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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생활

투쟁 깃발 내리고 최대 흑자 올리고




지난 5월 30일 경주 용강동의 발레오전장에 들어서는 순간 ‘청산 결정까지 내려졌던 발레오전장, 90억원 법인세, 10억원의 지방세를 내는 경주 최대 사업장’이라 적힌 현수막이 눈에 들어왔다. 지난해 금속노조가 1백11일간 이 회사 정문 앞을 에워싸며 붉게 물들였던 투쟁 깃발과 구호는 찾아볼 수 없었다. 대신 스타터 모터와 교류발전기 등 주력제품을 생산하는 회사 공장에서 기계 돌아가는 소리가 요란하게 들렸다.

강기봉(53) 사장은 “불과 1년 전만 해도 천년 문화고도 경주는 발레오전장의 노사문제 하나로 금속노조의 투쟁 깃발이 나부끼는 노동운동 격전장이나 다름없었다”면서 “이런 대립적 분위기를 노조 스스로 바꿔 생산성향상에 나서니 이보다 더 좋을 수 없다”고 말했다.

같은 시각 정홍섭(47) 노조위원장은 생산라인을 일일이 돌며 불량품이 없는지 챙기고 있었다.

정 위원장은 “유성기업 사태를 보면서 지난해 발레오전장을 떠올렸다”면서 “노사문제에 3자가 개입하면 잘 풀릴 수 있는 문제도 자칫 걷잡을 수 없는 상황으로 악화되기 마련인 만큼 노사 자율적으로 문제 해결에 나서줄 것”을 조언했다.

발레오전장은 1999년 프랑스 발레오사가 만도기계 경주공장을 인수해 설립한 이후부터 노조와 심한 갈등을 겪기 시작했다.




노조는 임금 및 단체협상 시마다 적게는 2일에서 많게는 7일까지 파업을 벌이는 등 금속노조 경주지부 산하 최강성 노조로 맹위를 떨쳤다.

2009년 3월 이 회사 대표로 취임한 강기봉 사장도 출근 첫날부터 혹독한 신고식을 치러야 했다. 대개 취임 첫날은 노사 간에 덕담이 오가는 게 상식이지만 강 사장은 ‘출근거부 투쟁을 해야 할지 고민했다’는 노조간부의 인사말 아닌 인사말을 들어야 했다.

당시 회사는 조합원 6백5명의 금속노조 경주지부 산하의 최강성 노조답게 노조천국이나 다름없었다. 회사 내 비정규직 직원은 한명도 없었다. 심지어 경비원도 노조에 가입했다. 직원들의 연평균 임금은 7천만원을 웃돌 정도였다. 임금 수준이 이런데도 노조는 해마다 파업을 벌였다. 당시 회사는 2백억원의 적자를 기록하고 있었다.

결국 발레오전장은 본사로부터 경주공장 직원 중 최소 50명을 구조조정하라는 지시를 받았다.

하지만 강 사장은 노조와 한국적 직장문화를 아는 현지인 사장으로서 인력을 자르는 구조조정 보다 원가절감에 초점을 맞췄다. 이를 위해 청소와 경비, 운전직을 외주화하기로 했다.

하지만 노조가 파업에 들어가면서 이런 계획은 무위로 돌아갔다. 경영적자는 눈덩이처럼 불어났다. 이를 보다 못한 강 사장은 지난해 2월 생산직 전환에 거부하는 경비직 5명의 외주화를 다시 밀어붙였고, 노조는 이에 맞서 또다시 파업을 단행했다. 노조 파업이 사무관리직의 생산 현장 대체 근로 방해와 조립라인 배선 절단 등의 극한 행동으로까지 확산되자 강 사장은 직장폐쇄라는 초강수를 뒀다.

강 사장은 “이전에는 발레오전장의 부품을 공급받는 현대자동차의 조업차질을 우려해 노조 요구를 대부분 수용해 주었지만 이렇게 밀리다가는 회사 생존 자체가 위태로운 상황이어서 다른 방법이 없었다”고 회고했다.




회사의 직장폐쇄 조치에 조합원 15만명의 금속노조가 전국 산하 단위 노조 간부들을 경주에 총집결시키며 연대파업에 나서는 상황으로 이어지자 발레오전장은 경주공장에 대한 철수방침까지 내렸다. 이에 반발해 시내 곳곳에서는 강 사장의 얼굴을 본뜬 인형을 불태우는 화형식 시위도 전개됐다.

하지만 강 사장은 이에 물러서지 않고 오로지 공장 정상가동에 온 열정을 쏟아 부었다. 전체 생산인력의 절반가량을 투입해 불량률을 획기적으로 줄이고 생산실적을 오히려 20퍼센트나 증대시켰다. 공장이 이렇게 잘 돌아가자 일반 조합원들이 동요하기 시작해 직장폐쇄 93일째인 5월 19일 일반 조합원의 절대다수(95.2퍼센트)가 강경투쟁만 고집하는 노조집행부를 투표로 쫓아내고 금속노조를 탈퇴하는 일이 벌어졌다.

강 사장은 “금속노조가 발레오전장의 노사 협상에 개입한 이후부터 1백원이라도 임금을 올려주지 않고서는 협상승인을 받지 못했다”며 “이러한 어려움을 견뎌온 이유는 바로 이런 무소불위의 노조 권력으로부터 발레오전장의 노사협상의 자주권을 얻어내기 위해서였다”라고 소회를 털어놨다.

그로부터 1년이 지난 현재 발레오전장은 국내 대표적인 노사 상생사업장으로 거듭났고 다른 사업장의 벤치마킹 대상이 되고 있다.

이명박 대통령도 지난 5월 30일 제66차 라디오·인터넷 연설을 통해 대립에서 상생으로 전환한 후 실적이 크게 개선된 발레오전장에 박수를 보냈을 정도다.

이 대통령은 “회사가 적자와 상습파업으로 국내 공장 문을 닫고 철수하기로 했을 때 노조가 극적으로 상생으로 방향을 틀었고, 그 결과 작년 매출이 직전 3년 평균치보다 36% 늘었고, 순익도 2년 연속 적자를 벗어나 창사 이래 최대인 400억원 흑자를 기록했다”고 말했다.

이 대통령은 또 이날 노사관계 악화로 공권력이 투입된 유성기업 사태를 언급하면서 “크게 엇갈린 두 기업의 사례가 많은 것을 일깨워주고 있다”며 “파업하고, 기업 문 닫고, 최악의 사태를 겪은 다음에야 협력과 상생의 중요성을 깨닫는 일이 반복돼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임금협상을 회사 측에 위임한 정홍섭 노조위원장은 “지난해 직장폐쇄와 불법파업이란 값비싼 대가를 치른 후에야 최고의 복지가 바로 고용안정임을 뒤늦게 깨달았다”면서 “만일 회사가 없어지면 노조가 투쟁을 해 이겨본들 무슨 의미가 있는지 노동운동하는 사람들은 항상 이를 염두에 뒀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글ㆍ하인식 (한국경제 사회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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