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생활

오늘날 심각하게 언급되는 세대갈등은 경제문제를 둘러싼 이해관계가 큰 축을 형성한다. 일상적 삶의 문제가 현재와 미래에 대한 불안으로 이어지는 데서 비롯하는 갈등이다.
사실 한국 사회의 갈등 총량에서 세대갈등이 차지하는 비중은 그리 크지 않다. 다시 말해 한국인이 생각하는 갈등의 심각성으로 볼 때 세대갈등은 그리 큰 문제가 되는 항목이 아니다. 갈등유형별 심각성의 수준을 알아보는 조사에서 일관되게 나타나는 결과는 계층갈등→지역갈등→노사갈등→이념갈등→세대갈등→남녀갈등의 순이다.
우려스러운 것은 한국 사회의 ‘세대담론’이 갈등을 유발하는 실제적 비중보다 훨씬 과도하게 논의된다는 점이다. 세대차이, 세대갈등은 인류사의 극히 보편적인 현상이다. 따라서 특정한 의도와 기획을 가지고 세대갈등을 세대담론으로 비화하는 것은 주의를 요한다.
오늘날 ‘세대’를 주목하는 일차 당사자는 끊임없이 시장을 창출해야 하는 기업이다. 상업적 기획으로서 세대담론이 과잉 양산되는 것이다. 다음이 정치다. 정치는 균열을 먹고 산다. 선거와 같은 정치적 선택을 앞두고 세대론은 어김없이 확대되고 편가름의 준거로 활용된다. 마지막 당사자가 언론이다. 특정 세대를 놓고 언론은 각각의 이해를 표방하는 도구로 이용한 흔적도 많다. 보수와 진보 성향을 보이는 언론들이 기획한 세대의 특집을 보면 명확하게 구분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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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금은 ‘세대 간의 계약’으로서 형평성의 문제와 관련해 세대갈등의 핵심테마다. 서구국가들의 경우 연금을 둘러싼 세대 간의 형평성문제가 심각하게 제기되고 있다. 고령화와 경제성장 둔화가 연금재정의 악화로 이어지면서 세대 간의 형평성 문제로 제기되는 것이다.
노인들은 정치적으로 다른 세대에 비해 상대적으로 잘 조직되어 있고, 투표율도 높아 연금제도와 사회정책에 대한 근본적인 개혁은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연금을 둘러싼 세대갈등의 불씨를 안고 있는 셈이다.
그러나 한국의 경우 국민연금제도를 둘러싼 세대 간 형평성 문제는 서구와 상당히 다르다. 서구와 달리 실질 은퇴연령이 69세로 높다. 그뿐만 아니라 연금제도 도입 시기가 서구보다 늦어 성숙도가 낮은 관계로 연금 수급자의 규모가 그리 크지 않다.![]()
한국에서도 서구와 같이 인구고령화 요인에 의해 연금제도를 둘러싼 세대 간의 갈등이 등장할 소지가 없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현재까지는 연금제도가 포괄하는 인구가 적고 성숙하지 않아 후세대가 연금제도로 부담해야 할 재정적 부담은 그리 크지 않다. 오히려 한국에서는 세대 간 소득분배에 있어 노인세대는 상당히 배제되어 있다. 한국의 노인 빈곤은 OECD 국가 가운데 최고 수준이며, 노인빈곤율이 타세대의 빈곤율에 비해 훨씬 높다.
반면 일자리 문제는 1997년 외환위기 이후 계속 이어져온 장기적 현상이다. 외환위기 이후 전방위적으로 진행된 한국 사회의 재구조화는 효율성의 원칙을 거칠게 통용시키면서 ‘성장은 있으나 고용은 좀처럼 늘어나지 않는’ 시스템을 고착화시켰다.
일자리와 관련된 세대갈등의 핵심은 정규직과 비정규직, 청년층과 중장년층 사이의 ‘일자리 양극화 현상’이다. ‘정규직은 중장년층, 비정규직은 청년층’의 등식이 성립하면서 세대를 둘러싼 일자리 문제는 양적인 측면보다 질적인 측면이 더 문제시된다. 일자리 양극화는 세대의 문제를 갈등의 국면으로 진입시킬 개연성을 높게 만든다.
그러나 일자리를 둘러싼 세대갈등을 ‘청년세대와 노인세대’, 혹은 ‘청년세대와 중장년세대’의 갈등으로 보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
오늘날 전개되는 일자리 문제는 어찌 보면 모든 세대에 해당하는 문제다. 어느 특정 세대와 특정 세대 간의 긴장으로 읽어내기보다 세대 간과 동시에 세대 내의 갈등으로 보는 것이 정확하다.
일자리와 관련해 세대별 고통의 분포를 정리하면 한국 사회는 U자형의 이중고 현상을 보인다. 일자리에 진입하는 청년층의 어려움이 가장 크고, 이후 중년층의 일자리 상황은 상대적으로 호전되었다가 ‘사오정’으로 칭해지는 노전(老前)의 문제가 심각해진다. 즉 일자리 진입장벽과 퇴출의 고통이 최고점을 이루는 것이다.![]()
청년고용정책을 중요하게 생각해야 하는 이유는 최초의 직업선택이 이루어지는 시기이기 때문이다. 이 시기에 가장 중요한 초기 직업경험이 이루어진다. 직장생활 경험이 있는 실업자는 고용시장이 어려워도 다시 직장을 구하지만, 직장생활을 해본 적이 없는 청년은
취업의 진입이 힘들면 아예 취업을 포기할 가능성이 높다.
임시직 중심의 청년층 고용구조는 장기적인 고용불안으로 이어질 위험이 있다. 단순히 오늘의 문제로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미래의 피폐함을 담보하기 때문에 우려는 더욱 커지는 것이다.
오늘날 일자리 문제는 단순히 경기변동에 의해 해결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일과 관련하여 전개되는 한국 사회의 재구조화는 좋은 일자리를 두고 끊임없이 경쟁하는 구도로 치닫게 한다. 이제 구조조정은 경기침체기에는 말할 필요도 없고 경기호황기에도 일상적으로 통용되는 운영방식이 되었다. 따라서 한국 사회가 안고 있는 일자리 문제는 경제성장보다는 고용을 최우선시하는 ‘일자리(고용) 극대화의 패러다임’에 달려 있다.
일자리 나누기의 좋은 프로그램 사례를 적극적으로 검토할 필요가 있다. 일자리와 관련하여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다. 나눈다는 일은 이해당사자들의 상호인식과 사회협약이 필수조건이다. 과제는 일자리 나누기의 사회적 합의를 어떻게 만들어내느냐다. 일자리 나누기의 개념을 사회적으로 확산하고 정책으로서의 가능성을 제시해야 한다. 일자리 나누기의 사회적 확산을 위한 사회마케팅(Social Marketing)을 적극 활용해야 한다.
보다 근본적으로는 정부가 추진하려는 일자리 창출이나 일자리 나누기 정책에 대해 세대별로 어떻게 인식하고 있는지를 경험적 자료에 근거하여 확인할 필요가 있다. 특히 청년일자리의 경우 청년세대와 정부, 그리고 기업 사이에 엄청난 인식의 괴리가 존재하고 있음을 숙지하고 객관적인 사실적 자료에 근거해 문제의 지형을 정확하게 파악하는 일이 그 어떤 것보다 중요하다.
글·박길성 (고려대 문과대학장·사회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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