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생활

수도권 신도시의 일산역(등록문화재 제294호) 근방에는 아직도 1백년 전통의 5일장이 선다. 일산장은 조선시대 초기까지 지방에서 열리던 향시(鄕市)에서 그 유례를 찾을 수 있는데, 1770년(영조 46)에 완성한 조선의 문물제도 백과사전<동국문헌비고(東國文獻備考)>에 의하면 고양시 일대에서 3일과 8일로 끝나는 날에 열리던 향시 사포장(巳捕場)이 그 효시라고 할 수 있다.
지금의 일산 신시가지에 속한 옛 송포면의 사포장은 고양시를 대표하던 장터였다. 하지만 사포장이 사라지고, 이후 1908년 경의선 철도가 개통되어 물자 수송이 용이해지면서 일산장이 등장한 것이다. 현재는 1933년에 세워진 구 일산역 앞쪽에서부터 현대식 상설점포가 자리한 일산사거리를 에돌아 도로주변을 따라 장터가 꾸려진다.
5천여 평의 장터에 크고 작은 노점과 가게들이 늘어서는데, 농산물과 수산물·의류·잡화·생활용품 등 ‘없는 것만 빼놓고 다 파는’ 아쉬울 것 하나 없이 구색을 갖추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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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자전거를 타고 가며 태극기를 파는 아저씨, 파리약·좀약·끈끈이까지 갖춰 놓은 잡화 가판대, 도장 파는 아저씨는 물론 아이들이 좋아하는 토끼와 강아지를 파는 동물장사치들까지 한편에 자리해 사라져 가는 시골장터의 분위기를 만들어 낸다.
경의선 국철 일산역에서 내려 2번 출구로 역사를 빠져나오니 벌써 구 일산역 앞 작은 광장에서부터 왁자지껄한 장터분위기로 절로 신명이 난다.
스피커에서 뿡짝뿡짝 흥겨운 노랫가락이 울려 퍼지자 검은 ‘봉다리’ 하나씩을 뒤춤에 든 할아버지, 할머니들의 걸음걸이도 얼씨구절씨구 춤을 추는 듯하다.
구 일산역 앞 작은 공터에 행거로 노점을 그럴싸하게 꾸며 놓은 장꾼어미가 ‘샤방샤방한’ 예쁜 옷들을 걸어 놓고 마실 나온 할머니들의 손을 잡는다. 또 그 곁으로 공터 한편에 호미, 쇠스랑 등 농기구며 철물을 풀어 놓고 손님을 맞이하는 철물장꾼도 손님맞이가
한창이다.
철물장꾼 정창익(51)씨는 1일은 문산장(경기 파주), 2일은 강화장(인천 강화군 강화읍), 3일은 일산장, 4일은 광적장(경기 양주), 5일은 적성장(경기 파주)이나 감악산 신산리장 등 경기도권 5일장을 돌고 도는 돌뱅이 장꾼이다. 옛 시절 우리 아버지들처럼 그 역시 운수 좋은날을 기다리며 장에 나선 지 만 3년째가 되었다.
“어이쿠 어르신네. 올만인 갑소. 지난번 사간 쇠스랑은 말 잘 듣는 갑소?” 농사철이나 가을걷이까지는 간혹 시골 어르신들이 손에 익은 옛 농기구 등 철물을 종종 찾는데, 그에게는 귀하디귀한 단골손님이다. 그래 그나마 5일장이면 어김없이 마실을 나서는 낯익은 얼굴이 그지없이 반갑다. 매일 아침나절 1톤 트럭에 짐을 싣고 집을 나설 때면 기운이 절로 난다는 장꾼 정씨. 그가 ‘운수대통’을 기대하며 내일의 희망을 꾸릴 수 있는 이유이다.
장터 골목 구석구석에 장꾼들이 판을 벌이자 이 골목 저 골목으로 손님들의 발길이 이어진다. 장사에 이골이 난 엿장수는 특유의 신명으로 엿가락을 치며 손님을 불러 모은다. 또 장의 한가운데에 규모 크게 터를 잡은 생선가게와 과일가게는 오고 가는 손님을 붙들어 세우고 이력이 붙은 흥정 솜씨를 뽐낸다.
벌써 20년 훌쩍 넘게 5일장을 돌며 민속공예품을 파는 풍물 장꾼 이두선(50)씨 역시 1톤 트럭에 민속품을 내어 걸고 손님맞이에 여념이 없다. “어느 때는 잘 벌고 어느 때는 못 벌고, 누구는 잘 벌고 누구는 그저 그렇고 하지요. 자꾸 자빠지고 고꾸라지는 듯하지만, 그나마 장에 나서면 사람 사는 세상인 듯하여 좋습니다. 무일푼으로 와도 일할 수 있고 열심히만 하면 돈도 모을 수 있는 곳이 장터입니다.”
삼십대 초반부터 장을 돌기 시작했다는 그는 “5일장이 예전만큼의 재미나 호황은 아니어도 딱히 궁색하다고 할 것도 없었는데, 요즘 경기가 좋지 않아 장사가 잘 안 된다”고 덧붙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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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순간, 장터 한편에서 ‘뻥이요’ 하는 소리와 함께 뻥튀기가 터지자 지나가던 이들은 걸음을 멈추고 어린 아이들은 귀를 막고 놀란 듯 신기하게 바라본다. 방학을 맞아 초등학생인 자녀와 함께 일산장을 찾은 주부 양원정(37)씨는 “장이 서는 날에 들러 옛 추억을 떠올리면 기분이 좋아진다”며 “상품의 질과 가격도 좋지만 야채든 과일이든 덤으로 주는 푸짐한 인정과 어린 시절 장터의 모습이 그리워 자주 찾아오게 된다”고 5일장의 매력을 털어놓는다.
장터는 시대의 자화상이라고들 말했었다. 그래서 장터에 나서면 사는 이야기를 들을 수 있고 서민들의 살림살이를 엿볼 수 있었다.
엄마의 손을 잡고 장터를 기웃대는 아이들의 모습에서 이미 지나간 시절의 잊힌 향수와 그 시절 장터의 신명과 흥을 더듬어 본다.
이제는 조금 변해 버린 5일 장터 풍경 안에서 우리의 옛 모습과 현재의 자화상을 함께 그려 본다. 5일장은 단순히 물건을 사고파는 시장으로서의 의미를 넘어 전통의 명맥을 유지하고 있는 민속적 가치를 지니고 있다. 그리고 장터는 여전히 살아 숨 쉰다.
글과 사진·이강 (여행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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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K-공감누리집(gonggam.korea.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