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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생활

도심텃밭 가꾸며 이웃 간 情도 새록새록




“와~ 심 봤다!”

탄성이 울린 곳은 ‘홍대 앞’이라 불리는 서울 마포구 서교동의 서교예술실험센터 옥상텃밭. 일요일인 11월 27일 오후 옥상에 나란히 늘어선 플랜트박스와 플라스틱주머니에서 배추, 상추, 시금치, 쪽파, 무 등을 수확하는 ‘이웃랄랄라’ 회원들은 뿌리가 손가락만 한 무, 손바닥만 한 이파리의 배추들을 뽑아내며 연방 흐뭇한 표정이었다.

‘이웃랄랄라’는 옥상텃밭 농사를 함께 짓는 ‘1인 가족 에코네트워크’다. 인터넷 카페를 통해 연락을 주고받으며 당번을 정해 물 주기를 하고, 한 달에 한 번 정도 텃밭 야채를 곁들인 삼겹살구이, 비빔밥 파티 등을 한다. ‘이웃랄랄라’ 회원들은 대부분 독립생활을 하며 1인 가구를 이룬 20, 30대들이다.

이날 모임은 두어 달 기른 채소들을 수확해 요리하는 ‘살 통통 배추도사 무도사의 겉절이 작전’이었다.




이웃랄랄라를 이끌고 있는 이정인(31·사진 오른쪽에서 두번째)씨는 “혼자 사는 사람들은 불규칙적인 식습관으로 건강은 나빠지고 인간관계는 점점 좁아지는 공통적인 특성이 있다”며 “회원들이 함께 유기농으로 채소를 기르고, 교감하는 모임이 이웃랄랄라”라고 소개했다.

먹거리와 건강, 인간관계의 회복을 위한 프로젝트를 구상하던 그는 인천의 한 시민단체 농부학교에서 기초적인 농사법을 배운 뒤 2010년 3월 첫 모임을 시작했다. 카페 회원이 약 5백명, 오프라인 활동 회원은 20여 명이다.

이들은 텃밭채소에다 자신들이 가져온 식재료들을 더해 서교예술실험센터 인근에 있는 사회적기업 카페 ‘슬로비’의 주방에서 수다떨고 농담하며 요리를 시작했다. 부치면서 반쯤은 먹은 고소한 배추전, 배추와 시금치를 넣은 파스타, 옥상텃밭 상추가 주인공인 샐러드, 간장 맛이 어우러진 겉절이 등은 훌륭한 잔치음식들이었다.

이날 모임은 자발적으로 뭐라도 하나씩 더 들고 온 회원들의 정성 덕분에 더욱 훈훈해졌다. 닉네임 ‘고양이아파트(이정인씨)’는 겉절이와 함께 먹을 밥을 지으려 현미쌀을 챙겨왔고, ‘경우 바른 너구리’는 귤 한 박스를, ‘누님들의 귀요미’를 자처하는 ‘귀동이’가 술과 호빵을 준비해 오는 모습은 마치 단란한 가족을 연상케 했다.

삭막한 도시에서 홀로 사는 2030세대들에게 언제라도 손 내밀고 온기를 느낄 수 있는 모닥불 같은 존재가 ‘이웃랄랄라’라면 영등포구 ‘문래도시텃밭’은 문래동에서 활동하는 젊은 예술가들과 오랫동안 터 잡고 살아온 지역주민들을 이어주는 소통의 장이다.

지난 5월 철공소 기름 냄새가 선명한 문래동 철공소 골목의 3층 건물 옥상에서 시작된 ‘문래동도시텃밭’은 카페 가입 회원이 2백여명, 오프라인 활동 회원은 약 50명이다.


문래동도시텃밭 만들기에 앞장서 온 이소주(37·일러스트레이터) 작가는 “안전한 먹거리에 관심을 갖다 문래동도시텃밭을 시작했는데 작물 수확에 대한 기대보다 사람이 모일 수 있는 소통의 공간으로서의 기대가 더 컸다”며 “올해 운영해 보니 나름 성공한 것 같다”고 자평했다. 문래동도시텃밭은 지난 11월 2일 서울시의 생활녹화경진대회 대상을 차지했다.

문래동은 수십 년 동안 터 잡고 있던 철공소들이 시화공단 등지로 떠나고 7, 8년 전부터 그 빈 공간을 홍대 앞의 비싼 작업실 임차료에 떠밀려온 예술가들이 채워가면서 철공소와 예술가들이 공존하는 특별한 공간이 되어 왔다. 문래동에는 약 2백 개의 작업실이 있다. 이씨는 7년 전 홍대 앞에서 문래동으로 자리를 옮긴 ‘문래동 예술촌 1세대’쯤 된다.

“젊은 예술가들에 대한 거리감이 있어 왔죠. 그런데 철공소 사장님, 지역주민들과 함께 텃밭을 가꾸면서 서로 가르치려 들지 않고, 있는 그대로의 모습들을 보면서 거리감도 없애고 허심탄회하게 만나게 된 것 같아요. 문래동은 예술과 산업, 개발과 보존, 2030문화와 7080문화가 공존하는 경계지역인데 문래도시텃밭은 그 경계를 절묘하게 녹이는 접점이 되고 있어요.”

활동을 더 의미 있게 하기 위해 생일잔치도 하고 텃밭장터를 열기도 하며 한 달에 두 번가량 오프라인 모임을 가져온 문래도시텃밭의 ‘클라이맥스’는 지난 11월 12일 있었던 ‘버무리잔치’였다. 회원 50여 명이 참석해 그동안 기른 배추, 무, 당근, 대파 등으로 김장을 담고 파전을 부쳐 막걸리를 곁들인 잔치를 벌인 것이다.

이날 잔치에 참석했던 주민 최영식(57·문래동)씨는 “처음에는 그저 쓰레기장 수준이던 옥상을 치우고 조경만 해도 다행이라고 생각했으나 문래동도시텃밭이 멀게 느껴졌던 예술가들과 ‘3D’업종으로 내비치기에 ‘철공소’로 불리기조차 싫어하던 주변 철공소 사람들, 지역주민들이 자연스럽게 어울리는 곳이 되고 있다”고 말했다.

이웃과의 벽이 높아져 고독하고, 세대 간 간극이 벌어져 소통에 어려움을 겪는 요즘 우리 사회에 이웃랄랄라의 옥상텃밭, 문래동 도시텃밭은 먹는 것만으로도 위로가 되는 ‘영혼을 위한 닭고기 수프’이자 잃어버린 ‘우물가 수다’의 귀환인 듯하다.

글·박경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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