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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생활

피묻은 태극기 건네준 그 한국병사를




62년 만에 한국을 찾은 용사들의 이야기 중 특히 눈길을 끈 것은 캐나다 참전용사 허시(Hearsey) 형제의 가슴 찡한 스토리다.

1950년 9월 7일, 먼저 입대한 동생 아치볼드는 곧바로 한국전에 참전했다. 그의 형 조셉은 동생을 걱정하다 다니던 회사까지 그만두고, 이듬해인 1951년 1월 6일 동생이 복무하던 ‘프린세스 페트리셔 연대’ 제2대대에 자원 입대했다. 그러나 형과 동생이 만나게 된 것은 10개월이나 흐른 뒤였다. 형 조셉은 1951년 10월 13일 전투중 총상을 입고 마지막 순간을 맞고 있었다. 동생 아치볼드는 자신을 걱정해 참전했던 형을 부산 유엔기념공원에 안장하고 고국으로 돌아갔다.

노년에 폐질환을 겪으며 25년 동안 투병생활을 하던 동생 아치볼드는 지난해 6월 마지막 숨을 거두면서 가족들에게 ‘한국에 잠든 형과 합장해 달라’는 유언을 남겼다. 아치볼드의 딸과 외손자는 그의 유해를 들고 지난 4월 22일 한국땅을 밟았다.

유언에 따라 동생의 유해는 부산 유엔기념공원에 잠들어 있는 형 옆에 묻혔다. 추모식엔 캐나다 참전용사와 보훈단체 회원, 시민 등 2백여 명이 참석했다. 형제의 깊은 우애에 하늘도 감동했는지 그날은 종일 비가 내렸다.




미국인 참전용사 로버트 슬로트(Robert Slote)씨의 이야기도 가슴을 울렸다. 6·25전쟁 서울 수복 61주년 기념식 참석차 지난해 9월 방한했던 슬로트는 전쟁 도중 만났던 이름도, 계급도 모르는 한국군인에 대해 이렇게 회고했다.

“1953년 1월 추운 겨울날이었습니다. 탱크를 타고 이동하는데 길옆에 한국군 병사 하나가 피를 흘리며 쓰러져 있더군요. 파편이 옆구리를 관통해 출혈이 심했어요. 25세 정도 돼 보였는데 공포에 질려 있었습니다. 부하들과 함께 그를 전차로 옮겨 태우고 응급처치를 해줬습니다. 그는 ‘고맙다(thank you)’고 하더니, 가슴속에 품고 있던 피 묻은 태극기를 제게 주었습니다.”

1953년 4월 고국으로 돌아간 슬로트씨는 다른 나라에 파병됐을 때도 이 태극기를 간직했고, 전역 후 텍사스주 패리스시에 머물 때에도 거실 한켠에 이 태극기를 걸어뒀다고 한다. 그러다가 2009년 12월, 주미 한국대사관을 찾아 이 태극기를 기증하며 “당시 부상당했던 그 병사를 찾아달라”고 부탁했다.

정부는 이 태극기를 전쟁기념관에 전시하고, 태극기를 전달했던 그 병사를 찾아 나섰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아직 주인공을 찾지는 못했다.

지난해 한국을 찾은 그는 서울을 보고 “마치 뉴욕에 온 것 같다”며 “한국의 발전에 놀랍다”고 말했다.




미국은 6·25전쟁 당시 가장 많은 병력을 보내준 나라다. 육·해·공군 합쳐 1백79만명을 보낸 미국은 사망자 3만7천명을 포함해 13만7천여 명의 인명손실을 입었다. 미군의 역할 중 특히 기억할 만한 것은 인천상륙작전과 흥남철수작전이다.

더글러스 맥아더 유엔군 총사령관의 지휘 아래 1950년 9월 인천에 기습 상륙, 판세를 뒤집은 미국은 그해 12월 중공군이 대규모 공세를 가해오자 자유를 찾아 모여든 10만여 명의 피란민을 남쪽으로 안전하게 철수시키는 흥남철수작전을 펼쳤다.

미군 중에서도 특히 맹활약을 한 것은 미국 해병1사단이다. 인천상륙작전의 돌격부대로 작전을 성공으로 이끈 해병1사단은 그해 11월 장진호에서 있었던 치열한 전투의 최전선을 담당했다.

당시 미국 해병1사단에서 복무했던 레이몬드(Raymond T. Fitghugh) 등 미 해병 출신 참전용사들은 지난달 한국을 찾아 당시의 치열했던 전투를 회고하며 눈시울을 붉혔다.




자유를 위해 6백30명의 군인을 파병했던 덴마크도 6·25 방한 행사에 깊은 관심을 보였다. 6·25전쟁 당시 병원선 유틀란디아(Jutlandia)호를 파견해 부상자 치료와 의술 보급에 나섰던 덴마크는 다큐멘터리 제작진이 동행해 영화제작을 위한 촬영을 진행했다.

한국전 특집 다큐로 제작될 이 영화는 내년 유틀란디아호 귀환 60주년을 기념해 각종 주요 영화제에 출품되며, 동시에 전 세계 방송국에 유통될 예정이다.



1975년 시작된 유엔 참전용사 재방한 행사를 통해 한국을 다시 찾은 용사들은 2011년까지 2만8천5백명에 달한다. 한편 2010년부터 참전용사 후손들을 선발, 등록금 전액과 기숙사비를 지원해주고 있는 한국외국어대는 6월 16일 이 학교에서 공부하고 있는 참전용사 후손들과 함께 부산 유엔기념공원을 참배했다. 한국외국어대에는 현재 8개국 30여 명의 참전용사 후손들이 학위과정을 밟고 있다.

글·이범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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