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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생활

원룸 메카 신림동 골목에 착한 바람 분다




‘추석이 곧 임박! 그리하여 다들 객지에서 고생하고 있는 20대 세입자끼리 으 으 하자는 의미에서 삼겹살 파티를 합니다. 장소는 동현군의 옥탑방에서 지지고 볶아 먹을 예정!’

이런 공고가 인터넷에 떴다면 지역 동호회? 하겠지만 뜻밖에도 부동산공인중개사 블로그다. 서울 관악구 신림동에 자리한 ‘착한 부동산 골목바람’이다.

착한부동산에 전화를 하니 지하철 2호선 신림역 5번 출구로 나와 빵집이 있는 골목 입구까지 걸어오라고 했다. 골목바람의 ‘골목대장’ 조희재(32)씨가 마중 나왔다. 골목바람 사무실은 투명 유리창에 그려진 흰색 그림이며 나무간판과 원목덱까지 딱 카페 분위기다.


골목바람 식구들은 대표일꾼 조희재씨를 제외하고 모두 여성이다.
블로그 아이디까지 소개하자면 ‘엘리퀸’ 최종애(31), ‘골목시스타’ 황민지(26), ‘바람소녀’ 신정은(24)씨다. 골목바람 식구 중 최종애씨만 순수 공인중개사이고 나머지 3명은 사회복지사다. 조희재씨는 사회복지사·공인중개사 자격증 둘 다 보유하고 있다.

골목바람 블로그에 소개된 방들을 보면 대부분 주머니 얄팍한 사람들을 위한 방들이다. 보증금 기준 1백만원, 2백만원, 5백만원, 1천만원 단위. 중개수수료를 많이 받을 수 있는 ‘억’ 단위는 눈 씻고 찾아도 없다. 또 이제 독립생활을 시작한 젊은층이 알기 쉽게 계약시 주의할 점, 원룸 ‘사진발’에 속지 않는 법 등도 소개돼 있다.

“주거복지는 바로 우리들 자신의 문제이기도 합니다.”

전북 전주가 고향인 조희재씨는 자취생활이 8년째라고 했다. 강원도 강릉 출신인 종애씨도 원룸을 거쳐 지금은 동생과 함께 서울 송파구 잠실동에서 자취생활을 하고 있다.

“요즘 청년층이 어려움을 겪고 있는 주거문제를 특화시켜 사회복지에 접목시키고자 했어요. 저렴한 방이 절실한 사람들에게 정보도 줄 수 있고, 옛날 복덕방처럼 객지에서 홀로 살아가는 사람들을 이어 주는 구심점이 될 수 있다고 생각했어요.”

조희재씨는 경기도 부천의 같은 복지기관에서 일하던 황민지씨와 의기투합해 지난 4월 골목바람 문을 열었다. 신은씨는 골목바람이 문 연 후 들어온 ‘공채 1기’. 최종애씨는 2년반 가량 부동산중개사로 일하다 쉬던 차에 인터넷에서 골목바람 공고를 보고 착한 바람에 휩쓸린 ‘공채 2기’다.

희재씨는 ‘원룸의 메카’로 불리는 신림동 골목으로 낙점하게 된 이유는 월세 임대가 많고, 특히 젊은층의 주거수요가 몰린 곳이기 때문이라고 했다. 보증금 1백만원짜리 방은 어떤 수준일까.

“보증금 1백만원이면 월세는 37만원 정도예요. 전세 기준으로 5천만원 정도죠. 크기는 10~13평방미터 정도로, 둘이 살기 버겁죠.”


조희재씨는 2030세대가 주요 수요자인 월세 상승의 일차 원인은 수익형 부동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깔끔한 외양을 위해 돈이 투자될 수밖에 없고, 투자된 돈이 있으니 상승할 수밖에 없다고 했다.

그는 최근 등장한 도시형생활주택도 대안처럼 얘기하지만 실제로 같은 크기를 놓고 볼 때 기존 원룸보다 가격이 더 높다고 지적했다.

조희재씨는 “공급만이 대안이 아닌 것 같다”며 바우처제도 도입을 고려해야 한다고 말했다.

“학업과 취직 때문에 젊은층이 끊임없이 지방에서 서울로 올라오고 있어요. 그렇다고 억척스레 살아온 세대인 집주인에게 세금을 부과하는 것도 저항에 부딪힐 겁니다. 그보단 바우처제도를 통해 월세 지원을 한다면 원룸 투자심리를 위축시키지 않고, 방을 구하는 입장에서도 덜 힘들 것 같습니다.”

골목바람 식구들이 주거복지 실현이란 꿈을 펼친 지 7개월째. 지금까지 이곳에서 성사된 계약은 1백20건 정도다.

“아직 성과를 꼽긴 어려워요. 하지만 공통체를 만든다는 우리 핵심철학을 차근차근 실천해 가고 있습니다.”

골목바람 식구들은 하고 싶은 일이 많다. 이곳을 거친 월세입자들이 뭉쳐 대형마트에서 생필품을 공동구매하거나 반찬을 만드는 것도 그런 일 중 하나다. 농촌의 빈집 주인을 찾아주어 농촌 공동화 문제도 해결하고, 내집마련의 꿈도 이루는, 동시에 두 가지를 해결하는 방안으로 생각하고 있다.

지역의 소외계층에게 따뜻함을 선사하고 싶기도 하다. 그래서 골목바람 식구들은 11월 19일 청년 세입자들과 함께 동네 어르신들을 모시고 서대문 청춘극장으로 서커스 구경을 다녀오기도 했다.

“지금 청년층 평균 급여가 1백만~1백20만원 수준인데, 월세·전기료 등 주거비용만 40만~50만원입니다. 생활비까지 지출하면 인간적인 생활을 할 여유가 없습니다. 월세가 수입의 40~50퍼센트란건 비정상적입니다.”

조희재씨는 “청년층 개인 책임을 따지지만 능력을 키워 급여를 높여 갈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되겠느냐”고 반문했다. 주거문제는 결국 삶과 밀접한 문제여서 결혼, 출산에 영향을 주고 집 구입 의지를 꺾어 버리고 있다. 그래서 집주인의 자선에 의지하기보다 정부 개입이 필요하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조희재씨는 최근 정부가 발표한 대학생 임대주택 내용을 보니 자신의 고객들 중에 해당하는 분들이 없더라고 지적했다. 신입생은 구할 수도 없고, 군대 가면 끝난다는 것이다. 그는 현장에서 지켜보니 가장 큰 문제가 오롯이 본인 능력으로 해결해야 하지만 능력이 되지 않는 ‘차상위계층’의 청년들이란 지적도 했다.

골목바람 식구들은 언젠가 사회적기업으로 인증받을 수 있기를 희망하지만 당장은 그 틀에 맞추고 싶지는 않다고 했다. 그보다 더 절실한 게 있다. 청년층을 위한 게스트하우스다.

“잠시 일자리를 잃거나 해서 월세 보증금을 빼야 할 경우 어떤 분들은 고시원이나 모텔 등에서 장기투숙도 해요. 하지만 그런 경우 소외감만 더 커집니다. 청년층이 자존감을 지키며 잠시 쉬어 갈 수 있는 게스트하우스를 만들고 싶습니다.”

꿈을 말하는 조희재씨가 훈훈하게 웃었다. 이렇게 착한부동산 골목바람이 있는 한 보증금 1백만원짜리 방에 들어가도 힘이 날 것 같았다.

글과 사진·박경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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