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생활



“제 시에도 있습니다만, 연어는 모천회귀를 하죠. 여러분들이 참고 기다리셨으니 꼭 자기가 태어난 곳으로 돌아가시길 소망합니다. 장미에 대해서도 말씀드리고 싶은데, 장미에 가시가 없다면 장미가 정말 장미일까요? 그 가시가 고통의 가시라 할지라도 여러분들을 소중하게 생각하시고 가슴에 품으시길 바랍니다.”
11월 24일 오후 2시 충북 청주시 청주여자교도소 강당에서 정호승 시인이 ‘책, 함께 읽자’ 문학 행사에 참여해 2백여 명의 여자 재소자들에게 희망의 말을 건넸다. 문학 방송 형식으로 시와 산문 낭송, 재소자 참여, 사인회 등으로 약 2시간 동안 진행됐다.
‘시와 함께하는 아름다운 회상’이라는 부제를 달고 진행된 이 행사에서 참가자들은 과거 이야기를 꺼내며 재소자들의 상처를 어루만졌다. 성우 양지운 씨의 사회로 이태희 법무부 교정본부장, 배우 노현희, 정인숙 씨 등이 함께 출연해 문학과 상처를 소재로 다양한 삶의 이야기를 들려줬다.
행사는 이태희 교정본부장이 정호승 시인의 ‘내가 사랑하는 사람’을 낭독하며 시작됐다. ‘나는 그늘이 없는 사람을 사랑하지 않는다/ 나는 그늘을 사랑하지 않는 사람을 사랑하지 않는다/ 나는 한 그루 나무의 그늘이 된 사람을 사랑한다/ 햇빛도 그늘이 있어야 맑고 눈이 부시다/ 나무 그늘에 앉아 나뭇잎 사이로 반짝이는 햇살을 바라보면 세상은 그 얼마나 아름다운가.’
이 본부장은 서정적인 시 구절을 읽으며 정 시인과의 일화를 소개했다. 과거 문학 백일장에서 고등학생으로는 정호승 시인, 중학생으로는 자신이 함께 상을 받은 에피소드를 들려주며 문학에 대한 애정을 밝혔다. 정 시인의 시를 읽을 때면 지금도 다른 사람의 눈물을 얼마나 닦아주며 위로를 했는지 반성하게 된다고 했다.
배우 노현희 씨와 연극배우 정인숙 씨는 힘들었던 속내를 허물없이 이야기하며 재소자들에게 감동을 전했다. 노현희 씨는 정호승 시인의 산문집 <내 인생에 힘이 되어준 한마디>의 한 구절을 읽어준 뒤 “배우는 겉보기만 화려하지 끊임없이 상처 연고를 덧바른다. 나는 이혼이라는 상처를 겪었는데…. 상처 없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상처가 있기 때문에 더 견고해질 수 있다”며 자신의 얘기를 털어놓았다.
정인숙 씨는 파킨슨병을 앓던 시어머니를 14년간 모시며 힘들었던 사연을 들려줬다. 그는 “어머니가 제 젊음을 다 훔쳐가 버린 것 같고 너무 미워했다. 돌아가시기 이틀 전에 새벽부터 저를 찾고 저한테 ‘고마워’ 하시면서 돌아가셨는데, 얼마나 내가 이기적이었는지 생각하게 됐다”며 자신의 상처를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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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호승 시인은 특히 사람의 상처와 연민 등 가슴이 따뜻해지는 소재를 시로 많이 표현한지라, 참석자들은 상처와 용서, 반성 등에 얽힌 감정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나누기도 했다. 또 1979년 잡지사 <샘터>에서 근무하던 시절, 정채봉 동화작가에게서 “야, 호승아. 이제는 실 뭉치가 풀리는 일만 남았다. 기다려”라는 말을 들은 후, 언제나 그 말이 가슴에 남았다는 일화를 회상했다. “실 뭉치는 뭉쳐 있지 않으면 실 뭉치가 아니다. 그것이 풀어져야 양말이나 스웨터를 짤 수 있다”며 재소자들에게도 “이제는 실 뭉치가 풀리는 일만 남았다”고 희망의 조언을 아끼지 않았다.
성우 양지운 씨는 ‘별을 보려면 어둠이 꼭 필요하다’는 글을 인용한 뒤, ‘우리가 어느 별에서’라는 시를 소개했다. 정호승 시인은 “시가 활자로 책 속에 갇혀 있었는데, 멜로디의 옷을 입어서 또 다른 모습으로 전달되고 나면 기쁘다”며 같은 제목으로 가수 안치환이 노래를 만든 사연을 소개했다. 정 시인이 설명을 마치자 청주여자교도소 합창단이 ‘우리가 어느 별에서’를 부르며 그동안 연습해온 노래 실력을 보여주었다.
문학 행사의 말미는 재소자와 작가가 함께하는 시간이었다. 재소자들은 그동안 읽었던 시와 산문에 대한 느낌을 직접 얘기하며 작가에게 질문을 건넸다. 평소 정호승 시인의 시를 읽으며 위안을 받았다는 한 재소자는 ‘하루살이는 하루만 살 수 있는데 불행히도 하루 종일 비가 올 때가 있다’는 글귀에서 감동을 받았다고 말했다. 그는 “하루살이가 하루 종일 비만 피하다가 죽지는 않을 것”이라며 “얼마만큼의 시간을 살았느냐보다 얼마나 최선을 다해 살았느냐가 더 중요하다는 것을 깨달았다”고 말했다.
다른 재소자도 “인생에 비가 오든 안 오든 이제는 열심히 살고 싶다”고 감상을 말했다. 재소자들의 참여 시간이 끝난 뒤 노현희 씨가 즉흥적으로 뮤지컬 <시카고>의 ‘올댓재즈’를 춤과 노래로 선보여 큰 박수를 받았다.
이태희 교정본부장은 행사를 마치며 “어쩌면 인생은 책이다. 인생이라는 책은 단 한 번밖에 읽지 못한다. 어리석은 사람은 그 책을 제대로 읽지도 않고 마구 넘겨버리지만 지혜로운 사람은 열심히 밑줄을 그으며 읽는다”는 소설가 황순원 씨의 말을 인용했다. 그는 “각자가 주인공이 되어 운명에 이끌려가지 말고 운명을 끌고 가는 사람이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이날 열린 ‘책, 함께 읽자’ 행사는 유명 작가가 참여해 재소자들에게 자기 성찰의 계기를 마련해주는 자리다. 문학의 힘으로 재소자들의 재활을 돕고자 하는 프로그램이다. 법무부는 이번 문학 행사를 영상으로 제작해 다시 방송할 예정이다. 지난 문학 방송 역시 전국 5만여 명의 재소자들이 시청했다. 청주여자교도소의 이번 문학 낭송회는 지난 봄 서울구치소에서 첫 행사가 열린 뒤 6번째로 앞으로도 꾸준히 열릴 예정이다.
청주여자교도소는 국내 유일의 여성 전용 교도소로, 여성 심리 및 인권과 관련한 재활교육에 힘쓰는 것으로 주목을 받고 있다. 문학 행사에서 노래를 부른 청주여자교도소 합창단은 10년째 활동 중이며, 외부 공연을 할 정도로 실력을 인정받고 있다. 이 교도소는 문학 낭송 행사 외에도 노래, 에어로빅, 뜨개질, 기타 강습, 한글 강습 등 심리적 안정에 도움이 되는 프로그램들을 운영하며 재소자들의 재활에 힘을 쏟고 있다.
글·변인숙 객원기자 / 사진·조영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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