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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생활

내 고향의 오래된 겨울 꿈이 이뤄졌다




평창이 2018년 동계올림픽 개최지로 발표되는 역사적인 순간, 나는 평창의 올림픽 경기장인 알펜시아 스키점프장에 서 있었다. 초저녁부터 몰려든 5천여 명이 스키점프장 앞 잔디밭을 가득 메우고 초조하게 발표를 기다리고 있었다. 스키점프대가 설치된 메인 스타디움의 대형전광판 TV에 ‘평창’이라는 글자가 거짓말처럼 떠오르는 순간, 현장에 모여 있던 사람들은 환호성을 지르며 얼싸안고 기쁨의 눈물을 흘렸다.

나 역시 이 감격스러운 순간에 눈물이 나오는 것을 참지 못했다.

아니 참고 싶지 않았다. 문득 몸이 허공에 뜬 것 같은 비현실적 느낌이 나를 감쌌고, 나는 단숨에 지구 반대편으로 날아가 발표장에서 목이 터져라 만세를 부르고 있었다.

문득 누군가 나를 잡고 흔들었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다시 스키점프대 앞이다. 외국 방송사의 취재기자들이 눈에 들어왔다. 그들도 우리의 기쁜 비명에 동화된 듯 박수를 쳐주었다. 눈앞에 솟아있는 스키점프대로 눈길을 돌렸다. 내 고향 평창이 그 높은 곳에서 활강해 세계를 향해 힘차게 도약하는 것 같았다. 순간 내 기억은 고향에서의 어린 시절로 돌아갔다.

눈 덮인 산골짜기에서 고로쇠나무를 깎아 만든 스키를 타던 소년들이 있었다. 짚을 가득 넣은 비료포대를 손에 들고 줄지어 비탈밭을 올라가던 소년 소녀들도 있었다. 어디 그뿐인가. 아이스하키스틱 모양을 닮은 나무를 찾아 사타구니까지 차오른 눈을 헤치며 산을 헤매던 소년들도 많았다.




어떻게 하면 썰매를 더 빨리 달리게 할 수 있을까 고민하다가 부엌칼을 훔쳐 썰매에 장착한 소년들도 있었다. 모두 내 어린 시절 동무들 얘기다. 겨울이 오면 우리는 모두 같은 꿈을 꾸며 살았다.

겨울에 눈이 많이 내리고 춥기로는 평창을 따라올 곳이 없다. 방문을 열 수 없을 정도로 많은 눈이 내리면 우리는 삽이나 넉가래를 들고 굴을 뚫느라 바빴다. 그 하얀 굴 속에 멍석을 깔고 화로까지 갖다놓으면 아늑하기 이를 데 없었다. 마치 에스키모가 된 기분이었다. 내린 눈이 얼고 그 위에 다시 눈이 내리면 우리는 아버지들에게 나무로 스키를 깎아달라고 조르기 시작했다. 모양새도 날렵하고 잘 나가며 심지어 튼튼하기까지 한 스키를 어깨에 올려놓고 동네 스키장으로 나갈 때의 흐뭇한 기분을 아시는가!

코가 부러진 스키를 든 채 터벅터벅 눈길을 걷는 친구 옆을 쌩하고 지나칠 때의 우쭐했던 기억도 여태 사라지지 않았다. 당시 우리는 스키를 타고 할 수 있는 건 거의 다 했다. 활강과 회전(손목시계로 기록까지 쟀다!), 심지어 어른 키 높이의 밭둑을 날아가는 점프까지. 배고픈 줄도, 옷이 젖는 줄도 모른 채 골짜기를 내달리며 무슨 뜻인지도 모르는 말을 힘껏 소리쳤다.

“양로–”
스키 타는 게 지칠 즈음이면 마을 개울이 꽝꽝 얼어 밤마다 얼음장에 금이 가는 소리가 들려왔다. 아이스하키 시즌이 돌아왔다는 신호였다. 잘 다듬어놓은 하키 스틱을 들고 작은 운동장만 한 개울로 나가면 벌써 동네 아이들이 저마다의 스틱을 들고서 불을 피워놓고 모여 있었다.

골대는 호박돌로 만들고 공은 단단한 물푸레나무를 잘라 대신했다. 그리고 스케이트 대신 운동화를 신고 경기에 들어갔다. 뒤로, 옆으로, 앞으로 넘어지면서 물푸레나무 공이 쪼개지고, 경기장 밖으로 도망간 공을 주우려다 얼음물에 빠지고, 공에 얼굴을 맞기도 하고, 골이냐 아니냐를 놓고 다투기도 하고….

한바탕 땀을 흘리고 난 뒤 이번에는 썰매에 배를 깔거나 엉덩이를 올려놓고 경사가 급하고 큰 돌들이 여기저기 튀어나와 있는 얼음판을 원조 봅슬레이 선수들처럼 요리조리 빠져나가곤 했다. 가끔 썰매가 뒤집히기도 하고 엉덩방아도 찧어가면서. 내 고향 평창의 오래된 겨울 꿈들이 그렇게 흘러와 오늘 여기까지 온 것이다.


자식들에게 나무 스키를 깎아주었던 그 아버지들과 하루에도 몇 번씩 눈과 얼음에 젖은 옷을 빨아주었던 어머니들, 그리고 스키와 썰매를 타던 아이들이 커서 모두 함께 남아공 더반으로 날아간 것이다. 마침내 평창의 오래된 꿈을 이룬 것이다.

아, 또 하나 결코 잊지 말아야 할 게 있다. 두 번의 좌절을 겪었을 때 평창의, 아니 이 땅의 아이들이 고사리손으로 접어서 날려 보낸, 함박눈을 닮은 종이비행기들이 있다. 손을 호호 불며 하늘로 띄워 올린 색색(色色)의 풍선들을 우리는 소중하게 기억해야 할 것이다. 그 아이들의 꿈이 우리의 미래다.




외신들로부터 한때 ‘평양’으로 오해받기도 한 강원도 평창은 완만한 경사를 이루어 영월과 맞닿은 남쪽을 제외하면 3면이 높은 산으로 둘러싸인 분지다. 이렇게 분지를 이루는 평창군은 강설량이 전국 최고 수준이어서 한국에서 동계올림픽을 개최하기에 가장 적합한 자연환경을 자랑한다.

1953년 대관령스키장이 문을 연 이후 평창은 휘닉스파크, 성우리조트, 용평리조트, 알펜시아리조트 등이 속속 들어서며 한국의 대표적인 스키 타운으로 자리 잡았다.

11월부터 이듬해 3월까지 평창의 평균 강설량은 2백50센티미터이고, 최근 10년간 2월에 쌓인 눈의 깊이는 평균 51센티미터, 평균 기온은 영하 4.8도였다. 알파인스키 경기에 영향을 미치는 기상 요소는 눈과 기온, 풍속이다. 기온의 경우 영하 10도에서 영하 5도 사이가 좋다. 즉, 평창은 동계올림픽 기간에 최적의 설질(雪質)과 기온을 보장할 수 있다는 뜻이다.

평창의 또 다른 자랑이 ‘HAPPY700’, 즉 평창 지역의 해발 고도 7백미터다. 해발 고도가 7백미터 이상인 곳이 평창 전체 면적의 65퍼센트. 이 고도는 사람과 동식물이 살기에 최적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평창군에 따르면 해발 고도 7백미터에서는 인체에 가장 적합한 기압 상태를 유지할 수 있어 건강한 생체리듬을 유지할 수 있다. 또 뇌에서 분비되는 멜라토닌 호르몬이 고·저지대에 비해 증가해 5~6시간의 수면만으로도 충분한 수면 효과가 있으며, 피로회복도 고·저지대에 비해 2~3시간은 빠르다는 것이다.

이렇게 해서 ‘건강과 휴양, 겨울레포츠의 최적지’로 꼽히는 평창에는 축제와 볼거리도 많다. 대관령눈꽃축제(1월), 평창송어축제(1월), 강원감자큰잔치(8월), 효석문화제(9월), 노성제(10월), 오대산불교문화축제(10월)와 같은 축제들이 평창의 매력을 더하고 있다. 또 지난해부터 일반에 처음 공개된 천연기념물 백룡동굴, 래프팅의 본류인 동강, 패러글라이딩으로 유명한 장암산 등 충분한 볼거리를 지니고 있다.

권혁영 평창군청 문화예술계장은 “2018 동계올림픽 유치로 세계의 이목이 평창에 쏠린 만큼 이제 세계인의 눈높이에 맞춘 문화·관광상품 개발과 홍보를 위한 마스터플랜을 세워 나갈 것”이라고 전했다.

글·박경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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