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으로 바로가기

문화/생활

최악의 가뭄 현장 태백과 정선을 가다




“총성 없는 전쟁을 치르고 있는 심정입니다.” 지난해 9월 이후 극히 저조한 강수로 극심한 가뭄에 시달리고 있는 강원 태백시민들은 지독한 물 전쟁을 치르고 있다. 적게는 하루 3시간에서 많게는 6시간씩 제한적 급수가 이뤄지고 있는 것. 이 때문에 식수는 물론 생활용수가 턱없이 부족해 주민들이 겪는 불편은 이루 말로 표현하기 힘들 정도다. 물이 제때 안 나오면 수세식 화장실은 ‘푸세식’으로 변하고, 빨래도 헹굴 때를 제외하곤 깨끗한 물을 쓰지 못한다. 고원지대라 더 추운 태백이지만, 시민들은 온수도 마음대로 쓰지 못하고 있다.

지난해 가을에 이어 겨울까지 가뭄이 계속되자 태백시는 올해 1월 중순부터 제한급수를 실시해왔다. 하지만 최근까지도 눈, 비가 거의 내리지 않아 하루 한 번 실시하던 제한급수마저 이틀에 한 번꼴로 변경해야 할 형편이라고 한다.

“가뭄이 더 심해지면 하루 한 번 나오던 물이 이틀에 한 번 나온다고 합디다. 화장실이 제일 문제인데, 물 때문에 하루하루가 전쟁이에요. 빨래도 한 번 쓴 물을 다시 써야 하고…. 왜 이렇게 비가 안 오는지….”

태백시 삼수동에 사는 김진택(62) 씨는 마른하늘을 가리키며 원망스런 표정을 지었다. 공영주차장 관리원인 그는 “가뭄 때문인지 올해는 관광객도 줄었다”고 했다. 매년 겨울이면 눈 내린 태백산 설경을 보러 많은 등산객이 찾았고, 눈 축제와 스키를 즐기려는 관광객들로 붐볐는데 이번 겨울엔 관광객들의 발길이 예년에 비해 뜸했다는 것.

태백산 눈축제로 유명한 태백시는 올해 극심한 가뭄 탓에 눈이 많이 내리지 않아 축제 행사장 인근에서 물을 끌어다 인공눈으로 겨우 축제를 치렀다고 한다.

2월 27일. 4년 만에 다시 찾은 태백시의 풍광은 전혀 달랐다. 2005년 2월 말, 태백산 등산을 위해 찾았던 태백시는 도시를 둘러싸고 있는 산마다 눈이 수북이 쌓여 있었고, 나무들엔 눈꽃이 피어 장관을 이뤘었다. 그러나 이번에는 응달에 잔설이 조금 남아 있을 뿐 나무들이 앙상한 가지를 그대로 드러내 휑한 느낌마저 들었다.




 
태백시내 문화예술회관 근처에서 어린이집을 운영하는 이미영(44·여) 원장은 “물이 제대로 안 나오니까 기본적인 생활조차 힘들다”고 했다. 그는 “저녁 6시부터 밤 9시까지 3시간 동안 이뤄지는 제한급수 때 고무 물통에 물을 받아놓고 쓰는데 아침 출근 때마다 찬물을 데워 세수를 해야 하는 것이 너무 불편하다”고 말했다.

“물이 원활히 공급되지 않으면 온수를 쓸 수가 없어요. 아침마다 물 데워 세수하고 머리를 감아야 하는 것도 불편하지만, (어린이집) 아이들은 손을 자주 씻어야 하는데 그때그때 물을 데워야 하는 것도 그렇고, 대소변을 보면 물을 계속 부어줘야 하는 것도 그렇고…. 물이 안 나오는 불편은 경험하지 못한 분들은 짐작하기 어려우실 거예요.”

어린이집 복도에는 2ℓ짜리 생수 6병이 한 묶음으로 돼 있는 생수 100여 묶음이 들어차 있었다.

“그래도 먹는 물을 많이 지원해주셔서 큰 어려움은 없는 편이에요. 어린이집에는 아이들이 많으니까 조금 더 지원해주신 것 같아요.”

600병이나 되는 생수를 급수차에서 어린이집에 내려놓는 것은 군 장병들이 도왔다고 한다. 이 원장은 “태백에는 물난리가 나도 작게 나고, 가물어도 이렇게까지 심하지 않았는데 올 가뭄은 유례가 없었던 것 같다”고 했다.

가뭄으로 큰 불편을 겪고 있는 태백시민들 사이에서는 ‘태백산 정상 천제단 주변 돌담을 사이비 교주가 무너뜨려 액운이 들어 비가 안 온다’느니, ‘황지연못을 보수하면서 작업하던 인부가 연못에서 나온 구렁이를 잡아 죽여 그렇다’는 둥 갖가지 근거 없는 풍문까지 나돌아 가뭄에 지친 민심이 더욱 흉흉해졌다.

제한급수가 시작된 이래 가뭄으로 고통받는 태백시민들을 위해 2월 말까지 전국 각지의 기관 단체가 생수 200만 병을 보내줬다. 그 덕에 주민들은 먹는 물 고통에서는 어느 정도 벗어난 모습이었다.

화전동 아파트에 살고 있는 변경희(33·여) 씨는 “아파트 관리사무소에서 생수 6병을 2, 3일에 한 번꼴로 지급해준다”며 “부족하긴 하지만 식수 불편은 덜었다”고 말했다.

변 씨는 “제한급수도 오전 6시에서 9시까지 3시간 동안 하고 저녁에도 6시에서 9시까지 더 나온다”며 “출퇴근 시간대에 물이 나와 생활하는 데 도움이 된다”고 했다.

고지대와 저지대가 혼재한 태백시는 제한급수 시간이 지대마다 조금씩 다르다. 저지대의 경우 급수시간대는 물론, 하루 종일 적은 양이긴 하지만 물이 나오는 곳이 있다. 반면 고지대는 제한급수 때에도 나오는 물의 양이 적어 큰 불편을 겪는다고 했다. 특히 고층 아파트의 경우 저층에서는 물이 비교적 잘 나오지만, 고층에는 물 공급이 원활하지 않다고 했다.

[SET_IMAGE]2,original,left[/SET_IMAGE]태백시 상하수도사업소 상황실 직원 박영조 씨는 “제한급수 시간에도 물이 제대로 공급되지 않는 고지대에는 비상급수차량으로 지원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처럼 극심한 태백시 가뭄 피해는 예년보다 턱없이 부족한 강우, 강설량 때문이기도 하지만 광역상수도 의존율이 높은 것도 주요 원인 중 하나다. 상수원으로 취수하고 있는 광동댐 저수위가 크게 낮아져 공급할 수 있는 물의 양이 제한적일 수밖에 없는 것. 태백 인근 정선군이나 영월군 등도 가뭄으로 고통받는 건 마찬가지지만, 태백시보다 정도가 덜한 이유는 자체 저수시설 등을 통해 보완적으로 용수를 공급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한국수자원공사 태백관리단에 따르면, 광동댐에서 취수해 하루 배분하는 용수는 태백시가 4만 5000㎥이고, 정선군이 1만 2000㎥, 삼척시 1만㎥, 영월군 3000㎥로 태백시의 광역상수도 의존율이 월등히 높다. 태백관리단은 광동댐 저수율이 23%로 낮아지자 지난 1월 15일부터 공급량을 50%까지 대폭 줄였다. 태백시가 제한급수를 시작한 것도 이때부터다.

제한급수에도 불구하고 가뭄이 계속돼 댐 저수위가 갈수록 낮아지자 태백관리단에서는 급기야 광동댐에 비상취수시설을 설치했다. 광동댐에 설치된 세 곳의 취수시설 가운데 두 곳은 이미 물 위로 드러났고, 남아 있는 한 곳의 취수시설도 곧 물 위로 드러날 상황에 처해 저수지 한복판의 물을 끌어다 공급하기 위해서다.

태백관리단에서 광동댐으로 향하는 길목에는 골지천이 따라 흐르고 있다. 하지만 골지천은 강바닥을 훤히 드러낸 채 메말라 물 한 방울 흐르지 않았다. 어떻게 보면 자갈로 된 도로라는 느낌마저 들 정도였다.

수자원공사 강원본부 함영근 차장은 “광동댐에 설치한 비상취수시설이 사용되지 않고 해갈이 되기를 바랄 뿐”이라며 “비상취수시설은 말 그대로 최악의 상황을 대비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비상용수를 취수하게 되면 댐 저수지 퇴적물 등이 따라 올라올 가능성도 없지 않아 깨끗한 물을 공급하기 어려울 수도 있다고 한다.



 
태백시내 중앙에 자리 잡은 황지연못 주변 풍경은 태백시의 심각한 용수난을 실감케 했다. 부족한 용수를 보충하기 위해 낙동강 발원지인 황지연못의 물까지 취수하고 있었던 것. 황지연못에서 급수차량에 취수를 하고 있던 한 인부는 “16t, 20t 차량이 한 팀을 이뤄 2교대로 하루 5번과 6번씩 총 22차례 황지연못 물을 취수해 정수장으로 실어 나른다”고 했다. 한 태백시민은 “루사 같은 큰 태풍이라도 한 차례 지나갔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가뭄으로 겪는 고통이 오죽하면 자연재해의 대명사인 태풍까지 기다릴까 싶었다.

태백에서 승용차로 20여 분쯤 달려 두문동재 터널을 지나면 정선군이 나온다. 긴 터널을 지나자마자 도로 한쪽에 ‘비상급수 중’이라는 안내문과 함께 긴급급수차량이 눈에 들어왔다. 정선군의 고지대 주민들도 가뭄으로 고통받고 있는 것은 매한가지다. 고한읍으로 들어서자 사정은 조금 나아 보였다. 개울가에 적은 양이지만 냇물도 흐르고 있었다.

고한읍내의 한 가게에 들러 급수 사정을 물었다. “저녁 6시부터 다음날 아침 10시까지 물이 나온다”고 했다. 비록 제한급수가 실시되고는 있지만 태백시보다는 한결 여유가 있어보였다. 그러나 태백과 정선의 극심한 가뭄은 인근 영월군에서조차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었다. 한여름 래프팅으로 유명한 동강 역시 ‘어떻게 저곳에서 래프팅이 가능할까’ 싶을 정도로 강은 바닥을 드러낸 채 말라 있었다.

글·사진 구자홍 기자




지금 정책주간지 'K-공감' 뉴스레터를 구독하시고,
이메일로 다양한 소식을 받아보세요.
구독신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