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생활

7월 10일 EU ‘133조 위원회’에서 27개 EU 회원국 대표들이 모인 가운데 EU집행위원회가 제출한 한·EU FTA 합의안은 지난 6월 프랑스 파리에서 한국 측 김종훈 외교통상부 통상교섭본부장과 EU측 캐서린 애슈턴 통상담당 집행위원이 마련한 사실상의 최종안이다. 이를 받아들이지 않으면 양측은 또 의견 조율을 위해 한참의 시간을 허비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2007년 봄부터 시작된 협상은 그동안 많은 진전을 이뤘다. 올 초엔 “이제 9부 능선을 넘었다”는 내부 평가도 있었다. 하지만 이후 협상은 교착상태에 빠졌다. 관세환급과 원산지 표기 방식 등 몇 가지 쟁점에서 도저히 접점을 찾지 못했다. 워낙 의견이 달라 서로의 양보만을 기다리며 시간을 보내야 했다. 그러다 이번 EU 대표 회의에서 합의안을 받아들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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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식이 전해지자 서울이 분주해졌다. 언론들은 주말 동안 한·EU FTA가 우리 경제에 미칠 영향 등 관련 분석 기사를 준비했다. 휴일이라 취재가 힘들었지만 다행히 대부분 미리 준비해놓은 기사가 있었다. 주요 20개국(G20) 정상회담이 열린 지난 4월 영국 런던에서 양측 대표가 만났을 때 타결이 거의 기정사실인 것처럼 알려졌다. 결국 양측 입장 차이만 확인하고 타결은 무산됐지만 덕분에 언론들은 어느 정도 기사를 준비해놓을 수 있었다.
청와대, 외교통상부 등 정부 역시 바쁜 주말을 보냈다. 월요일인 7월 13일에 있을 공식 회견을 준비해야 했기 때문이다. 마침 이명박 대통령은 EU 의장국인 스웨덴에서 정상회담을 앞두고 있었다. 한·EU FTA 타결 소식을 전 세계에 알리기에 더 없이 좋은 무대였다.
7월 13일 양국 정상은 ‘한·EU FTA의 잔여 쟁점에 대한 최종 합의안이 나온 것을 환영한다’는 내용을 공동 발표했다. 2년 2개월을 끌어온 지루한 협상이 드디어 막을 내리는 순간이었다.
이번 한·EU FTA는 한미 FTA 체결 당시에 비해 국민적 관심도가 덜한 느낌이다. 큰 진통을 겪은 한미 FTA를 한 차례 거친 학습효과도 있겠지만, 국민 정서 차원에서 미국과 유럽을 대하는 온도 차가 크기 때문이라는 해석도 있다.

누구의 ‘유·불리’를 따지기도 모호했다. 27개국을 한꺼번에 대상으로 한 협정이기에 각각의 손익계산서를 만들기 힘든 탓이다. 그러다 보니 협상 과정은 오히려 한미 협상 때보다 순탄치 않았다. 미국과는 1년 만에 끝난 협상이 EU와는 2년 2개월을 끌었다. EU 집행부가 27개 전 회원국에 그 내용을 일일이 설명하고 동의를 얻어야 했기 때문이다.
특히 FTA에 회의적인 몇몇 회원국을 설득하는 데도 시간이 걸렸다. 자동차 시장에서 한국 차와 직접 맞붙게 될 이탈리아, 독일 등의 우려가 컸다. 헝가리, 폴란드 등 동유럽 국가의 반발도 거셌다. EU 가입 조건으로 그들이 포기했던 관세환급제도를 한국에는 그대로 인정키로 하는 내용이 포함됐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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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세환급이란 국내 수출업체가 외국에서 원자재를 들여와 이를 가공해 다른 나라로 되팔 경우 처음 원자재 수입 때 부과했던 관세를 업체에 돌려주는 제도다. 그만큼 제품 단가를 낮춤으로써 가격경쟁력을 높이고 수출을 장려하기 위한 취지다. 따라서 저임금을 바탕으로 EU 역내의 공급처 역할을 해온 동유럽 국가들은 이번 FTA로 싼값의 중국산 제품이 한국을 거쳐 밀려들어올 게 걱정됐던 것이다.
한국 처지에선 이 제도를 포기할 수 없었다. 국내 제품 대부분이 밖에서 들여온 원자재로 만든 것이어서 관세환급을 받지 못하면 한·EU FTA 체결로 얻는 실익이 전혀 없기 때문이다. 결국 이런 쟁점이 해결되면서 협상도 급물살을 탔다.
한 민간 경제연구소는 이번 FTA의 효과를 ‘원교근공(遠交近攻)’이라고 표현했다. <손자병법>에 나오는 내용으로 ‘멀리 있는 이와 관계를 맺어 가까이 있는 이를 공격한다’는 뜻이다. 상대적으로 먼 사이던 EU와 FTA를 먼저 맺음으로써 현재 양국 의회의 비준을 받지 못해 진행이 멈춘 미국과의 FTA도 앞당길 수 있다는 의미로 이를 언급한 것이다.
짧지만 이 사자성어엔 여러 함의가 있다. 한·EU FTA를 성사시킴으로써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을 뛰어넘는 세계 최대의 경제공동체를 탄생시킨 한편 국제교역에서 상당한 영향력을 끼칠 수 있는 카드를 쥐게 된 것이다.
미국뿐 아니라 일본 역시 이번 FTA 결과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그동안 주로 일본에서 원자재를 들여오던 국내 업체들이 이제 납품처를 유럽으로 돌릴 가능성이 높아졌기 때문이다. 현재 연구 단계인 중국과의 FTA도 한층 속도를 내게 될 전망이다.
이미 우리와 FTA를 체결한 국가도 영향권 안에 있다. 예를 들어 그동안 FTA 체결 이후 무관세 효과를 등에 업고 국내에서 시장 점유율을 높여온 칠레 와인의 경우 관세가 사라진 프랑스 와인과 경쟁하기 위해 가격을 내릴 수밖에 없을 것이다. 돼지고기 등 농축산물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소비자들도 ‘근공(近攻)’의 효과를 톡톡히 누리게 되는 셈이다.
국제사회에서의 홍보 효과도 있다. 지난해 불어닥친 글로벌 경제위기 여파로 각국이 조금씩 보호주의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이런 때에 자유무역의 가장 상징적인 이벤트인 FTA 체결은 ‘보호주의 타파’ 의지를 전 세계에 보여줄 수 있는 기회인 것이다.
글·김필규(중앙일보 경제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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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K-공감누리집(gonggam.korea.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