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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생활

경기 뒤의 인생에도 명중 위해 준비해야




흔히들 운동 경기를 ‘각본 없는 드라마’라고 한다. 각본 없는 드라마의 최고봉은 바로 올림픽일 것이다. 1990년대를 살아간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1992년 바르셀로나올림픽을 인상 깊게 기억하고 있을 것이다.

사격의 여갑순이 금메달의 포문을 열고 여자 양궁이 개인·단체 금메달을 휩쓸었다. 마지막 날, 마라톤의 황영조가 금메달로 대미를 장식하며 국민에게 잊을 수 없는 감동을 안겨줬다. 12개의 금메달 중 네번째 금메달의 주인공이 바로 사격의 이은철이었다.

이은철은 시드니올림픽을 끝으로 2001년 은퇴했다. 그리고 은퇴 직후 미국의 IT업체에 취직했다. 선수생활을 하면서 미국의 루스란대학에서 컴퓨터공학을 전공한 덕이었다. 5년 후인 2006년에는 회사를 차려 CEO로 ‘전업’했다.

사업을 하면서도 사격에 대한 관심의 끈은 놓지 않았다. 지난해 3월에는 사격 국제심판 자격을 획득했다. 이력만 보면 비교적 순탄한 인생을 살아온 듯하지만 이은철은 ‘지금까지 어떤 것도 쉽게 얻어본 적이 없다’고 했다.

우리나라 국가대표 선수 중 올림픽 최다 출전 기록을 갖고 있습니다.
“1984년 로스앤젤레스올림픽부터 2000년 시드니올림픽까지 총 다섯 번 나갔습니다. 사격은 힘으로 하는 운동이 아니지 않습니까. 여섯 번, 일곱 번도 나갈 수 있었을 테지만 그만뒀습니다.”

바르셀로나올림픽을 기억하는 국민이 많습니다.
“스포츠 쪽에서 보자면 1988년, 1992년 올림픽은 ‘참 좋았던 시절’입니다. 88 서울올림픽에서 우리나라가 올림픽 메달을 많이 땄잖아요. 그런데 원래 자기 나라에서 치르는 경기에는 조금이라도 이점이 있지 않습니까. 한국이 88올림픽의 성과를 이어나갈 수 있을까, 하는 의심에 한국 스포츠는 저력이 있다는 걸 잘 보여준 게 바로 바르셀로나올림픽이었지요. 귀국해서 김포에서 시청까지 카퍼레이드도 하고 참 환영을 많이 받았습니다.”

그런데 ‘홈그라운드 이점’이 있었을 서울올림픽에서는 정작 메달을 못 땄습니다.
“저는 지금까지 인생을 살면서 어떤 것도 쉽게 얻어본 적이 없습니다. 88올림픽 직후가 제 인생에서 제일 힘든 시기였습니다. 그렇지만 88올림픽 당시의 경험 때문에 제 인격이나 인성이 형성됐다고 생각해요. 1987년도만 해도 정말 두려울 게 없었습니다. 연습 때도 세계 기록을 부지기수로 쏘고 한국신기록을 열 몇 번씩 경신하고 그랬어요. 무서울 게 없었죠. 이때 메달 땄으면 제가 참 건방져지고 못돼지지 않았을까, 생각합니다.”

시드니올림픽 직후에 그만두셨는데.
“운동을 계속할 열정이 없었어요. 운동하면서 저의 목표는 오로지 올림픽 금메달이었습니다. 어릴 때부터 꿈꿔왔던 그 꿈을 바르셀로나에서 이뤘죠. 그 후에는 전진하고 싶다는 마음이 안 들었습니다.

1994년 히로시마 아시안게임이 끝나고 감독님한테 코치를 시켜달라고 했습니다. 다른 선수를 지도해 금메달리스트로 키우는 것도 재밌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런데 지도자로 전업하는 게 잘 안됐습니다. 그래서 결국 시드니올림픽까지 나가게 됐죠. 1994년에 선수 생활을 그만뒀으면 메달리스트 한 명 정도는 키울 수 있지 않았을까 지금도 생각합니다.”

지도자의 꿈을 아직도 갖고 있습니까.
“지도자도 좋고 어떤 형태로든 소년소녀 가장들을 돕고 싶습니다. 능력은 있지만, 가정형편이 어려운 아이들을 조금만 도와주면 그 아이뿐만 아니라 그 집안이 살더라고요. 강초현을 보고 그런 생각을 했습니다. 초현이가 시드니올림픽 때 위기가 있었어요. 한국과 호주의 환경 차이를 잘 모른 거예요. 저같이 대회 경험이 많은 선수는 그걸 다 알고 준비하는 노하우가 있는데 그 친구는 시드니에 가자마자 환경이 달라지니까 훈련 내내 제 실력이 안 나오는 거예요.

그때 저의 경험을 좀 알려줬습니다. 그게 잘 맞았는지 경기 당일에 높은 점수를 쐈어요. 물론 워낙 기본 실력이 있는 선수였죠. 그때 ‘아, 내가 적어도 실력 있는 선수가 경험이 부족해서 실패하는 것은 막아줄 수 있겠구나’ 하고 느꼈습니다. 아이들을 돕겠다는 꿈은 지금도 간직하고 있어요.”

1994년에 은퇴하지 않고 2000년까지 선수생활을 지속하신 걸 후회하시나요.
“많이 후회합니다. 그때 그만뒀으면 제 분야에서 좀 더 앞서나갈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해요. 사업이라는 게 해보니까 굉장히 힘들어요. 쉬운 게 아닙니다. 지금까지 위기를 두세 번 겪었어요. 좀더 이 분야에 일찍 뛰어들었다면 지금쯤 좀 더 정착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합니다.”

국가대표로서의 경험이나 명성이 사업에 도움이 되지 않았습니까.
“도움이 된 부분이 있습니다. 바로 ‘집중력’입니다. 국가대표가 되고 메달을 향해 훈련할 때는 목표에 집중하지 딴 짓 안 하지 않습니까. 그 부분이 참 도움이 됐습니다. 메달리스트로서의 명성도 솔직히 도움이 됐지요. 투자를 받는 데 도움이 됐습니다. 하지만 그거만 가지고 사업이 돌아가는 것은 아닙니다. 제가 잘하는 부분이 있어요. 어떤 아이템이나 기술을 보면 ‘아 이건 이렇게 해야겠다’ 기획하는 부분에 자신이 있어요. 제가 아직은 성공한 게 아닙니다.

작년에 너무 힘들었어요. 제품 개발에 몇십억 이상이 들어가는데 개발이 진행되는 동안에는 투자를 받았다고 해도 투자비가 다 소진되기 마련입니다. 저도 그 과정에서 위기가 있었어요. 제 차를 팔아서 직원들 월급 주고 그랬던 때가 있었습니다.”

후배 국가대표 선수들에게 해주고 싶은 조언이 있다면.
“경기 후에도 인생이 있다는 말을 해주고 싶습니다. 인생은 참 깁니다. 은퇴 후를 생각해야 합니다. 코치나 감독 등의 지도자 자리는 한정돼 있어요. 운동을 하면서 본인이 관심 가는 분야를 찾는 데에 시간을 조금이라도 할애할 필요가 있습니다.

훈련 중에도 충분히 시간을 낼 수 있어요. 주말 등 시간이 남을 때, 새로운 일을 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학교 공부를 열심히 해라 이런 말이 아니고, 본인이 나중에 뭘 할 것인지 연구하는 게 필요합니다. 이에 대한 국가 차원의 지원도 필요하고요.”

글·하주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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