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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생활









제2회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한국 야구대표팀 김인식 감독의 “나라가 있어야 야구도 있다”는  한 마디는 큰 파장을 일으켰다. WBC 대회에 출전한 선수들의 투지는 그 어느 때보다 빛났고, 국민들도 절대적 응원을 아끼지 않았다. 이명박 대통령조차 “선수들의 나라사랑하는 마음이 준우승이라는 기적을 일궜다”고 격찬했을 정도다.

2009 세계피겨스케이팅선수권대회에서 우승한 김연아 선수의 모습도 화제였다. 애국가가 울려퍼지는 시상대에서 태극기를 보며 눈물을 흘리는 모습은 국민들에게 깊은 감동을 안겨주었다. 그가 태극기를 몸에 두르고 활짝 웃는 광경도 국민들의 애국심을 자극하기에 충분했다.

스포츠계에서 나라를 위해 투혼을 불사르는 모습은 과거에도 흔했다. 올림픽에서 금메달이 확정되는 순간 태극기를 손에 들고 경기장을 도는 것은 정형화한 의식의 하나였다. 하지만 이번 한국 야구대표 선수들과 김연아 선수는 이전의 올림픽 국가대표 선수들과 다르다. 이들은 ‘몸이 곧 돈’인 프로선수이고, 개성 강하고 자유분방한 1990년대생이다. 국가보다는 ‘개인’과 ‘글로벌’이 더 익숙한 세대다. 그런데도 이들의 나라사랑은 일제치하 독립군의 애국열정 못지않다.

젊은 세대의 나라사랑이 뜨겁다. 2002 한일 월드컵을 계기로 두드러지게 나타난 현상이다. 이들은 대형 태극기를 몸에 두르고 경기장과 길거리를 누비는가 하면, 태극기로 옷을 만들어 입거나 태극 문양으로 몸을 페인팅한다. 태극기가 응원도구나 장식품으로 사용된 것이다. 그뿐만이 아니다. 이들은 누가 시키지 않아도 목청껏 “대한민국”을 외치고, 우리나라를 대표해 출전한 선수들에게 ‘몸과 마음을 바쳐’ 충성을 다한다.

사실 이런 모습이 기성세대에게는 당혹스러울 수도 있다. 기성세대에게 태극기는 구국의 결의를 다지는 비장함, 함부로 다뤄서는 안 되는 신성함 그 자체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금의 젊은 세대는 다르다. 식민역사, 전쟁, 독재 등 구속과 억압을 겪지 않은 세대다. 어쩌면 대한민국에 자부심을 느끼는 첫 번째 세대일지도 모른다. 따라서 이전 세대에게 애증의 대상이던 태극기가 이들에게는 자랑스러운 태극기일 뿐이다. 미국이나 유럽에서 볼 수 있었던 모습이 우리 젊은이들에게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우리나라도 이젠 나라사랑의 성숙단계로 접어들었다는 방증인 셈이다.

젊은 세대의 나라사랑에는 좌와 우, 진보와 보수가 따로 없다. 보수단체의 집회에 태극기가 등장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런데 촛불집회에서조차도 태극기가 빠지지 않고 등장한다. 정치와는 무관한 스포츠 행사는 더 말할 것도 없다.

신진욱 중앙대 사회학과 교수는 이런 현상을 ‘헌정 애국주의’라고 이름 붙였다.
“2000년대 들어 시민들, 특히 청소년과 젊은 세대들은 대한민국이라는 특수한 정치공동체와 자신을 긍정적으로 동일시하는 동시에 민주주의와 시민적 자유, 사회적 연대라는 보편적 가치를 추구하는 집단행동에 참여하고 있다. 여기서 반공주의적인 국가정체성이나 저항적 민족주의와 구분되는 새로운 집단적 정체성이 부상하고 있다. 바로 헌정 애국주의다.”




[SET_IMAGE]2,original,right[/SET_IMAGE]젊은 세대의 나라사랑은 인터넷상에서도 활발히 전개되고 있다. 이른바 사이버 의병들의 활약이다. 세계국학청년단(회원 1만명)은 아예 사이버 의병을 자임하며 나라사랑 운동을 펼치고 있다. 인터넷 다음의 독도사랑동호회도 독도 문제가 터질 때마다 목소리를 높인다.

중국의 동북공정에 맞서 ‘고구려 지킴이’를 자처한 인터넷 카페들도 여럿 생겨났다. 이들은 인터넷상에서 동북공정의 허구성을 전파할 뿐 아니라, 3·1절 태극기 몹 행사(태극기 문양이 박인 옷을 입고 갑자기 나타나 독립만세를 외치는 퍼포먼스)를 벌이기도 한다. ‘한류열풍 사랑’ 카페는 그 성격은 조금 다르지만 한국을 사랑하고 한국의 위상을 세계에 알린다는 점에서는 사이버 의병들이다.

글로벌 네트워크 시대에 애국주의는 언뜻 어울리지 않아 보인다. 세계화는 분명 경제적 민족주의를 약화시켰다. 하지만 문화적 민족주의는 영역과 이슈에 따라 약화되기도 하고 강화되기도 한다. 세계화만큼이나 지역화도 강해지기 때문이다. 지역은 우리들이 발을 딛고 살아가는 터전이므로.




패션컨설턴트 김소희 씨는 세대를 이어 내려오는 나라사랑 열기에 대해 “‘모두 함께(all together)’라는 우리나라 특유의 정서에서 기인한다”는 색다른 진단을 내렸다. 외환위기 이후의 금 모으기 열풍, 충남 태안 기름유출 사고 때 자원봉사자들의 행렬 등은 ‘모두 함께’라는 공동체 의식의 발현이라는 것이다. 아주 오래 전부터 집안은 물론 마을의 대소사를 함께 해결해온 우리에게 ‘모두 다함께’라는 인식은 매우 강하고도 익숙하다.

“경기장 또는 거리에서의 대규모 응원도 마찬가지다. 일일이 연습하지 않아도 우리는 본능적으로 무엇을 해야 하는지 저절로 알게 된다. 손뼉을 쳐도 금세 박자가 맞는다. 다음에 나올 구호들도 쉽게 예상할 수 있다. ‘모두 다함께’라는 공동체 의식이 통하는 순간 우리는 행복감과 안도감을 느끼게 된다.”
젊은 세대의 나라사랑은 ‘자랑스러운 대한민국’에 대한 이심전심으로 발랄하게 표현되고 있다. 

글·최호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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