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생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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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창동계올림픽 유치가 확정된 지난 7월 7일, 포털사이트 다음의 인기검색어 순위 1위는 나승연 2018평창동계올림픽유치위원회 대변인이었다. 네티즌들은 미모와 지성을 겸비한 그녀에 대해 ‘더반의 여신’이라며 환호하고 있다.
나 대변인은 개최지 투표 직전 실시된 프레젠테이션의 처음과 끝을 장식했다. 그는 유창한 영어와 불어로 “평창2018을 준비하는 우리의 주제인 ‘새로운 지평’은 희망”이라면서 “우리의 꿈은 전 세계 곳곳에서 동계스포츠의 혜택을 보지 못하는 지역 선수들이 동계올림픽 및 패럴림픽(장애인올림픽)에 참가하는 모습을 보는 것”이라고 말했다. 정부 관계자들이나 이건희 회장, 조양호 유치위원장 등은 이번 유치의 성공요인 가운데 하나로 김연아·문대성·토비 도슨 등 젊은 스포츠 스타들과 나 대변인의 성공적인 영어 프레젠테이션을 꼽았다.
나 대변인은 외교관인 아버지 나원찬 전 주멕시코 대사를 따라 어려서부터 외국에서 학교를 다니면서 영어와 불어, 그리고 국제감각을 익혔다. 1996년 아리랑TV 공채 1기로 입사해 방송기자 겸 앵커로 활동했다. 이후 여수엑스포조직위원회를 거쳐 작년 4월부터 평창유치위 대변인을 맡았다.
평창이 올림픽 개최지로 확정된 후 나 대변인은 “자크 로게 위원장이 평창을 발표하는 순간 심장이 터지는 줄 알았다”며 “갑자기 IOC 현지실사 때 강릉빙상장에서 2천18명의 합창단이 ‘아이 해브 어 드림’(I have a Dream)을 부르면서 올림픽 유치를 간절하게 소망하던 모습이 떠올라 눈물을 참을 수 없었다”고 말했다.![]()
두 차례 동계올림픽 유치전에서 실패한 평창은 2009년 9월 2018년 동계올림픽 유치에 도전하면서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을 유치위원회 위원장으로 영입했다. 조 위원장은 위원장 자리를 맡으면서 “대한민국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국가적 대업에 심부름꾼 역할을 하겠다”고 말했다. 이후 조 위원장은 대한항공 업무는 지창훈 총괄 사장에게 위임하고, 평창유치위 활동에 올인했다.
조 위원장은 종합물류기업인 한진그룹 CEO로서 세계 유수의 기업인·국가지도자들과 쌓은 네트워크를 활용하는 한편, 대한항공이 보유한 비즈니스 전세기까지 유치전에 동원했다. 전세기로 5대양 6대주를 누비면서 시간을 효율적으로 활용해 한 사람의 IOC 위원이라도 더 만나기 위해서였다. 그는 2009년 9월 열린 121회 IOC 총회에서부터 이번 더반 IOC 총회까지 모두 34회의 해외행사를 치러 냈다. 그동안 그가 뛴 거리는 지구 13바퀴에 해당하는 50만9천1백33킬로미터였다.
지난 2월 IOC 실사단이 평창에 왔을 때, 조 위원장은 평가단이 탄 버스에 동승해 ‘평창행 버스의 수석 사무장’을 자처했다. 실사단 입국시에는 인천공항공사 측에 탑승구 변경을 요청해 실사단의 이동거리를 줄였다.
조 위원장은 프레젠테이션을 하면서 울렁증을 경험하자 영국의 연설전문가를 찾아가 과외교습을 받기도 했다. 나중에 그는 “영화 ‘킹스 스피치’ 주인공의 심정을 알겠더라”고 술회했다. 과거 2차례 평창에 분루를 삼키게 만들었던 테렌스 번스 헬리오스파트너스 사장을 프레젠테이션 총감독으로 영입한 사람도 조양호 위원장이었다.
조양호 위원장은 “IOC 실사단 방문 당시 도민들이 남녀노소 가리지 않고 길가에 나와 환영해 준 것과 2천18명의 합창단이 강릉빙상장에서 노래를 부른 장면은 평생 잊지 못할 것”이라면서 “강원도민,이명박 대통령을 비롯한 정부 관계자, 젊은 체육위원들까지 모두가 합심해서 이뤄낸 결과”라고 말했다.![]()
김진선 특임대사(전 강원도 지사)가 동계올림픽 유치를 처음 구상한 것은 1996년 강원도 행정부지사 시절부터였다. 2007년 동계올림픽 유치를 위한 두 번째 도전에서 실패한 후 <월간조선>에 기고한 글에서 그는 어린 시절의 가난과 낙후된 강원도의 한(恨)에 대해 얘기하면서 “동계올림픽의 꿈은 그런 한으로 피멍 든 제 가슴을 비집고 자란 싹이었다”고 말했다.
민선 지사로 당선된 이듬해인 1999년 2월, 김 전 지사는 동계아시안게임 폐막식에서 동계올림픽 유치 도전을 선언했다. 그는 ‘평창’을 얘기하면 ‘평양’이냐고 되묻는 IOC 위원들을 상대로 평창을 알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2003년 7월 체코 프라하에서 열린 IOC총회에서 평창은 최다득표로 1차 관문을 넘어서 세계를 깜짝 놀라게 했다. 비록 2차 투표에서 캐나다의 밴쿠버에 3표 차로 석패하기는 했지만, IOC 위원들도 “다음은 평창 차례”라고 할 정도의 선전이었다.
이후 김 전 지사는 재수에 도전했다. 그는 도지사로서 입을 수 있는 정치적 타격을 감수하면서 빙상경기장을 여러 지역에 분산배치하는 대신 강릉으로 일원화시켰다. ‘All within 30 minutes’ 시스템, 즉 ‘모든 것이 30분 이내에 가능한’ 시스템을 구축하기 위해서였다. 동계올림픽 개최시 주경기장과 설상 경기장, 숙소, 미디어본부 역할을 할 알펜시아리조트 건설에도 착수했다.
이러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김 전 지사는 2007년 과테말라시티에서 열린 IOC 총회에서 다시 한 번 분루를 삼켰다. 2차 투표까지 간 끝에 러시아 소치에 4표 차로 패한 것이다.
하지만 그는 3번째 도전을 선언했다. “되지도 않을 일을 또 벌인다”는 싸늘한 시선도 있었지만, 그는 굴하지 않았다. 작년 6월 3선을 끝으로 강원도 지사 자리에서 물러났지만, 작년 11월 2018 평창동계올림픽유치 특임대사를 맡아 동계올림픽 유치전의 선봉에 섰다.
3번에 걸쳐 동계올림픽에 도전하는 동안 그는 87만6천5백33킬로미터를 뛰었다. 지구 22바퀴에 해당하는 거리다. 외국 IOC 위원들은 그를 ‘올림픽 거버너(Olympic Governor)’라고 불렀다.
3번째 도전 끝에 평창이 2018년 동계올림픽 개최지로 결정되던 날, 그는 “지금 너무 행복하다. 오늘은 환희의 눈물, 화려한 눈물을 흘렸다”며 감격스러워했다.![]()
‘밴쿠버의 여왕’ 김연아 선수가 더반에서는 평창유치위 홍보대사로 맹활약했다.
사실 김연아 선수는 존재 자체로 평창에 힘이 되었다. 과거 한국은 쇼트트랙 한 종목에서만 두각을 나타내는 ‘절름발이 동계스포츠 강국’이었다. 이런 한계는 평창의 동계올림픽 유치에도 불리하게 작용했다. 김연아의 등장으로 인해 한국은 이런 한계에서 벗어날 수 있었고, 평창의 올림픽 유치 노력에는 탄력이 붙었다.
게다가 김연아 선수는 평창이 동계올림픽 유치에 도전하면서 동계스포츠 육성을 위해 시작된 ‘드라이브 더 드림’(Drive the dream) 프로젝트의 수혜자였다. 동계스포츠 불모지인 아시아의 평창에서 동계올림픽을 개최함으로써 동계스포츠의 저변을 넓힌다는 대의명분의 상징이 된 것이다.
김연아 선수는 프레젠테이션에서 이런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10년 전에 나는 어린 소녀였다. 운이 좋아 좋은 시설과 코치들을 만날 수 있었다”면서 “하지만 아직 많은 소년소녀들이 자신의 꿈을 이루고 싶어하고, 올림픽이란 꿈을 이루기 위해 다른 지역과 함께 나누는 것이 중요하다. 평창2018은 그것을 이루기 위해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김연아는 이 프레젠테이션을 위해 빡빡한 일정을 소화하고 숙소로 돌아온 후에도 매일 2시간씩 전문 컨설턴트로부터 손짓과 시선 처리 등 세세한 부분에 대해서까지 지도를 받았다.
프레젠테이션에 앞서 김연아 선수는 남아공의 피겨 꿈나무 20여명을 만나 피겨 동작을 지도했고, 자신을 찾아온 남아공의 피겨 꿈나무 타마라 제이콥스를 격려하기도 했다. 남아공 일간지에 “평창 동계올림픽을 계기로 소외지역에 올림픽의 가치가 전파되었으면 한다”는 내용의 기고도 했다.
유치위 관계자는 “3번째 도전이라는 절박함 때문에 무거웠던 분위기가 김연아의 합류로 한결 가벼워졌다”고 말했다.
평창의 강력한 라이벌이었던 독일의 뮌헨은 1980년대 피겨 스타였던 카타리나 비트를 내세웠지만, 현재의 피겨여왕 김연아를 앞세운 평창에 완패했다.![]()
문대성 IOC 선수위원은 2004년 아테네 올림픽 태권도 남자 80킬로그램 이상급에서 시원한 뒤후려치기 한 방으로 금메달을 거머쥐면서 국민들의 뇌리에 깊이 각인됐다. 2008년 베이징올핌픽 때에는 태권도복을 차려 입고 발로 뛰는 선거운동을 펼친 끝에 29명의 후보
가운데 1위로 IOC 선수위원으로 당선됐다.
작년 2월 문대성 위원은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과거 일부 선수 위원이 지나치게 자주 자국 유치 후보도시를 입에 올려 오히려 역효과를 냈다는 말을 들었다”면서 “말로 자꾸 도와달라고 하는 것 보다는 평소의 스킨십이 중요하다. 나와 친해져야 평창에도 호감이
생기지 않겠나”라고 말했다.
이 말처럼 문대성 위원은 이후 스킨십을 무기로 IOC 위원들의 마음을 파고들었다. 나이 든 IOC 위원들에게는 스스럼없이 다가가 어깨를 주물러 줬다. 지난 5월 스위스 로잔에서 열린 테크니컬 브리핑이 끝난 후에는 “남은 기간 동안 조금이라도 더 많은 위원을 만나겠다”면서 귀국을 미뤘다.![]()
“평생의 한을 푼 것 같다.”
박용성 대한체육회장은 평창동계올림픽 유치가 확정된 후 이렇게 말했다.
박용성 회장은 평창유치위의 터줏대감 중 한 사람이다. 그는 2003년과 2007년에는 IOC 위원 겸 국제유도연맹(IJF) 회장 자격으로 평창동계올림픽 유치를 위해 뛰었다. 2009년 대한체육회장 취임 이후에는 “너무 평창동계올림픽 유치에만 매달려 다른 국내 하계종목 경기단체 회장들의 눈총을 받고 있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평창에 올인했다.
박 회장은 국내에서 열리는 각종 종목별 국제대회 때에는 직접 오찬이나 만찬을 개최하면서 평창을 홍보했다. 두산중공업 회장이기도 한 박 회장은 본인의 해외출장비를 대한체육회 예산이 아닌 자기 돈에서 지출했다.
대한체육회장 취임 후 그가 여행한 거리는 지구 13바퀴에 해당하는 51만3천7백7킬로미터에 달한다. 이런 노력으로 그는 IOC 위원의90퍼센트 이상을 만났다.
박 회장은 IOC 실사단의 평창 실사를 비롯해 런던 스포트 어코드, 스위스 로잔 테크니컬 브리핑 등 올 들어 열린 모든 국제행사에 프레젠터로 참여했다.
박 회장은 더반에 도착한 후 “이번에 실패하면 바다에 빠져 죽겠다”며 결의를 다졌다. 결과가 나온 후 그는 “이길 것이라고는 생각했지만, 이렇게 큰 표차가 날 줄은 예상하지 못했다”며 활짝 웃었다.![]()
부산 출신인 토비 도슨은 3살 때 시장에서 길을 잃고 고아원에서 지내다가 초등학교 1학년 때 미국으로 입양됐다. 학교에서 ‘중국인’이라며 놀림을 받던 그에게, 스키 강사 출신인 아버지는 스키를 가르쳤다. 이후 그는 자신감을 되찾게 됐다. 2006년 토리노동계올림픽에서는 프리스타일스키 남자 모굴 부문에 출전해 동메달을 땄다.
평창유치위는 토비 도슨을 더반 프레젠테이션의 히든 카드로 내세웠다. 그는 더반에 처음 도착했을 때만 해도 프레젠테이션 연습이 덜됐다는 지적을 받았지만, 연설원고를 줄곧 들고 다니면서 맹연습을 해 그런 우려를 불식시켰다.
마지막으로 프레젠테이션에 나선 토비 도슨은 “입양아 출신으로 정체성에 혼란을 겪을 때 스키를 탔다. 그것이 긍정적으로 자신을 표현할 수 있는 수단이었다”고 말했다.![]()
지난 4·27 보궐선거에서 당성된 최문순 강원도 지사는 자신을 내세우지 않는 겸양의 리더십을 통해 평창동계올림픽 유치에 일조했다.
원래 더반 총회 프레젠테이션 발표자 명단에는 최 지사의 이름이 있었다. 올림픽이 열리는 지방의 자치단체장으로서 당연한 일이었다. 하지만 유치위의 외국인 컨설턴트들은 “IOC 위원들이 강원도지사가 자주 바뀐다는 인상을 받을 수 있다”면서 최 지사의 이름을 빼자고 제의했다. 최 지사 측은 처음에는 “야당이라 제외하는 것 아니냐”면서 반발했지만, 그 진의를 이해한 후에는 이를 흔쾌히 받아들였다.
평창 유치가 확정된 후 최 지사는 “주민의 삶에 직접 도움이 되는 올림픽, 흑자 올림픽이 되도록 노력하겠다”고 다짐했다.![]()
재계와 스포츠계에서는 서슴지 않고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을 이번 평창 유치전의 ‘1등 공신’ 가운데 한 사람으로 꼽는다.
하지만 이건희 회장의 활동이 표면에 드러난 것은 거의 없다. 한 삼성 관계자는 “‘톱 스폰서’는 자국의 이익을 위해 조직적이고 적극적으로 개입해서는 안 되며 중립을 지켜야 한다는 IOC 윤리 규정 때문에 이 회장이 그나마 IOC 위원 자격으로 개인적으로 뛰는 것을
그룹 차원에서 도와주지 못한 채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지난 2009년 말 IOC 위원 자격을 회복한 이 회장은 작년 2월 밴쿠버 동계올림픽부터 이번 더반 총회까지 모두 11차례에 걸쳐 1백70일 동안 해외출장을 했다.
그동안 이동한 거리만 21만킬로미터, 지구를 다섯 바퀴 넘게 돈 셈이다. 그동안 1백10명의 IOC 위원을 거의 다 만났고, 일부 유력위원은 3번이나 만나기도 했다.
삼성 관계자들에 의하면 이 회장이 해외 출장 때에는 점심·저녁은 물론, 일정을 빡빡하게 쪼개 IOC 위원을 만났고, IOC 위원들이 한국을 방문하면 기존 일정을 전부 취소하고 IOC 위원을 먼저 만났다고 한다.![]()
올해 1월 취임한 정병국 장관은 체육을 담당하는 주무장관으로서 뒤에서 소리 안 나게 유치위 활동을 도왔다. 지난 5월 로잔에서 열린 테크니컬 브리핑에서 토마스 바흐 뮌헨유치위원장과 카타리나 비트 유치이사회 의장은 “동계올림픽이 세계적으로 확산되려면 겨울스포츠가 탄생한 유럽으로 돌아와 뿌리를 더욱 강화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에 맞서 정 장관은 “동계스포츠가 유럽에서 시작된 것은 맞지만 아시아에서 굵은 줄기와 화려한 열매를 맺어야만 뿌리도 더욱 튼튼해질 것”이라고 받아쳤다.
정병국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은 귀국 후 “정부의 드라이브 드림 1단계 프로젝트는 동계올림픽 유치라는 결실로 나타났다. 드라이브 드림 2단계 프로젝트서는 5억 달러의 예산을 지원할 예정이며 썰매나 ,스키 종목서도 연습을 평소에 훈련 할 수 있도록 인프라를 구축하겠다”고 밝혔다.
글·배진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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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K-공감누리집(gonggam.korea.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