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생활

“음식을 남기지 않고 맛있게 드시면 나이, 신분, 종교 차별없이 누구든지 하루에도 대여섯 번씩 오셔서 드실 수 있습니다. 밥을 드시고 나가실 때 ‘잘 먹었습니다. 감사합니다’란 한마디가 저희 가게의 밥값이죠.”
지난 7월 26일 인천 동구 화수동 민들레국수집에서 만난 서영남(57) 대표는 계란말이를 부치며 기자를 맞이했다. 서 대표는 지난 2003년 4월 인천에서 무료급식소인 민들레국수집을 열었다. 개업 후 그는 지금까지 매일 오전 10시부터 오후 5시까지 노숙자와 잘 곳이 없는 사람, 끼니를 잇기 어려운 사람들을 위해 무료로 음식을 제공하고 있다.
지난 7월 15일 청와대에서 이명박 대통령으로부터 국민훈장 석류장을 받은 서 대표는 “사실은 상을 받지 않으려고 했는데 교도소에 있는 친구들에게 탄원서를 써 줄 때 국민훈장이 도움이 된다해서 상을 받기로 마음을 바꿨다”고 수줍은 듯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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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들레국수집을 찾는 사람들은 대개 노숙자나 인근 쪽방촌 주민들이다. 무료식당의 손님이지만 서 대표와 그의 부인 강베로니카(53)씨는 이들을 ‘VIP’로 부른다. 소외되거나 무시당하는 느낌을 주지 않기 위해서다.
“스물두 살이 되던 해 천주교 수도원에 들어갔어요. 수사생활을 하다 만 25년이 되던 2000년 11월 가방 하나 달랑 들고 수도원을 나왔죠.” 그는 “좀 더 의미 있는 봉사활동을 하고 싶어서 오랜 시간 정들었던 수도원을 떠났다”고 말했다. 그래서 민들레국수집을 찾는 단골손님들은 그를 ‘서 수사님’이라고 부른다.
수도원을 나온 그가 제일 처음 찾은 곳은 경북 청송에 있는 청송교도소(현 경북북부제1교도소). 교도소에 갇힌 사람과 사형수들을 돌보던 그는 2003년 우연히 동인천역 근처에서 웬 사람들이 음식을 나눠 주고 있는 장면을 보게 됐다. 서 대표는 “그때 그 광경을 보고 ‘어떻게 길에서 음식을 나눠 줄 수 있을까’ 하고 큰 감동을 받았다”고 말했다.
당시 그의 수중에는 3백만원이 전부였다. 그래서 그는 반찬으로 단무지와 김치만 준비해도 되는 국숫집을 열기로 마음을 먹었다.
“3백만원으로는 도저히 밥집을 열 수가 없었죠. 하지만 개업 후 이내 국숫집을 밥집으로 바꾸기로 했습니다. 우리 집을 찾는 손님들한테는 국수가 맞지 않아요. 요즘 사람들은 다이어트를 하려고 국수나 죽을 먹지만, 우리 집을 찾는 손님들은 국수나 죽은 배가 빨리 꺼지기 때문에 밥을 찾는 편이거든요.”
국수 대신 밥을 제공하지만 정작 가게 이름은 ‘민들레밥집’으로 바꾸지 않고 ‘민들레국수집’ 그대로 사용하고 있다. 그는 “언젠가 우리 손님들도 ‘다이어트해야 하니 밥 말고 국수 주세요’라고 해서 국수를 대접할 수 있는 날을 기다리고 있다”며 “그래서 ‘민들레국수집’이란 간판을 그대로 사용하고 있다”고 말했다.
서영남 대표는 가게를 찾는 손님 한사람 한사람의 이름을 기억한다. 하루에 민들레국수집을 찾는 사람들은 줄잡아 3백~5백명이다. 가끔은 손님들의 이름을 부르며 “이제 술 좀 그만 먹어야 되지 않겠어”라며 건강을 챙기는 말도 잊지 않는다.![]()
서 대표는 “그들에게 중요한 것은 밥을 대접해 주는 것이 아니라 사람 대접을 해 주는 것”이라며 “어릴 때 어머니가 아무리 맛있는 반찬을 해 줘도 삐치면 절대 안 먹지 않느냐”라며 말을 이었다.
“우리 사회는 밥 주면서 생색내고, 줄 세우고, 복음을 전한답시고 찬송가를 부르게 하면서 사람을 체하게 합니다. 배고픈 이들에게 눈앞에 밥을 두고 그렇게 하는 것은 가혹한 행동입니다. 우리 식당은 제가 성당을 다니니까 그 흔적은 있지만, 기도를 하라고 강요하거나 줄을 세우지는 않습니다.”
민들레국수집은 정부의 지원도 받지 않는다. 예산확보를 위한 프로그램 공모도 하지 않는다. 후원회 조직이나 봉사자 조직도 없다. 대신 도움을 주고 싶은 사람이면 누구나 봉사를 할 수 있고 후원도 할 수 있다. 그는 “지금까지 쌀 떨어질 걱정을 한 적은 없다”며
“오히려 이 많은 것을 언제 다 나눠 주나 고민한다”고 웃었다.
“동네분들이 천사예요. 자신들도 어려운데 아침에 가게 앞에 반찬을 몰래 두고 가시곤 하죠. 홈페이지에 있는 계좌번호로 후원을 해 주기도 하고요.” 그는 대신 “부자들이 생색내면서 주면 안 받는다”며 “동네분들과 도움을 주시는 많은 분들께 감사의 마음을 전하고 싶다”고 말했다.
서 대표는 지난 2008년부터는 청소년 공부방 ‘민들레꿈공부방’도 시작했다. 국숫집 앞을 서성거리고 도망가기만 하던 길거리 아이들을 위해서였다. 또 지난 2009년 7월에는 천주교인천교구재단으로부터 지원금을 받아 노숙자들을 위한 문화공간인 ‘민들레 희망
지원센터’도 설립했다.![]()
“사람은 기본적으로 생존의 위협을 받지 않고, 의식주가 충족됐을 때 변화를 꿈꿉니다. 이를 충족시키기 위해 그들에게 문화적 활동을 지원하고 싶었죠. 이제는 저희 식당에서 밥만 먹고 가던 노숙자들이 샤워도 하고 빨래도 하고 낮잠도 자고 음악, 영화, 책 등 문화활동도 할 수 있게 됐습니다.”
서 대표는 지난해부터 노숙자들을 대상으로 매일 독후감 발표회를 열고 있다. 노숙자들의 문화적 활동을 지원하고 말하는 능력을 키워 주기 위해서다. 독후감 발표자에게는 권당 3천원의 독서장려금도 준다. 그는 “분위기가 마치 큰 도서관 같다”며 “하루에 독서장려금으로만 10여만원씩 나간다”고 말했다.
“옛날 거지들은 깡통만 들고 다녀도 밥을 먹을 수 있었는데 요즘은 그렇지 않아요. 모든 사람이 서로 이겨야 하는 적으로 판단하는 사회 분위기 때문이죠. 이런 분위기가 사람들을 모두 외톨이로 만들고 있어요. 민들레국수집에 있는 사람들 역시 모두 잘살아 보려고, 성공하려고 아등바등하다가 철저한 외톨이가 된 사람들입니다.”
대신 그는 민들레국수집을 찾는 손님들에게 “아등바등하지 않아도 살 수 있다”는 말도 잊지 않는다. 밥을 먹던 노숙자들도 그의 말에 고개를 끄덕인다. 그는 인터뷰를 마치면서도 “어떤 사람은 남에게 손톱만큼도 손해 보지 않으려고 기를 쓰는데 그런 사람들은 거의 잘살지 못하고 죽는다”며 “외톨이는 성공하더라도 절대 행복한 사람이 아니다”고 말했다.
글·김선영 인턴기자 / 사진·김승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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