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생활

국내 굴지의 여행사에서 잘나가던 20년차 사원 강동수(49)씨. 그는 2009년말 구조조정으로 직장을 떠났다. 그의 갑작스런 퇴직은 베이비붐 세대의 고민을 압축적으로 담고 있다. 20년간 청춘을 바친 그는 “정든 일터에서 떠나야 한다는 것은 순식간에 어둠속에 갇힌 듯한 충격이었다”면서 “주변 동료들은 ‘더 버텨 보지 왜 쉽게 결정하냐’고 아쉬움을 토로했지만, 더이상 버틸 수 없었다”고 했다.
8개월 동안 실업급여를 받아 가며 지내던 그는 재취업의 문을 두드리기 시작했다. 그는 “상담도 하고 전화통화도 해 보았지만, 면접에서도 ‘열정’과 ‘근면함’은 50세라는 벽에 가려 무기가 되질 못했다”고 털어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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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개월이란 시간이 흐르자 가정형편은 점점 어려워졌다. 그는 초조해지기 시작했다. 부모님이 중풍으로 쓰러졌고, 직장에서 받아 왔던 많은 액수의 봉급과 높은 직급은 직장을 찾는 데 크게 도움이 되지 않았다.
전 직장에서 세일즈 활동을 통해 만났던 지인들은 그에게 큰 ‘재산’이었다. 용기를 내 지인들을 만나며 미래를 상담했다. 그러던 차에 건국대 미래지식원에서 자원봉사를 하며 강의법을 배우기로 했다.
그는 여행사에서 다양한 내·외국들을 만나 얻었던 ‘산지식’을 바탕으로 ‘내가 잘할 수 있는 것은 남들 앞에 서서 지식을 전달하는 강의’라고 생각했다.
1년 동안 건대아카데미에서 강의법을 배운 그는 무역협회 중견인력고용지원센터에서 산업체 우수강사 모집을 한다는 메일을 받게됐다. 강씨는 대한무역협회 도움으로 대일관광디자인고등학교에 관광산업체 우수강사로 합격했다.
무역협회 김영희 실장은 “강동수씨는 꾸준한 재취업 노력으로 성공한 케이스로, 현재 대일관광디자인고에서 강사로 활기찬 생활을 하고 있다”면서 “베이비붐 세대도 제2인생을 위해 필요한 기술이나 능력을 퇴직 전부터 미리 준비하고 개발해야 한다”고 했다.
정부는 베이비붐 세대가 주된 일자리에서 더 오래 일할 수 있도록 민간의 자율적 고용연장을 지원하고 중소기업 현장연수 등 취업능력을 높여 주는 지원책을 내놓고 있다.
전문직 은퇴자들이 사회복지시설·시민사회단체 등에서 경험과 재능을 발휘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 주는 대책 등이다. 이런 정책들은 베이비붐 세대가 보다 활기차고 긍정적인 노후생활을 하는 데 기여할 것으로 기대된다.
일본은 제2차 세계대전 직후인 1947~49년에 태어난 베이비붐 세대인 단카이(團塊) 세대를 위해 60세 정년을 보장했다. 영국에서도 제3섹터들의 수요를 파악해 50~60대 퇴직자 가운데 경제활동을 하길 원하는 사람들을 연계하는 사업을 하고 있다.![]()
우리나라의 경우 급속한 인구 고령화로 노인부양 부담이 커지고 있어 퇴직자들의 노후생활 문제가 심각해질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따라서 우리 사회가 감당해야 할 부담을 줄이려면 베이비붐 세대 개인적으로는 물론, 국가적 차원에서도 현실성 있는 대책을 서둘러야 한다.
이를 위해 고용노동부는 중견전문인력 고용지원센터를 설치해 노동시장에서 조기 퇴출되고 있는 중견 전문인력의 재취업 알선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중견 전문인력’은 일정한 경력과 노하우를 갖춘 퇴직 중견 전문인력을 말한다.
고용노동부는 또 무료 직업소개 사업을 하는 비영리법인 또는 공익단체로서 필요한 전문인력과 시설을 갖춘 단체 가운데 중견 전문인력 고용지원센터로 지정해 운영비를 지원하고 있다. 현재 한국무역협회, 노사발전재단, 중소기업중앙회 등 6개소를 운영하고
있다.
고용노동부 고령사회인력정책팀의 나기호 사무관은 “나이가 듦에 따라 생산성이나 능력이 일률적으로 떨어진다는 과학적 증거가 불충분한데도 중고령인력 활용은 능률·비용 측면에서 비효율적이라는 편견이 아직도 팽배해 있는 게 우리의 현실”이라면서 “국가에서 적극적인 중고령자 재훈련 기회를 제도적으로 계속 마련하고 베이비부머도 용기를 가지고 도전한다면 늙어서도 능력을 발휘하고 인생의 새로운 보람을 찾는 인생 이모작이 충분히 가능하다”고 했다.
글·오동룡 기자![]()
1956년생으로 올해 54세인 저는 2003년 7월 직장(광주은행)을 떠났습니다. 당시 불과 1년
사이에 직장생활을 하던 4형제 가운데 막내만을 남기고 3형제가 모두 구조조정으로 직장을
잃고 말았습니다. 그때까지 노후준비는 언감생심이었습니다. 후두암 수술 후유증으로 병석에 누워 계시던 부친의 병원비와 자녀 교육비 부담이 무겁게 어깨를 짓눌렀습니다.
한 친구는 은행원 출신인 제 경력을 감안해 자신의 회사에 자금담당 상무로 자리를 마련해 주기도 했습니다. 그 친구도 5~6개월이 지나자 출자를 하라는 쪽으로 부담을 줘 결국 퇴사하고 말았습니다.
앞으로 80~90세까지 장수하는 고령화 사회에 적응해 가려면 당장 수입에 집착하기보다 20~30년 후의 장기적인 안목을 가져야 한다고 다짐했습니다. 제 장점을 개발해 1인창업에 도전하기로 했습니다. 직장생활 초기부터 운동을 좋아해 휘트니스 원리, 역학, 물리 등에 마니아였을 정도로 노하우를 축적하고 있었습니다.
무역협회의 중견전문인력 고용지원센터 직원 한 분이 중소기업청과 소상공인진흥원에서 주관하는 ‘시니어 창업스쿨’(업종 전문 컨설턴트 양성과정)을 소개해 주셨습니다. 순간 ‘이것이다’ 하는 느낌이 머리를 스쳤습니다.
가정형편상 재취업의 미련은 남아 있었지만, 정체성을 살릴 수 있는 1인창업 쪽으로 마음을 굳혔습니다.
물론, 정부의 정책지원으로 이뤄지는 과정이었지만 성패(成敗)는 본인의 각오에 달린 것입니다. 주변 동료들은 거의 정부의 지원에만 의존하는 분위기였습니다. 정부가 지원하는 것엔 한계가 있는 법입니다. 이 과정을 통해 컨설턴트로서의 기본철학과 큰 그림을 그릴 수 있었을 뿐만 아니라 전문가의 길을 갈 수 있는 자신감마저 얻게 됐습니다. 본인의 이름과 명예를 걸고 전문가로서 자기 철학을 실행에 옮긴다는 것은 대단한 변화였습니다.
밤을 새워 가며 강의 콘텐츠를 하나하나 준비해 나갔습니다. ‘국민 대다수가 지속적인 운동을 하지 못하고 중도에 포기한다’ ‘올바른 운동법을 모르고 있다’ 등 약 60쪽의 강의노트를 만들었습니다. 용기가 생겼습니다. 제가 구상한 모든 생각을 추가로 메모하여 강의자료를 계속 꾸며 나갔습니다. 드디어 운동 각(角)을 산출하는 도구(특허 준비중), 창작물 저작권 등록 2건, 전립선 운동기구 개발(특허 준비중)까지 가는 엄청난 진전을 일궈냈습니다. 시니어 창업스쿨을 마친 다음, 곧바로 작년 12월 1일자로 사업자등록을 해 창업을 했습니다. 첫 출시 콘텐츠인 ‘GFC(Good Feel Cleaning·좋은 느낌의 세탁)’를 중심으로 강의활동을 시작해 현재 월 2백만원 정도의 매출을 올리고 있습니다.
청소년의 건강을 위해 서울시교육청에 재능기부를 통해 학부모, 청소년, 교사에게 무료로 봉사하는 활동도 겸하고 있습니다. 지하철 중심 역세권에 ‘미니 휘트니스 스튜디오’ 5곳도 개설할 것입니다.
민찬기 (민찬기운동처방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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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K-공감누리집(gonggam.korea.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