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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생활

지구 끝까지 쫓아 탈세 뿌리 뽑는다




서울 종로구 종로5길에 위치한 국세청의 한 사무실. 출입증이 있어야 열리는 문 너머로 문패 없는 사무실이 보인다. 부서명이 적힌 다른 사무실들과 달리 이곳 문패에는 방 번호만 적혀 있을 뿐 뭘 하는 곳인지 짐작할 수가 없다.

문패 없는 사무실 문을 열자 다시 작은 복도, 출입통제 표시가 붙은 사무실들이 보인다. 이렇게 겹겹이 출입이 통제되는 이곳은 역외탈세담당관실이다. 해외로 자금을 빼돌리는 역외탈세를 뿌리 뽑기 위해 지난 1월 1일 출범했다.

“우리 업무에서는 보안이 ‘생명’입니다. 탈세 추적 정보가 조금이라도 새어나가면 탈세 혐의자가 증거를 없애거나 도주할 수 있으니까요.”

역외탈세담당관실의 이광재 과장은 이렇게 말하며 “이곳 직원들의 얼굴도 외부에 공개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불필요한 잡음을 막고 조사 과정에서 안전함을 느끼도록 하기 위해서라고 한다.

이렇게 이름 없는 사무실에서 얼굴 드러내지 않는 23명이 근무하는 역외탈세담당관실은 각종 루머나 국내외 공개 자료, 외환 흐름 등 다양한 자료와 정보를 분석해 역외탈세 추적작업을 하고 있다.

23명의 직원은 같은 방에서 근무하지 않는다. 여러 팀으로 쪼개 서로 다른 사무실에서 근무하며 추적작업에 대해 철저하게 보안을 유지하고 있다.




“공무원 조직이라고 하지만 어느 민간조직 못지않게 자발적으로 운영되고 있습니다. 업무가 많을 때는 팀원 전원이 야근을 하며 열정적으로 조사 업무에 임하고 있지요.”

이 과장은 이곳에 ‘특수 경력’을 가진 직원들도 많다고 전했다.
역외탈세 추적을 위해 국제공조 업무가 필수이다 보니 외국어에 능숙한 ‘유학파’들이 적지 않고, 복잡한 회계 장부를 확인해 허위기재 내역을 귀신같이 찾아내는 민간 회계법인 출신 직원들도 있다는 것이다.

2008년 출범한 태스크포스(TF) 형태의 ‘역외탈세추적전담센터’를 전신으로 해 역외탈세담당관실이 정식 출범하면서 역외탈세 조사활동에 한층 탄력이 붙어 올 1/4분기 동안 총 41건, 4천7백41억원을 추징하는 성과를 거두었다. 이는 2010년 한 해 동안의 역외탈세 추징액(약 5천억원)과 맞먹는 규모다.

역외탈세담당관실이 지난 4월 12일 공개한 올 1/4분기의 역외탈세를 유형별로 보면 ▲비거주자?외국법인 위장, 조세피난처 소득 은닉(1건 4천1백1억원 추징) ▲가공매입 계상 등 수출입 거래를 통한 역외탈세(11건 3백70억원 추징) ▲주식양도소득, 이자소득 등 국외소득 신고 누락(2건 1백41억원 추징) ▲해외부동산 편법취득 등 변칙외환거래 이용 탈세(27건 1백29억원) 등이다.

이 가운데 가장 큰 화제가 된 것이 해운회사 사주 OOO씨의 역외탈세 추징이다. 그는 조세피난처에 설립한 페이퍼컴퍼니를 통해 선박 1백60척을 소유하고 국제 선박임대업과 국제 해운업을 해왔으며, 언론에서 ‘아시아의 해운왕’으로 불리기도 했다.

실제로 국내에 생활 근거지를 두고 경영활동을 해온 그는 우리나라에 살지않는 것처럼 위장해 우리나라뿐 아니라 전 세계 어느 나라에도 세금을 납부하지 않고 소득을 은닉해 4천1백1억원의 추징세액이 결정됐다. 또 영업, 운항 등 해운사업의 중요한 관리와 상업적인 의사결정을 국내에서 수행하여 세법상 내국법인임에도 형식적인 대리점 계약을 통해 외국법인으로 위장했다.


국세청은 “이러한 탈세는 고도의 지능적 역외탈세 행위”이며 “이러한 대규모 역외탈루와 전 세계에서의 무납부를 핵심적 경쟁우위 수단으로 삼아 사업을 확장하는 행위는 ‘조세정의에 대한 도전이자 공정한 경쟁 질서를 훼손하는 중대하고 심각한 사안’”으로 판단하고 있다.

이번 ‘탈세왕’ 적발은 국제공조 네트워크 강화의 성과이기도 하다. 국세청은 지난해 국제탈세정보교환센터(JITSIC)에 가입했고 미국과는 동시범칙조사약정(SCIP)을 체결했다. JITSIC는 한국, 미국, 영국, 일본, 캐나다, 호주 등 6개국으로 구성된 국제 탈세정보 교환 협의체다. 또 SCIP는 한국과 미국 두 나라에 소재하는 납세자에 대해 동시에 범칙조사를 진행할 수 있는 길을 열어주었다.

국세청은 2009년 이후 ‘숨은 세원 양성화’를 위한 추진과제의 하나로 ‘역외탈세 방지’를 선정하고 국제공조 네트워크 강화와 함께 ▲해외금융계좌 신고제 신설(2010년 12월)을 통해 역외 재산은닉 제재근거 및 역외세원관리 토대를 마련했고 ▲역외탈세담당관실과 더불어 지방청 조사국에 해외탈루소득분석전담팀, 국제조사팀을 설치해 역외탈세 관련 조직과 인력을 확충했다.

국세청이 역외탈세 추징에 힘을 쏟고 있는 것은 역외탈세의 부작용이 크기 때문. 해외자본 유출은 국내투자 감소로 이어져 일자리가 줄고 소득과 소비, 생산의 감소로 이어진다. 또 세원 감소로 인해 정상적인 국가운영 역시 어려워진다.

이 과장은 “역외탈세 추징은 세원 확보와 더불어 외화 획득의 의미까지 있다”며 “이렇게 빼돌려진 자금이 국제금융시장을 교란시키는 ‘핫머니’가 되기도 한다”고 말했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는 역외탈세자금이 상당부분 차지하고 있는 것으로 판단되는 핫머니로 인해 더욱 악화됐으며, 이 때문에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국제금융시장 안정을 위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를 중심으로 역외탈세 공조의 기틀이 마련됐다는 게 이 과장의 설명이었다.

이러한 국제공조는 최근 징수 분야까지 확대되고 있다고 한다.
추징세금 부과에 그칠 일이 아니라 징수까지 실제로 실현돼야 하기 때문이다. 이 과장은 역외탈세 조사와 추징은 “이제부터 시작”이라고 말했다.

“이번 대형 역외탈세 추징으로 국민 여러분의 격려를 많이 받았습니다. 시간이 걸리더라도 끝까지 역외탈세 행위를 추적해 추징세금을 거둬들여 조세정의를 실현할 것입니다.”

글ㆍ박경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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