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생활


우리나라 우주개발 도전의 시작은 1992년 우리별1호 발사다. 한국 최초의 위성인 우리별1호는 그해 8월 남미 프랑스령 쿠루우주센터에서 아리안 발사체에 실려 우주로 올라갔다. 3개월 뒤 우리별2호가 개발되기 시작됐고 이듬해 9월 발사됐다. 1995년부터는 우주개발 중·장기 기본계획에 따라 지구관측용 우리별3호를 독자 설계해 개발했고 4년 뒤 성공적으로 지구궤도에 진입시켰다. 이후 우리별4호인 과학기술위성1호를 개발해 발사했고 지구 및 대기 복사에너지를 측정하는 과학기술위성2호를 개발해 나로호에 실어 발사했다.
한국 최초의 통신위성인 무궁화1호는 1995년 8월 발사했다. 무궁화1호가 예정된 궤도에 오르지 못하자 이를 보완하기 위해 이듬해 무궁화2호를 쏘아 올렸다. 이때부터 화상회의, 초고속 데이터 전송 등이 가능해졌다. 1999년 9월에는 무궁화3호를 발사했다. 4개월 뒤에는 한반도 및 해양 관측, 과학실험을 하는 다목적실용위성 아리랑1호가 우주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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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7월에는 1호 때보다 해상도가 더 좋은 카메라가 장착된 아리랑2호를 성공적으로 발사해 1미터급 해상도로 지상을 촬영할 수 있게 됐다. 1개월 뒤에는 최초의 민군 복합위성인 무궁화5호를 발사했다. 한반도는 물론 일본, 중국, 대만, 필리핀 등에까지 고속 데이터 통신과 영상 서비스를 제공하며 일부 군 통신에 쓰이고 있다.
지난해 4월에는 한국 최초의 우주인이 탄생했다. 이소연 박사가 국제우주정거장(ISS)을 방문해 9박10일간 18가지 과학실험을 했다.
위성을 우주로 실어 나르는 데 필요한 로켓이 우주발사체다. 우주발사체 나로호의 가능성은 1993년부터 싹트기 시작됐다. 당시 발사된 로켓 KSR-I은 위성을 실을 수 없고 액체연료 대신 고체연료를 사용하는 초보 수준이었다. 우주발사체에는 한번 불붙으면 끝까지 타버리는 고체연료 대신 분사량을 조절해 방향과 속도를 제어할 수 있는 액체연료를 주로 쓴다.
1단형 고체 로켓인 KSR-I은 우리가 처음으로 자체 개발한 과학관측 로켓이다. KSR-I을 개량한 2단형 고체 로켓인 KSR-Ⅱ를 1998년 발사한 데 이어 2002년에는 드디어 액체연료를 사용하는 로켓 KSR-Ⅲ를 개발해 발사하는 데 성공했다. 위성 발사에 필요한 액체 로켓을 쏘아 올렸다는 의미가 있지만 실제 위성을 우주로 띄우기에는 한계가 있었다. 대형 액체 로켓을 개발할 필요가 있었다.
액체 로켓 기술은 장거리 미사일 기술과 엇비슷하기 때문에 미국 같은 선진국이 기술 이전을 꺼리는 분야다. 한국이 우주발사체 나로호를 개발하기 위해 러시아와 손잡았지만 가시적인 기술 이전이 없었던 이유다.
비록 절반의 성공에 그쳤지만 나로호 발사에는 큰 의미가 있다. 위성을 우주에 띄우는 발사체의 설계부터 발사까지 전 과정을 밟으면서 소중한 경험을 쌓고 핵심 노하우를 습득했기 때문이다.
어찌 보면 이제부터가 시작이다. 내년 5월경 한 번 더 발사한다. 2018년에는 나로호 개발 기술을 바탕으로 한국형 발사체로 쏘아 올릴 계획이다. 한국형 발사체는 나로호 개발 과정에서 얻은 경험과 노하우를 활용해 1백 퍼센트 국산 기술로 개발한다는 방침이다.
한국항공우주연구원에 따르면 한국형 발사체를 이용하면 4백50킬로그램급 달 탐사위성을 쏠 수 있고, 발사패드나 로켓을 세우는 장치 같은 발사대 기계장비와 일부 하드웨어를 변형하면 나로우주센터에서도 달 탐사위성을 발사할 수 있다.
2020년쯤에는 우리 손으로 개발한 달 탐사선을 한국형 발사체에 실어 달로 발사하는, 가슴 벅찬 광경도 볼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글·이충환(동아사이언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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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K-공감누리집(gonggam.korea.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