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생활

최근 세계의 도시들은 문화공간을 조성하고 다양한 프로그램을 제공해 도시의 문화성을 강화하고 그 구성원의 삶의 질을 높이려 노력하고 있다.
이런 시도는 관광이나 산업의 발전에도 영향을 미치는 인프라로 활용된다. 즉, 도시 차원에서 지역에 다양한 문화공간을 재편하고 효과적으로 관리함으로써 도시의 창조적 능력을 높여, 그 도시의 사회·경제활동에 영향을 미치는 소위 ‘창조도시’를 지향하고 있다. 이러한 노력은 대도시만이 아니라 중소도시나 농어촌 지역으로도 확산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이런 흐름에 부응해 정부와 지방자치단체에서 많은 정책을 수행하고 있다. 민간에서도 여러 사업이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다. 저마다 창조도시·문화도시를 표방하면서, 시민을 위한 문화공간 조성, 도심재생 프로젝트나 유휴시설 재활용, 예술가를 위한 주거 공간 마련, 테마파크 건설 등을 추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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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많은 도시가 무슨 도시, 무슨 지역을 칭하고 있고, 국제기구가 선정했다는 무슨 지구에 각종 브랜드 마을과 수백 개의 길들을 보면 가히 ‘지역 작명(作名)의 전성시대’를 보는 듯하다. 그러나 냉철하게 보면 그 실효성에 대해서는 많은 의문이 생긴다.
지자체들이 거금을 들여 마련한 많은 시설이 운영난을 호소하고 있다. 구름 같은 방문객을 기대했던 곳이 개점휴업 상태다. 주민의 무관심에 방치되는 경우도 많다. 애초의 목적은 온데간데없이 엉뚱한 용도로 쓰이는 경우도 많다.
이런 실패들은 여러 가지 요소의 합작품이다. 사업에 대한 철저한 분석과 검토 없이 나중에 어떻게 되는 말든 일단 사업을 따서 예산을 확보하고 보자는 욕심, 지역의 규모나 역량에 관계없이 큰 예산의 사업을 선호하고 덩치만 키우려는 과욕, 어떤 식으로든 시설만 해 놓으면 사람들이 몰릴 것이라는 안일한 마케팅 전략을 들 수 있다.
그외에 프로그램이나 운영 및 홍보는 액세서리처럼 붙어 있는 하드웨어 중심의 계획, 전문가의 의견보다는 윗분의 뜻에 더 치중해야 하는 의사결정 구조, 지역의 토호세력과 업자들의 이해관계에 따른 나눠먹기식 사업진행, 건축 철학의 부재를 보여주는 치졸한 디자인적 안목, 빤히 보이는 리스크에 대한 무대책, 결과에 대한 책임의 부재 등이 있다.
이런 고질병은 좀처럼 고쳐지지 않고 있는데, 사업은 자꾸 생겨간다. 관변(官邊) 용역업자로 전락한 대학이나 공공연구소의 무성의한 보고서는 캐비닛으로 직행하고, 보따리장수식 업체들은 납기에 급급하여 함량미달의 자문의견을 쏟아낸다. 사심 없이 기여할 수 있는 타지(他地)의 전문가는 지역의 배타성에 배겨날 수가 없고, 힘센 지역민들은 일종의 권력이 되어 간다.![]()
예술가들은 지역을 고려하지 않은 마스터베이션식의 프로젝트만 벌여 놓고, 주민들은 영문도 모르고 박수를 친다. 그 결과 쓰레기 같은 시설만 양산되어 흉물이나 애물단지로 전락하면 나중에 조롱거리 사례를 보기 위한 순례자만 찾아올 뿐이다. 그냥 시장의 원리에 맡겨 망하게 하면 딱 좋겠으나 거기에 들어간 국민의 혈세가 아까워 이리저리 궁리해 보지만 이미 ‘백약이 무효’인 지경이다.
성공한 지역은 특징을 가지고 있다. 익숙함과 신선함, 평범함과 비범함, 지역적인 것과 보편적인 것이 조화를 이룬다. 고유의 정체성(正體性)이 있어 개성이 강하지만 거부감을 주지 않는다.
이러한 곳에서는 즐거운 호기심으로 지역을 돌아보고, 새로운 것을 발견하고 놀라며, 거기서 다양한 사람들과 만나 대화를 나누고 교류하며, 영감을 나누고 힘을 얻을 수 있다.
자연적인 것과 계획된 것이 균형을 이루고, 새로움과 다양성을 추구하지만 전통을 존중한다. 유산은 여전히 살아있으며 세상과 소통하고 있다. 자극과 흥분, 그리고 차분함과 고요함 사이에 적당한 공존이 있다. 질서정연한 것과 자유로움이 어우러지는 곳이다.
결국 성공적인 창조지역은 그 지역의 역사를 소중히 여기고 유산과 자원들을 효과적으로 활용하는 데서 나온다.
각 시행 주체가 저마다 충실하게 역할분담을 하며, 장기적으로는 이를 지속적으로 영위 할 인력을 육성·확보하고, 교육을 통해 전문성과 자생력을 키워 나가야 한다.
글·이선철 (‘감자꽃스튜디오’ 대표·숙명여대 정책산업대학원 겸임교수)![]()
지금 각지에서 행해지고 있는 창조지역사업이 그런 잘못을 되풀이하지 않으려면 보다 철저하게 정책적 비전을 점검하고 전략을 수립하며, 현실적인 실천방안을 고민해야 한다. 이를 위해 일반적인 마케팅 믹스의 4P(product, price, promotion, place)에 빗대어 성공을 위한 주요 요소를 또 다른 4P(place, program, promotion, people)로 구분하여 생각해 볼 수 있다.
Place 담을 그릇이 중요하니 시설을 조성하는 것 자체가 나쁜 것은 아니다. 그러나 지역의 특성을 살리기 위한 고려는 꼭 필요하다. 조성된 시설은 지역사회의 거점이자 장소마케팅의 중심이 되어야 한다. 관계 주체들 간의 소통과 설득, 교육과 이해의 과정을 병행하며, 이 과정에서 전문가를 적극 활용해야 한다. 이를 통해 조성된 시설은 지역과 어울리는 수준 높은 예술성과 시각효과로 랜드마크의 역할을 하는 것이 필요하다.
Program 프로그램은 시설 못지않게 중요하다. 프로그램이 시설조성의 부대계획 수준으로 고려되어서는 희망이 없다. 프로그램은 시설의 목적에 부합하며, 지역민과 외부 방문객의 욕구와 수준을 모두 만족시켜야 한다. 일상적인 것과 특별한 행사의 포트폴리오가 잘 구성되어야 하며 사회·문화·경제적 부가가치의 창출에 단계적으로 고루 도움이 되어야 한다.
Promotion 위의 두 가지를 살아 있게 하는 것이 넓은 의미의 판촉이다. 이는 홍보와 마케팅을 아우르는 포괄적 개념이다. 결과를 널리 알려서 방문과 참여를 유도하고, 그 중요성을 공감시키며 나아가 대외적인 네트워킹의 단초를 제공하는 전방위 마케팅 전략이 필요하다. 일회적이기보다는 타깃에 대한 입체적 소통채널이 확보되어야 한다.
People 모든 정책과 사업은 결국 사람을 위한 것이다. 그리고 이의 집합체인 지역공동체가 중심이 되어야 한다. 주민의 자존감과 행복을 우선하여 계획해야 하지만 이것이 배타성이나 권력으로 흘러서는 안 된다. 이를 위해 지역에서는 행정과 주민, 그리고 전문가의 협업(協業)이 필요하며 외부와의 네트워킹 시스템도 구축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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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K-공감누리집(gonggam.korea.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