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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생활

서울 동자동 쪽방촌 방문간호사 유옥진씨




유옥진(58)씨는 서울 용산구 쪽방상담센터에서 일하는 기간제 간호사다. 지난 2009년부터 용산구 동자동 쪽방촌 주민들을 돌보고 있다. 남산 자락의 동자동 쪽방촌 골목을 누비며 주민들의 건강을 챙기는 것이 유씨의 일이다. 에이즈나 결핵환자도 많이 살아 간호사들도 기피하는 쪽방촌이지만 유씨는 쪽방촌의 ‘큰언니’ 역할을 묵묵히 해 내고 있다.

유씨는 국민추천포상자로 선정돼 지난 7월 15일 청와대에서 대통령표창을 받았다. 지난 7월 26일 서울역 인근 용산구 쪽방상담센터에서 유씨와 만났다. 그의 손목엔 포상으로 받은 시계가 걸려 있었다. 유씨는 인터뷰 전 “자신보다 훌륭한 사람이 더 많다”고 몇 번이나 손사레를 쳤으나 기자의 설득에 입을 열었다.

경남 마산 출신인 유씨는 마산보건대를 졸업하고 부산에서 간호사로 일했다. 유씨가 보건소의 기간제 방문간호사로 일한 것은 2007년부터다. 마침 남편이 퇴직한 터라 유씨는 과거 간호사로 일한 경력을 되살리기로 마음먹었다. 그렇게 관악과 영등포 보건소를 거쳐 2009년 용산보건소로 왔다.




동자동 쪽방촌을 돌며 주민들의 건강상태를 살피는 것이 유씨의 일이다. 서울에 수백 가구의 대규모 쪽방촌이 있는 곳은 용산을 비롯해 영등포, 남대문, 종로, 동대문 등 5곳. 그중 용산구 동자동은 ‘전국구 쪽방촌’으로 통한다. 서울역과 가까워 전국 각지의 빈민들이 몰려들기 때문이다. 겨울철에는 노숙자들도 추위를 피해 이곳 쪽방촌으로 들어온다.

동자동 쪽방촌에 등록된 가구는 모두 8백80여 가구. 이 중 낮에 일을 나가는 주민들을 제외하고 유씨가 관리하는 주민은 5백여 명이다. 쪽방촌 주민의 90퍼센트는 남성으로 연령대는 40~60대라고 한다. 결핵을 앓고 있는 환자만 30여 명으로, 에이즈 환자도 더러있다. 하지만 이들 쪽방촌 주민의 건강을 돌보는 방문간호사는 유씨가 유일하다.

“매일 오전 9시30분부터 12시까지 15집 정도를 방문합니다. 혼자서요. 처음 5~6개월 정도는 너무 무서웠어요. 돌발행동이 위험하거든요. 저도 간호사이기 이전에 여자잖아요. 가끔 술에 만취해 ‘방에 좀 있다 가라’고도 하고, ‘칼로 목을 딴다’며 겁을 주는 사람들도 있었어요.”

겁이 날 법도 하지만 유씨는 묵묵히 쪽방촌 주민들과 얼굴을 익혀 갔다. 유씨를 걱정하는 가족들에게는 “어려운 할머니와 할아버지들을 돕는다”고 설득했다. 매일매일 힘든 사람들을 도와주는 얘기를 하니 남편과 자식들도 유씨를 이해했다고 한다. 물론 남편이 퇴직한 상황에서 기간제 간호사를 하며 받는 1백70여만원의 월급도 가계에 적지 않은 보탬이 됐다.


“쪽방촌 주민들은 건강상태가 극히 불량하다”는 것이 유씨의 설명이다. 고혈압과 당뇨 환자가 전체 주민의 65퍼센트다. “밥을 해 먹을 상황도 안되고 불규칙적으로 무료급식을 이용하다 보니 식이조절이 안된다”는 것이 그의 진단이다. 또 그는 “과음과 흡연, 짠 식단으로 병을 키우고, 이로 인한 당뇨 합병증으로 발가락이 썩어 들어가는 사람도 많다”고 했다.

특히 여름철 폭염은 쪽방촌 주민은 물론 그에게도 고역이다. 겨울보다는 덜하다지만 지내기가 힘들다. 지난해 여름에는 60대 중국 국적의 조선족 남성이 쪽방촌에서 폭염으로 죽었다. 유씨는 “공복에 술을 마시고 자면 수분과 체력이 고갈돼 죽는다”고 말했다. 기자와 만난 7월 26일 유씨는 폭염을 대비해 각 가정에 나눠줄 생수를 준비하고 있었다.

치료를 요하는 사람들을 병원과 연결시켜 주는 것도 그의 업무다. 주민센터의 긴급의료비를 지원받게 하고, 무료수술을 하는 병원과 환자를 연결시켜 주는 것이다. 지금까지 연결해 준 것만 7백94건이다. 유씨는 “2009년 오른쪽 어깨에 아기머리 2개만 한 혹이 달린 연골주위조직암 환자를 병원과 연결시켜 무료로 수술받게 한 것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고 말했다.

하지만 유씨는 적절한 치료를 받지 못하는 사람들이 여전히 걱정이다. 기초생활수급자의 경우 정부로부터 일정 부분 의료비를 지원받는다. 반면 수급자가 아니면서 장애를 갖고 있거나, 주민등록이 말소된 사람들은 적절한 치료를 받을 길이 없다는 것이 문제다.

유씨는 “이들은 의료 사각지대에 있는 취약계층”이라며 “이들에 대한 관리를 강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래도 2007년부터 방문간호사제를 실시한 이후 상황이 많이 개선됐다고 한다. 유씨는 “‘고독사(孤獨死)’란 말이 많이 줄어들지 않았냐”라고 반문했다. 그래도 이들을 돌보기에는 아직 역부족이다. 전국에 있는 기간제 방문간호사는 모두 2천7백여 명. 서울의 경우 보건소당 10명 정도의 방문간호사가 있는데 쪽방촌을 담당하는 인원은 1~2명이 고작이다.


게다가 유씨와 같은 기간제 간호사는 최일선에서 일하지만 고용불안에 시달리고 있다. 대개 계약직으로 채용돼 2년이 채 안돼 계약을 갱신해야 한다. 때문에 기존의 보건소가 아닌 다른 보건소와 새로 계약을 맺는데 이때 쪽방촌 주민들의 건강관리에 공백이 생긴다고 한다.

“다른 지역에서 쪽방촌에 오면 처음 온 간호사의 경우 적응하는 데만 5~6개월이 걸려요. 환자들의 이름과 얼굴을 익힐 만하면 다른 곳으로 가야 하는 문제가 벌어지는 셈이죠.” 유씨는 “쪽방촌 주민들은 낯을 많이 가리고 극도로 경계감을 나타낸다”며 “관리하는 방문간호사들이 너무 빈번히 바뀌는 것도 문제”라고 걱정했다.

“쪽방촌 환자들을 돌볼 때마다 ‘내가 이 사람들에 비해 가진 것이 너무 많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물론 나보다 어린 사람들이 일은 안 하고 놀고 있을 때 화가 치밀어 오르기도 하죠. 하지만 힘들다고 생각하면 이 일을 못합니다. 그래서 항상 긍정적인 마음을 갖고 살려고 합니다. 그리고 다음에는 일이 아닌 진짜 봉사를 꼭 해 보고 싶습니다.”

글·이동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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