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생활

대전시 서구 정림동에 사는 길분예(92) 할머니는 2층짜리 상가주택 2층의 좁은 원룸에서 혼자 산다. 자신이 소유한 상가주택이긴 하지만 길 할머니가 사는 공간은 방 하나, 주방 겸 거실 하나, 화장실 하나로 이뤄진 43평방미터(약 13평)의 좁은 공간이다. 한겨울에도 보일러 한 번 안 틀고, 여름에는 선풍기 하나로 지낸다.
아침식사는 인근 복지관에서 배달해 주는 도시락으로, 점심·저녁은 신김치 하나 놓고 때운다. 매일매일 여느 독거노인과 다를 바 없이 삶이 무료해서 고되지만 요즘은 자랑거리가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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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청와대 가서 대통령한테 상 받은 거 알아요?”
지난 7월 15일 길 할머니는 수십 년 만에 서울 나들이를 했다. 청와대에서 열린 국민추천포상 유공자 훈포장 수여 및 격려를 겸한 이명박 대통령과의 오찬 자리였다.
길 할머니는 앞서 지난 6월 보따리 장사와 폐지수집 등으로 평생 모은 돈 15억2천만원(부동산 포함)을 전액 한밭대학교에 기부한 공로로 국민추천포상자(국민훈장)에 선정됐다. 돈이 없어 대학에 붙고도 등록을 못하는 아이들에게 배움의 기회를 달라는 뜻을 담은 기부였다.
“어휴 말도 못 해요. 이도 안 들어갈 양반이에요. 그분은.”
길 할머니 소유의 상가건물에서 음식점을 운영하는 이미숙(45)씨는 길 할머니에 대해 혀를 내둘렀다. 길 할머니 상가 임차인들 사이에서 할머니는 지독한 구두쇠로 통한다.
한번은 길 할머니와 상가 임차인들 사이에 수도요금 문제로 시끄러워진 적이 있었다. 1년 내내 거의 수돗물을 사용하지 않는 길할머니는 상수도 기본요금을 ‘펑펑 물 많이 쓰는’ 상가의 음식점 주인들이 내야 한다고 생각했고, 임차인들은 길 할머니가 아끼려던 요금이 고작 한 달에 8백90원이라는 사실을 알고는 “너무하다”고들 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푼돈에 벌벌 떠는 길 할머니도 정작 어려운 처지의 이웃에게는 도움을 아끼지 않았다.
최근 길 할머니의 상가주택에 이사 온 세입자 노정석(75)씨는 “전에 살던 곳보다 훨씬 좋은 환경에 싼 월세로 집을 내주셨다. 또 우리 가족 중에 당뇨로 앞을 못 보는 식구가 있는데, 할머니가 김치찌개를 끓여다 주신다”며 고마워했다.
또 다른 상가 임차인은 “길 할머니의 상가건물은 낡았어도 목 좋은 자리에 있는데다 주변 시세보다 임대료가 저렴해 가능하면 오래 이 상가에 있고 싶다”고 말했다.
지나치다 싶어 보일 수도 있는 할머니의 ‘짠순이’ 기질은 할머니의 굴곡진 삶에서 비롯됐다.![]()
충남 금산군 의촌리의 가난한 농가에서 태어난 길 할머니는 일곱살 무렵부터 맨손으로 나물을 캐다 팔아 집안 살림을 도와야 했다.
열아홉 살에 시집을 간 할머니는 친정보다 더 없이 사는 시댁살림에다 노름에 빠진 남편 때문에 2년 뒤 갓 백일 된 아들을 업고 집을 나와야 했다. 이후 아들이 일곱 살 되던 해 시댁에서 찾아와 데려갔고, 그 후 모든 일을 혼자 해결하며 살아야 했다.
지금은 기력이 떨어져 폐지수집을 잘 못 하지만, 젊은 시절 할머니는 새벽 네 시 반이면 일어나 직접 키운 미나리 한 보따리를 이고 두 시간을 걸어 시장에 내다 팔아 돈을 모았다. 그렇게 모은 돈으로 조금씩 키운 살림이 이렇게 불어난 것은 할머니 말을 빌리면 “먹을 줄 모르고 입을 줄 모르고 벌기만 했기 때문”이었다.
길 할머니는 현재 혼자 지내고 있지만, 가족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성인이 되어 왕래하게 된 아들 박모(73)씨도 있고, 손자(46), 증손자도 있지만 이들 모두 2~3년 전 발길을 끊었다고 했다.
길 할머니는 이번 기부도 “가족 모르게 했다”고 말했다. 혹시 가족이 서운해하지는 않겠느냐는 질문에 길 할머니는 “줄 만큼 줬다”고 답했다.
길 할머니는 자신 몰래 부동산(현 시가 21억원 상당)을 빼돌린 아들 박씨가 올 때마다 크게 화를 냈고, 아들 박씨는 재산을 다 물려주지 않는 어머니를 원망했다고 한다. 유학까지 보낸 손자는 10억원 상당의 부동산을 받은 뒤에는 찾아오지 않는다고 한다.
그래도 길 할머니가 유산을 대학에 기부하기로 한 건 자식들이 미워서가 아니다. 주변 사람들이 대가 없이 큰돈을 얻은 뒤 잘못된 길로 가는 것을 많이 봐왔기 때문이다.
“요즘 대학교에 붙고도 월사금(등록금)이 없어서 학교를 못 다니는 애들이 있더라고요. 대학교가 지금도 부자지만 더 부자가 되면 어려운 학생들에게 돈이 더 가겠지 싶어서 기부를 하기로 했지요.”
이날 길 할머니는 세금을 내러 은행에 가야 한다고 했다. 굽은 허리 탓에 키가 초등학교 3학년생만 한 할머니는 지팡이를 짚고 집을 나섰다.![]()
“구십이 넘도록 살 줄은 생각도 못 했어요. 예순 살에 위암수술을 받았는데, 그때 병원 원장님이 석 달 더 살 수 있다고 했어요.”
길 할머니는 “마음씨를 착하게 쓰면 명도 길어지나 보다”고 했다. “누가 밥해 주는 사람도 없고 해서 내 손으로 밥해 먹어 가면서 평생을 혼자 살았어요. 남같이 잘 먹기를 했나 잘 입기를 했나…. 이제 깨달았는데, 세상 사람들이 다 부지런하고 마음씨 착하게 쓰면 못 살 사람 없어요.”
글과 사진ㆍ남창희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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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K-공감누리집(gonggam.korea.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