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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생활

평창의 성공은 이들의 땀과 눈물이었다




지난 7월 6일 밤 한국프레스센터 7층 평창동계올림픽유치위원회 사무실. 더반에 가지않고 국내에 남아있던 15명 가량의 직원들이 TV를 주시하고 있었다. 자정이 지나면서 숨조차 제대로 쉬기 힘들 정도로 팽팽한 긴장감이 감돌았다. 운명의 시각이 다가오고 있었다.

밤 11시 무렵 평창이 이긴 것 같다는 외신을 접했을 때도 직원들은 들뜨지 않았다. 1차 투표에서 이기고 2차 투표에서 진 경험이 두 차례나 있었던 터였다. 샴페인은 최종 발표 후에 터트려도 늦지 않았다. 마침내 자크 로게 IOC 위원장이 단상에 올라왔다. 그의 입에서 “평창”이 흘러나왔다. 저도 모르게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모든 수고와 고초를 몇 배로 보상받은 느낌이었다.




그 자리에 있던 김만기 미디어부장은 아내에게 전화를 걸었다. 통화를 기다리는 짧은 순간에 지난 12년의 세월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다. 잦은 출장과 야근을 참아준 아내의 내조가 한없이 고마웠다. 기자들과 옥신각신하며 평창에 우호적인 여론을 형성하느라 애썼던 시간들이 새삼스러웠다.

김 부장은 평창 동계올림픽 유치의 전 과정을 함께한 사람이다.
강원도청에서 근무하다 유치위원회로 자리를 옮겼다. 12년의 시간이 지났고 두 번의 고배를 마시는 뼈아픈 경험을 했다. 이번이 마지막이라는 생각으로 혼신의 노력을 아끼지 않았다. 위대한 삼세 번이었다.

2018년 평창 동계올림픽 유치는 수많은 사람의 땀과 눈물이 모인 결과물이다. 언론의 화려한 스포트라이트를 받지는 않아도 꼭 필요한 일을 묵묵히 완수해 낸 ‘숨은 주역’들이 부지기수다. 유치위원회의 직원들이 대표적이다.

오원종 전략기획팀장은 더반 현장에서 평창이 2018년 동계올림픽 개최지로 결정되는 순간을 맞았다. 하지만 마음껏 기뻐할 수 없었다. 더반에 와 있는 동안 부친이 운명하셨기 때문이다. 임종을 지키지도 못한 데다 장례에도 참석하지 못한 불효가 가슴을 눌렀다.

오 팀장이 부친의 부음을 들은 것은 지난 6월 29일이었다. 유치위원회는 즉각 귀국 통보를 내렸지만 도저히 그럴 수가 없었다. 30년의 강원도청 공무원 생활 가운데 3분의 1을 유치위원회에서 일했다. 그 세월의 노력을 중도에서 멈출 수는 없었다. 그래도 위로가 되는 것이 하나 있었다. “반드시 동계올림픽을 유치하고 돌아오라”는 부친의 유언 아닌 유언이 이뤄진 것이다.

평창의 꿈을 미처 보지 못하고 세상을 떠난 ‘숨은 주역’도 있다.
오두환 전 평창 동계올림픽 유치위원회 행사지원팀장이 그렇다. 오팀장은 지난 2월 14일부터 20일까지 진행된 IOC 실사 기간 중인 2월 17일에 갑자기 의식을 잃었다. 간암이었다. 자신을 혹사시키며 누적된 피로와 스트레스가 원인이었다.


오 팀장은 병상에 누워 있으면서도 동계올림픽 유치에 매달렸다.
아픈 몸을 일으켜 평창 소식을 검색했다. “현지실사가 끝나기 전에 죽으면 동료들이 실사준비를 하는 데 차질을 빚을 수 있다”고 말할 정도로 그의 집념은 생사의 경계를 넘어선 것이었다.

오 팀장은 그렇게 바라던 평창 동계올림픽 유치 소식을 듣지 못하고 지난 4월 2일 세상을 떠났다. 두 달 뒤인 지난 7월 7일 평창이 드디어 성공했다는 소식에 아내 이기숙씨는 남편 생각에 기쁨과 회한의 눈물을 흘리고 말았다. 이씨는 남편의 꿈을 대신 이룰 것을 희망하고 있다. “기회가 주어진다면 평창의 성공적인 개최를 위해 남편을 대신해 작은 힘이지만 보태고 싶다”는 소망이다.

숨은 주역이라면 역시 강원도민을 빼놓을 수 없다. 특히 지난 2월 IOC 현지실사 당시 강원도민들이 보여준 헌신은 IOC 위원들을 감동시키기에 충분했다. 혹한의 날씨였지만 도민들의 열정은 뜨겁기만 했다. 수천 명이 거리로 나가 IOC 위원들을 맞으며 일제히 외친 “예스 평창”에 IOC 위원들은 깊은 인상을 받았다. 개최지 결정의 최우선 기준인 ‘지역주민의 지지’를 피부로 느끼는 순간이었다.

하이라이트는 며칠 후인 2월 18일 강릉국제실내빙상장에서 벌어졌다. 빙상경기장을 살피러 온 실사단은 2천18명의 강원도민으로 구성된 합창단의 노래를 들었다. 거동이 불편한 장애인, 여든의 노인, 초등학생, 군인, 다문화주부 등 합창단원은 강원도민의 축소판이었다. 이들이 부른 노래는 아바의 ‘아이 헤브 어 드림(I have a dream)’이었다. 평창 동계올림픽을 향한 도민들의 염원을 담은 것은 물론이었다.

조양호 유치위원장은 개최지 결정 후 가진 기자간담회를 통해 “강원도민들이 남녀노소 가리지 않고 길가에 나와 IOC 실사단을 환영해 준 것과 2천18명의 합창단이 빙상장에서 노래를 부른 장면은 평생 잊지 못할 것”이라며 당시의 감동을 전했다.

글·변형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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