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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생활

내 인생의 최고봉은 나눔입니다




“산이라도 한번 다녀왔으면 좋겠네요.” 타고난 산사나이라서 그런 걸까. 산이 아닌 도시 속 사무실에서 만난 엄홍길 휴먼재단 상임이사는 피곤한 기색이 역력했다. “얼마 전 네팔을 다녀와서 처리할 일이 많이 쌓여 있어요. 이럴 때 산이라도 가면 좋은데, 시간이 좀처럼 나지 않네요.”

엄홍길 이사는 2001년 시샤팡마(8천27미터) 등정에 성공하며 인류 역사상 8번째로 히말라야 공인 14좌를 등정했다. 그의 도전은 여기서 멈추지 않고 2004년과 2007년에는 8천미터급 비공인 위성봉인 얄룽캉(8천5백5미터)과 로체샤르(8천3백83미터)를 추가로 정복함으로써 세계 최초로 히말라야 16좌(공인 14좌+비공인 2좌)를 완등한 산악인이 되었다.

이렇듯 산악인의 ‘전설’이 된 그가 지금 산이 아닌 사무실에서 고군분투하고 있는 이유는 단 한 가지, 바로 ‘나눔’이다.

“이제까지 산을 오르면서 얼마나 많은 깨달음을 얻었는지 몰라요. 8천미터 이상의 히말라야 16좌를 완등하는 과정에서 얼마나 많은 도움을 받았겠습니까. 희생도 많았고요. 제가 그런 시련을 극복한 것이기도 하지만 결국 히말라야가 저를 받아준 것이 아니겠어요. 그 은혜를 갚는 중입니다.”




2008년 5월 휴먼재단을 설립한 엄 이사는 첫 나눔사업으로 지난 2010년 5월 네팔 에베레스트 인근의 팡보체라는 작은 마을에 학교를 지었다. 에베레스트는 엄 이사가 히말라야에서 가장 먼저 도전했던 산이다. 이곳에서 술딤 도르지라는 셰르파(히말라야 산악 등반 안내인)를 사고로 잃었다. 엄 이사로서는 히말라야에서 처음으로 동료를 잃는 순간이었다. 팡보체는 술딤 도르지의 고향이다.

해발 4천60미터에 위치한 팡보체는 그야말로 산간 오지 중의 오지. 이곳의 아이들은 학교에 가기 위해 산을 넘고 넘어 3시간이 훨씬 넘는 거리를 걸어야 하는 실정이었다. 그나마 허름한 학교는 그야말로 창고나 마찬가지였다. 엄 이사는 아이들에게 배울 수 있는 장소를 만들어 주는 것이야말로 나눔의 첫 시작이라고 생각하고 이곳에 학교를 짓기로 마음먹었다.

하지만 이곳에 학교를 짓는 것은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었다. 당장 교통환경이 문제였다. 트럭이 오갈 수 없어 건설자재를 경비행기나 헬기로 운반했다. 수송비가 엄청났다. 쉬운 것이 하나도 없었다.

“건설자재를 운반하는 것도 힘들었지만 학교를 어떻게 짓는가 하는 고민도 많았어요. 팡보체의 경우 난방시설을 하는 것 자체가 불가능했거든요. 고민 끝에 모든 벽과 벽 사이에 단열재를 넣고 햇빛이 잘 들 수 있게 창문을 크게 만들었어요. 자연 채광 덕분에 난방을 하지 않아도 훈훈하더라고요. 교실 안에서 바깥 경관도 그대로 볼 수 있고요.”

엄 이사는 “‘학교’라는 이름을 단 건물만 덜렁 짓는 것이 다가 아니고 현지 사정에 맞게 모양과 특징을 달리한 건물을 짓는 것이 기본 방침”이라고 힘주어 말했다.

이렇게 땀과 노력으로 지은 학교에 ‘제1호 휴먼학교’라는 이름을 붙였다. 팡보체 주민들의 호응이 대단했다. 아이들은 물론이고 어른까지 학교에 머무는 시간이 많아졌다. 팡보체 휴먼학교는 모든 주민의 쉼터이자 희망의 터로 자리매김했다.




1호 휴먼학교 완공에 발맞춰 2011년 2월에는 두 번째 휴먼스쿨인 타르프 초등학교를 준공했고 올해 2월에는 세 번째로 룸비니에 학교를 세웠다. 지난 3월 2일에는 네 번째 학교인 비레탄티 학교 기공식을 가졌다.

엄 이사의 휴먼학교는 현지에서도 단연 관심의 대상이다. 현지 사정에 꼭 맞는 ‘맞춤식 건물’은 물론이고, 컴퓨터실, 도서실, 양호실, 놀이시설까지 완벽하게 마련된 덕분이다. 그래서 두 번째 휴먼스쿨인 타르프 초등학교를 둘러본 겅거랄 뚤라 더루 네팔 교육부장관은 “앞으로 네팔 초등학교를 짓는 데 모범으로 삼고 싶다”고 말하기도 했다.

엄 이사의 목표는 네팔에 16개의 휴먼학교를 짓는 것이다. 16개라는 숫자는 엄 이사의 히말라야 16좌 완등과 같다. 엄 이사는 “히말라야가 나에게 16봉을 내어줬으니 나도 히말라야에 16개의 학교를 짓는 게 목표”라며 “숫자에만 연연하지 않고 현지 주민들에게 실질적인 도움이 되는 학교, 쉼터를 짓겠다”고 다짐했다.

엄 이사는 학교를 짓는 것에만 머무르지 않고 현지인들이 자생적으로 자립할 수 있는 기반도 마련해 주었다. 엄 이사는 타르푸 초등학교를 완공한 후 2백명 남짓한 학생들에게 염소를 한 마리씩 선물했다. 학생들이 염소를 기르면서 젖을 짜서 팔고 여기에서 생겨난 이익금은 다시 학교에 기부하는 형식으로 스스로 무언가를 할 수 있다는 생각을 깨우쳐주기 위해서다. 무조건 무언가를 받으려는 생각보다는 도움받은 것에 대한 보답을 스스로 자립해 삶의 터전을 가꾸어 가는 것으로 보답해야 한다는 생각이다.

엄 이사의 나눔정신은 비단 네팔에만 국한되는 것은 아니다. 엄 이사는 국내에서도 다양한 방법으로 재능기부와 나눔활동을 펼치고 있다. 청소년을 위한 등산학교를 열고 가족과 함께하는 캠프도 연다.


오는 4월부터는 강북구와 함께 청소년 등산교실을 연다. 내년 2월까지 중학생들을 대상으로 4~6월, 9~11월 둘째 주 토요일에 당일 프로그램으로 6차례 운영한다. 여름·겨울방학 기간에는 1박2일 캠프도 진행할 예정이다.

엄 이사는 “요즘 청소년들이 일으키는 비행 사례에 대해 무척 걱정이 된다”면서 “산을 오르고 자연과 함께 호흡하면 인성이 바로 잡힌다. 자연 속에서 좀 더 많은 것을 보고 느끼게 해주는 것이 어른들이 해야 할 과제”라고 말했다.

엄 이사는 앞으로 해외 등정 도중 세상을 떠난 대원의 유자녀 장학금 사업도 시작할 계획이다. 히말라야에서 받은 은혜를 ‘나눔봉사’로 사회에 고스란히 환원하는 엄 이사를 보며 이제까지 그랬듯이 앞으로도 ‘도전의 아이콘’, ‘나눔의 아이콘’으로서 ‘대장’으로 불리길 기대한다.

글·손수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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