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으로 바로가기

문화/생활




“실제로 보니 생각보다 몸집이 더 크시네요.”

양준혁(42)을 처음 본 사람들의 반응은 대체로 한결같다. 키 1미터88에 몸무게 95킬로그램의 거구이니 그럴 만도 하다. 야구선수 생활을 할 때도 어지간해선 몸집에서 밀린 적이 없다.

우람한 몸집으로 그는 야구를 참 잘했다. 지난해 은퇴할 때까지 최다 경기 출장(2천1백35경기), 최다 홈런(3백51개), 최다 안타(2천3백18개), 최다 루타(3천8백79개), 최다 타점(1천3백89점), 최다 득점(1천2백99점), 최다 4사구(1천3백80개) 등 나열하기에도 숨이 벅찰 정도의 각종 기록을 세웠다. 팬들은 그를 ‘양신(梁神)’이라고 부른다.

방망이 실력에 관한 한 그는 신이라고 불릴 만하다. 그런데 많은 팬이 양준혁 하면 달리기를 연상한다.

그렇다. 그는 한국 프로야구 역사를 통틀어 가장 열심히 뛰는 선수였다. 거구인 탓에 달리기가 빠르진 않았다. 그런데 평범한 땅볼이나 뜬공을 치고도 1루까지 죽어라 뛰었다. 전력질주는 그의 트레이드마크였다.




양준혁은 “1년 내내 1루를 향해 전력질주를 하다 보면 내야안타가 적게는 3개에서 많게는 7개까지 나온다”고 말한다. 별거 아닌 것 같지만 차이는 생각 외로 크다.

야구에서 3할 타자와 2할 타자는 천지 차이의 대접을 받는다. 그런데 많은 경우 안타 1, 2개 차이로 3할 타자가 되기도 하고 2할타자에 머물기도 한다.

양준혁은 20년 가까이 전력질주를 했다. 매년 5개 내외의 안타가 쌓이니 그 숫자는 무시할 수 없게 늘었다. 양준혁은 “최선을 다해 뛰지 않았다면 내가 세운 수많은 기록은 나오지 않았을 것이다. 전력질주가 있었기에 오늘의 내가 있을 수 있었다”고 말한다. 썩 빠르지 않은 발로도 그는 호타준족만이 할 수 있다는 20홈런-20도루 클럽에 4차례나 가입했다.

그런 그이기에 8월 27일부터 9월 4일까지 대구스타디움에서 열리는 2011대구세계육상선수권대회는 더욱 뜻깊게 다가온다. 대구에서 태어난 그는 올해 초 대구시 홍보대사로 위촉됐다. 대구육상세계선수권 및 2011 대구방문의 해 등에서 대구를 더 많이 알리기 위해서다.

양준혁은 “내가 달리기를 좋아하는 것은 한 발씩 뛸 때마다 목표에 가까워지는 희열을 느끼기 때문이다. 가만히 서서 도태되는 불안감에서 벗어날 수 있어서 좋다. 더 많은 분이 이번 대회를 통해 달리기의 묘미를 즐겼으면 한다”고 말했다.

양준혁의 전력질주는 운동장 밖에서도 계속되고 있다. 지난해 9월 19일 은퇴한 후 바로 다음 날 방송 출연 섭외를 받고 방송에 나갔다. 올해는 SBS ESPN에서 야구 해설을 하고 있으며, KBS 예능프로그램 ‘남자의 자격’에 고정 패널로 출연한다.

인기 강사로 전국을 돌며 강연을 하고 있으며, 한 이동통신회사의 트위터 자키까지 맡았다. 몸이 열 개라도 모자라는 바쁜 일정에서 최근엔 <뛰어라! 지금이 마지막인 것처럼·사진>이라는 책도 펴냈다.


또 자신의 이름을 딴 ‘양준혁 야구재단’을 출범시켜 야구를 통해 청소년들을 사회적 리더로 키우려는 노력을 하고 있다. 양준혁은 지난해 자비를 들여 청소년들이 참가하는 야구대회를 개최한 데 이어 올해 7월 30~31일에도 대구 영남대 운동장에서 ‘제2회 양준혁 청소년 야구 드림 페스티벌’을 열 계획이다.

양준혁은 “남들처럼 해외연수를 다녀와 지도자가 되는 것도 좋지만 아이들한테 꿈과 희망을 심어주는 재단을 설립하는 게 오히려 더 뜻깊겠다 싶었다. 우리 청소년들은 돈이 없어서 야구를 못 한다.

야구재단은 그런 청소년들이 마음껏 뛰어놀고 야구를 통해서 인성을 기를 수 있는 기회를 주기 위해 만들었다.

제2의 이승엽, 박찬호도 좋지만 야구를 통해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이나 대통령, 시장 같은 사회 리더를 키우는 게 꿈이다. 공부만 하는 아이들보다 스포츠를 통해 성장한 아이들이 오히려 사회 리더로 클 수 있다고 본다”고 했다.

겉으로 볼 때 양준혁은 탄탄대로를 걸어온 것 같다. 이뤄낸 것도 많고 성공한 적도 많다. 하지만 그에게도 시련이 적지 않았다.

무엇보다 그는 ‘2인자’의 삶을 살았다. 한창 야구를 할 때는 ‘홈런왕’ 이승엽(현 일본 프로야구 오릭스)의 그늘에 가려 있었다. 프로 입단 후 국가대표로 뽑힌 적도 없다. 그는 주인공 대신 조연이 되기로 했다. 대신 최선을 다해 뛴다는 신념만은 흔들리지 않았다. 양준혁은 “승엽이를 시기하기보다는 빛나게 해주는 게 우리 팀을 위한 도움이라고 생각했다”고 했다.

그런 세월이 쌓이고 쌓이자 어느 순간 그는 1인자의 자리에 올라설 수 있었다. 그 누구보다 성대한 은퇴식을 치렀고, 한국 프로야구사에 다양한 기록을 모두 세울 수 있었다. 양준혁은 “언제나 최선을 다하다 보니 마지막에는 그 어떤 1인자도 부럽지 않게 되어 있더라”고 했다.

양준혁은 “이번 대구세계육상대회도 크게 다르지 않을 것 같다. 한국 선수들이 메달을 못 딸 수도 있고, 기록을 못 세울 수도 있다. 하지만 큰 대회를 유치하고 큰 무대에서 뛸 수 있다는 것 자체가 미래를 위한 큰 자산이 된다. 오히려 이럴 때일수록 더욱 뜨거운 응원을 보내야 한다”고 당부했다.

글ㆍ이헌재 (동아일보 스포츠레저부 기자) 



지금 정책주간지 'K-공감' 뉴스레터를 구독하시고,
이메일로 다양한 소식을 받아보세요.
구독신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