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생활

추석 이후에 찾아온 늦더위 때문에 전력부족으로 인한 순환 정전사태가 일어났다. 6백56만 가구에 전기 공급이 중단되고 엘리베이터에 사람이 갇히는 등 많은 사고가 발생하였다. 예고 없이 일어난 일이라 국민들이 많이 놀랐고 불편과 손해도 상당했다.
사고 이후 시간이 지나면서 매뉴얼 준수 문제, 초기대응 실패, 책임 떠넘기기 등의 모습과 문책이 주요 이슈가 되고 있다. 그러나 이번 전력부족 사태는 일과적인 일로 치부할 수 없는 문제가 있다. 참으로 심각한 국가적 위기를 가져올 수도 있는 사안이기 때문이다.
‘블랙아웃’이 되면 며칠간 국가기능이 전면적으로 마비된다. 통신은 물론이고, 지하철과 신호등이 작동하지 않으며, 금융과 정부기능이 마비되고, 무엇보다 재난 서비스도 모두 정지되어 인명피해가 뒤따르는 결정적인 위기를 경험할 수 있다. 아찔한 일이다. 문책 등을 통해 문제를 피상적으로 해결하려 하거나 정치적으로 이용하려고만 할 것이 아니라 본질을 파악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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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기가 닥쳤을 때 매뉴얼을 잘 작동시켜 피해를 줄이는 것은 중요하다. 그러나 근본적인 문제를 치유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 국가적 위기에 대한 대응능력과 준비가 잘 작동하고 있는지를 검토해 보아야 한다.
블랙아웃을 면하기는 했지만 위기가 도래할 때 대처하는 과정에 대한 기술적 검토가 차분하게 이루어져야 한다. 또한 더 나아가서 전력시장의 구조적인 문제점을 직시하고 대응하는 것이 국가적 차원의 현안이라고 할 수 있다.
전력수요는 여름과 겨울에 피크를 이룬다. 여름 피크가 지나면 다가오는 겨울 피크에 대비하여 전국의 모든 발전기는 돌아가면서 정비 점검에 들어간다. 발전기도 닦고 조이고 기름 쳐주어야 피크 때 문제없이 능력을 발휘하게 된다. 또한 정비를 철저히 해야 비싼 설비를 가능한 한 오래 쓸 수 있다.
더위가 한풀 꺾이면 서둘러 정비계획을 시작한다. 수백 개의 발전기를 기간 내에 모두 정비하려면 서둘러서 하게 마련이다. 더구나 요즘처럼 전기 공급능력이 부족하여 예비율이 낮은 시기에는 빡빡하게 진행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예외적으로 찾아온 늦더위는 허용된 범위 밖의 전력수요를 유발하고 말았다. 예비율이 충분하다면 느긋하게 이것저것 살피며 할 수 있다. 하지만 예비율이 낮으면 여유를 가지고 정비하기 힘들기 마련이다.
예비율이 부족한 이유는 두 가지 가운데 하나이다. 전력을 공급하는 설비가 준비되어 있지 않거나 수요가 너무 높아서이다. 공급 능력부터 먼저 보자. 전기를 공급하는 발전소는 오래전부터 건설을 시작해야 한다.
원자력발전소는 약 10년 전부터 건설을 시작해야 한다. 비교적 빨리 건설할 수 있다는 가스발전소도 2~3년 전부터 건설을 해야 겨우 전기를 생산해 낸다. 그만큼 장기적으로 계획하고 면밀히 준비해야 공급능력이 늘어날 수 있다. 현재 전기공급이 필요하다면
오래전부터 시작했어야지 당장은 어쩔 수가 없다는 것이 전원계획에서 가장 어려운 점이다.![]()
그러면 10년 전부터 공급능력을 늘리는데 소홀했는가를 점검해 볼일이다. 당시의 여건으로 볼 때 결코 발전소를 적게 지은 것은 아니다. 오히려 매번 전력수급기본계획을 발표할 때마다 발전소를 과도하게 많이 짓는다고 비판을 받았다.
발전소를 무턱대고 지을 수는 없다. 미래를 재보지 않고 마구 짓는 것은 온당하지도 않다. 발전소를 건설하는 데에는 많은 돈이 들어가기 때문이다. 그뿐만 아니라 발전소를 자기 지역에 건설하지 않겠다고 반대했다. 돌이켜 보면 그러했다. 그 결과 공급능력은 결코
부족한 수준은 아니었더라도 미리 결정되어 있었다고 할 수 있다.
일단 공급능력이 결정되면 수요를 이에 맞게 조절해야 한다. 그런데 우리는 수요를 적절하게 유지하는 데 실패하였다. 물가를 먼저 걱정한 측면이 있었다. 전기요금이 오르면 물가를 자극하게 된다는 점이 강조되었다. 공공요금을 묶고자 하는 정책적 고려가 시장원리를 앞서 있었다.
가격이 싸니 자연히 전기소비는 급증하였다. 심야전기의 소비가 폭발적으로 늘어났고, 기름보일러를 쓰던 식당은 등유가격이 오르니까 전기난방으로 바꾸었다. 여름에는 냉방에, 겨울에는 난방으로 고급 에너지인 전기를 마구 쓰는 일이 만연하게 되었다.
그러나 에너지를 쉽게 마구 쓰던 시절은 지나갔다. 공급을 늘려서 해결하는 것은 더 이상 좋은 해법이 아니다. 한전은 독점 공기업이니까 정부가 제어할 수 있고, 그래서 전기요금을 싸게 할 수 있어서 좋은 일이라는 생각은 이제 시대착오임을 깨달아야 한다.
전력에도 시장에서 거래되는 일반 상품과 똑같은 경제원리가 적용된다. 시장에서 가격이 주는 신호작용을 무시하면 수요와 공급은 결코 균형을 이룰 수 없다. 이번 정전사태는 이 점을 잘 보여주고 있는 사례이다.
정전사태를 지나간 일로만 볼 것이 아니라 철저하게 조사하고 준비하여 앞으로 일어날 여러 가지 위험에 대비하여야 한다. 뿐만아니라 시장구조를 개선하고 가격을 적정하게 유지하여 수급의 균형을 이루어 나가야 한다. 왜냐하면 이대로 두면 전기부족과 정전사태는 계속 일어날 것이기 때문이다.
에너지를 아껴 쓰고 안정적으로 공급하는 일은 무엇보다 중요한 국가적 과제이다. 에너지를 생산하고 소비하며 거래하는 전 과정에 걸쳐 빠른 속도로 기술이 발전하고 있다. 과거에 없었던 새로운 대안들이 경합하는 과정에서 미래의 변화가 태동하고 있는 것이다. 시장에서 가격이 주는 시그널이 작동할 수 있도록 해야 새로운 기술이 에너지 시장에 들어올 수 있는 가능성도 넓어진다.
글·손양훈 (인천대 경제학과 교수)![]()
블랙아웃은 대규모 정전사태를 말한다. 전력 수요가 많아져 전압이 떨어지면서 일정 지역 전체의 전력 공급이 중단되는 현상이다. 규모에 따라 전국이 정전되는 것을 토털(Total) 블랙아웃, 이를 막기 위해 지역적으로 돌아가며 정전하는 것을 롤링(Rolling) 블랙아웃, 즉 순환정전이라 한다.
이번처럼 전력거래소가 전력수급 불균형에 따라 지역별로 강제정전할 때는 토털 블랙아웃이 발생할 가능성이 거의 없다. 통제 가능한 상황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중요설비가 크게 고장나면 토탈 블랙아웃의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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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K-공감누리집(gonggam.korea.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