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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생활

생명 문제를 통계수치로 접근 말아야




자살에 대한 사회적, 학문적, 정책적 관심이 날이 갈수록 늘어가고 있다. 지난 3월 자살예방과 생명존중에 대한 법도 제정됐고, 대대적 시범사업을 위한 예산도 책정됐다. 중장기 자살예방계획도 차근차근 수립되고 있다. 일부 지자체에서는 야심 차게 자살 예방사업을 전개해 나가고 있기도 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피부로 체감하는 자살의 문제는 여전하다.

사실 각 나라의 자살예방 정책은 대동소이하다. 국민 교육 또는 캠페인 등을 통해 인식을 개선하고 자살위험성이 높은 사람들을 조기에 발견하기 위한 교육을 활성화한다.




특히 노인층을 중심으로 우울증에 대한 치료를 강화하고, 총기류·농약 등 자살위험 요인을 통제하며, 자살시도자에 대한 사후관리를 강화하는 것 등이 각 나라가 채택하는 보편적 자살예방 정책이다.

기본적 삶을 영위하는 데 어려움이 있는 취약계층에 대해서는 보건 뿐 아니라 복지적 측면을 개선하는 것도 매우 중요한 영역이다.

또 하나 중요한 것은 스트레스를 해결하는 방식으로 술에 의존하는 것을 막는 것이다. 우리나라의 고위험 음주율은 세계 최고 수준이다. 24시간 전화상담을 할 때 저녁 9시 이후의 “죽고 싶다”는 전화는 대개 술에 취한 사람에게서 걸려온다. 먹고 죽자는 식의 비뚤어진 음주문화가 우리 사회의 안타까운 죽음을 부르고 있는 것이다.

역학적으로 보면 우리나라에서 알코올 중독 문제를 해결하면 남성 자살의 34퍼센트 정도를 해결할 수 있다고 한다. 게다가 20대와 청소년, 여성들까지도 음주로 인한 자살위험성이 높다. 서울시 자살예방센터가 2006년부터 올해 6월까지 상담한 내용 가운데 음주로 인한 문제를 호소한 7천8백98건을 분석한 결과 26.6퍼센트인 2천1백3건이 자살 욕구를 드러낸 것으로 집계됐다.

자살 욕구를 드러낸 음주상담자 두 명 중 한 명(1천1백6명·52.6퍼센트)은 여성이었다. 연령대는 20대가 6백63명(31.5퍼센트)으로 가장 많았고, 30대 4백17명(19.8퍼센트), 10대 3백15명(15퍼센트) 등 순이었다. 특히 청소년들의 음주와 자살 충동이 심각하다는 점은 ‘우울한 미래’를 예고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비단 술 문제뿐 아니라 도박, 마약 등의 중독성 문제 역시 자살과 밀접한 연관성이 있기에 중독을 방지하기 위한 정책은 곧 자살예방 정책의 하나가 될 수 있다.




우리나라가 OECD 국가 중 출산율 최저라는 의미는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아마도 20~30대 여성들이 우울하고, 자살률 또한 OECD국가 중 가장 높은 것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극단적으로 우리나라의 젊은 여성들은 이 사회에서 아이를 낳아 기르고 싶지 않고, 뱃속에 가지게 된 아이도 중절로 해결하고 싶으며, 아예 자살로 생을 마감해 버리고 싶은 것은 아닐까라는 우려까지 하게 된다.

얼마 전 실직 가장들이 연이어 자살한 적이 있었다. 한 주요 언론사와 인터뷰를 하는 과정에서 실직 가장의 자살에 대한 사례를 제시해 달라는 요청을 받게 됐다. 지금 우리 사회에는 많은 실직 가장이 있다. 언론을 통해 전해듣는 다른 실직 가장들의 자살은 그들에게 어떤 의미로 전달될까.

‘나는 살 자격이 있나? 나도 실직가장인데….’ 만약 한 사람의 실직 가장에게 이런 생각이 들게 한다면 그건 언론보도의 폐해가 크게 작용했을 것이다. 얼마 전 수능시험 후 각종 언론에 보도된 내용이다. ‘올해 수능 후에도 여지없이 수험생 자살’. 시험을 망친 많은 수험생이 혹시나 그 보도로 인해 ‘나도 죽어야 하는 것일까?’라는 생각을 하게 됐다면 그것 역시 언론보도의 폐해가 크다고 할 수 있다.


비단 다른 영역뿐 아니라 자살에 영향을 미치는 미디어의 힘은 매우 막강하다. 각 나라가 유사한 형태로 제시하고 있는 자살 관련 보도지침은 언론의 보도 형태를 올바르게 가이드함으로써, 대중의 모방심리를 최소화하기 위한 목적을 가지고 있다.

특히 유명인의 경우 사회적 이목이 높음으로써 일명 ‘베르테르 효과’라고 불리는 모방자살의 폐해가 더욱 커지게 된다.

자살예방 사업을 열심히 하면 자살률이 얼마나 감소할까? 자살예방 정책을 고민하고 사업을 수행하기 위해서는 철학이 필요하다.

세상에서 가장 비효율적인 작전 중 하나라고 할 수 있는 <라이언일병 구하기> 식의 사고방식이 갖고 있는 철학은 무엇인가? 억울하게 사형선고를 당한 자신의 형 한 명을 구하려고 많은 사람을 역시 억울한 죽음에 몰아넣은 <프리즌 브레이크> ‘석호필’의 신념은 무엇인가?

극중에서 주인공들은 이런 고민으로 갈등한다. 전문가들을 교육하면서 다양한 통계수치를 이야기한다. 정책계획서와 보고서를 작성하면서 화려한 도표를 구사하고 논리가 분명한 계획을 제시하려 노력한다. 하지만 자살한 아들에 대해 이야기하며 “밥을 먹고 있는 내 자신이 혐오스럽다”라고 말하는 한 명의 어머니와 마주하는 건 나 자신을 무겁게 억누르는 또 하나의 현실이다.

자살예방사업이 자살률이라는 통계에 당장 영향을 미치기는 어려울 것이다. 아니, 어쩌면 그 시간이 생각보다 더 길어질지 모른다.

그러나 우리로 인해 도움을 받는 사람들은 지금 이 시각 분명 존재한다. 자살을 통계적인 측면에서만 바라보아서는 안 되는 이유이다.

아울러 청소년들에게 밝은 삶을 살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는 등 사회 전반의 격(格)을 높이기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 정부나 각종 단체의 캠페인도 좋지만 지속 가능한 정책과 개인의 인식 전환도 병행돼야 한다.

글·이명수 (서울시 자살예방센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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