고 있는 것은 아니다. 문화산업의 대부분이 그렇듯 열에 한둘이 돈을 벌 뿐, 나머지는 들러리가 되기 십상이다.
또 아무리 연말이 공연가의 대목이라도 이렇듯 많은 작품이 일시에 경쟁을 벌이며 관객들을 유혹하는 것은 세계적으로도 ‘보기 드문’ 현상이다. 최근 들어 빠르게 성장하고 있는 우리 사회의 뮤지컬에 대한 관심을 실감하게 한다.
왜 이토록 인기일까. 사람이나 보는 관점에 따라 달라질 수 있지만, 무엇보다 뮤지컬이 이토록 빠르게 성장하는 이유는 우선 우리 국민들의 문화적 성향과 관련 있다. 예부터 우리 민족은 노래와 음악, 그리고 이야기를 즐겨 왔고, 이러한 제 요소를 적절히 뒤섞어 놓은 현대적 종합예술인 뮤지컬은 우리나라 대중의 입맛에 딱 들어맞는 적절한 문화장르라는 의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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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최초의 창작 뮤지컬은 1966년 막을 올렸던 <살짜기 옵서예>지만, 이미 그 이전부터 우리에겐 판소리나 탈춤, 농악, 굿판 등을 통해 뮤지컬과 매우 유사한 문화적 장르를 폭넓게 생산하고 소비해 온 역사와 전통이 존재해 왔다.
사실 뮤지컬(Musical)이라는 말 자체의 어원은 명사가 아닌 형용사이다. 뮤지컬이란 ‘음악을 활용해 만든 모든 그 무엇’이라는 폭넓은 의미를 담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것만이 뮤지컬 인기의 전부는 아니다. 공연 혹은 무대하면 왠지 고리타분한 느낌을 먼저 떠올리는 사람들을 무색하게 만들 만큼 현대 뮤지컬에는 볼거리가 많다.
매번 실시간인 라이브로 이야기를 반복, 재연해야 하는 무대의 시간적·공간적 제약은 오히려 이를 극복하기 위한 여러 가지 특수효과나 무대 장치, 그리고 안무와 동선 등의 창의적인 배열과 배치 등을 통해 관객의 상상력을 자극하는 방법들로 승화되어 왔다.
이 같은 창의적 시도와 노력들은 많은 뮤지컬 작품들에서 비주얼 효과의 적극적인 개발로 이어졌다. 예를 들자면 뮤지컬 <오페라의 유령>에서는 무대 위에 놓여 있던 샹들리에가 하늘로 올라 관객들 머리 위 극장 꼭대기까지 오르고, <미스 사이공>에서는 실제를 방불케 하는 헬리콥터가 아비규환의 베트남 탈출의 날을 재연한다.
쓰레기더미에서 환생할 한 마리의 고양이를 뽑는 뮤지컬 <캣츠>의 마지막 장면은 버려진 타이어가 하늘로 날아오르며 완성되고, 내년에 우리 무대에 오를 예정인 빅토르 위고 원작 소설의 뮤지컬 <레미제라블>은 무대 위 원형 테이블을 좌우로 끊임없이 돌려 가며 입체적인 공간을 창출해 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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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대 위 특수효과의 적극적인 개발과 적용은 현대 뮤지컬 산업의 원 소스 멀티 유즈(One Source Multi Use)적 부가가치 생산과도 밀접한 관련이 있다. 영화를 원작으로 한 무비컬이나 흘러간 옛 대중음악으로 만든 주크박스 뮤지컬 등이 대표적이다.
<메리 포핀스> <빌리 엘리어트> <반지의 제왕> <사랑과 영혼> <스파이더맨> 등이 전자의 예라면, <맘마미아!> <위 윌 록 유> <져지 보이스> <프리실라> 등은 후자의 대표적 사례들이다. 익숙한 콘텐츠의 재연이나 반복의 수준을 넘어 다시 이를 해체시키고 재구성함으로써 ‘잘 알고 있지만 또다시 새로운’ 재미를 창출해 내는 요즘 인기 뮤지컬의 흥행 공식인 셈이다.
우리나라 뮤지컬 시장에도 비슷한 시도들이 모색되기는 마찬가지다. 뮤지컬을 즐기는 인구의 증가와 공연시장의 팽창은 세계 어디서나 목격되는 ‘글로벌’한 현상이지만, 그 안에 담기는 내용은 지역적인 특색을 반영한 ‘로컬’ 콘텐츠가 각광을 받게 되는 것이다. 이른바 ‘글로컬(glocal)’ 문화 생산물 시대의 도래인 셈이다.
한류의 선봉장이었던 드라마 <대장금>이 제2의 한류를 겨냥한 무대화 작업으로 이어지는가 하면, <겨울연가> <미녀는 괴로워> 등은 일본 공연을 거쳐 국내에 막을 올리는 새로운 시도를 선보이기도 한다.![]()
달리는 기차를 영상과 세트로 교묘히 엮은 안중근 의사의 이야기 <영웅>은 국내에서의 인기를 등에 업고 뉴욕에서 막을 올리고, 고 이영훈 작곡가의 노래들로 꾸민 <광화문 연가>는 창작 초연에도 대규모 흥행을 기록하는 기념비적인 성과를 얻어 내기도 한다.
<스트릿 라이프> <늑대의 유혹> <젊음의 행진> <파리의 연인> <막돼 먹은 영애씨> 등 일일이 손꼽기만도 힘들 만큼 많은 작품이 각축을 벌이며 무대로 등장하고 있다. 아직 세계적인 흥행작으로까지 이어진 사례는 많지 않지만, 지금의 성장세를 잘 이어 간다면 글로벌시장에서도 통용될, 완성도와 예술성을 갖춘 한국 뮤지컬의 출연은 멀지 않은 꿈이 될 것 같다.
물론 이를 위해서는 잠깐의 관심이 아닌 지속적이고 끊임없는 노력과 시도, 그리고 다양한 문화적 체험이 이뤄지도록 많은 노력이 수반되어야 할 것이다. 다행히 최근에는 전용 공연장도 속속 문을 열고 있고, 영화나 엔터테인먼트 산업과의 유기적인 결합도 시도되고 있어 앞으로 등장할 ‘물건’들에 기대를 높이고 있다.
전망은 비교적 낙관적이다. 지난 반세기 우리가 이룩한 한강의 기적은 문화의 기적, 뮤지컬의 기적으로도 이어질 수 있다.
언젠가 우리 뮤지컬을 세계 시장의 관객들이 소비하며 즐기게 되는 날도 오지 않을까. 2011년 마지막을 돌아보며 떠올리는, ‘절로 미소 짓게 되는’ 뮤지컬 애호가의 바람이다.
글·원종원 (순천향대 신문방송학과 교수·뮤지컬 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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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K-공감누리집(gonggam.korea.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