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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생활








 

2006년 12월부터 복원 공사를 시작한 광화문이 3년 8개월의 긴 여정을 마치고 8월 15일 제65주년 광복절에 국민의 품으로 돌아왔다. 7미터 돌기둥 위에 13미터 높이의 복층 누각. 광화문은 일제에 의해 훼손된 아픈 역사를 딛고 1865년 고종 때 중건 당시의 위용을 그대로 담은 목조건물로 다시 태어났다.

복원된 광화문에서 가장 눈에 띄는 부분은 새로운 현판이다. 1968년 콘크리트 복원 당시 원래의 모습을 알 수 없어 박정희 전 대통령의 친필을 기초로 만들어 걸었던 광화문 현판이 이번에는 고종 중건 당시의 모습으로 되돌아갔다.

1900년대 초의 유리 원판 사진을 디지털로 복원해 제작한 광화문의 새 현판은 고종 때 공사 책임자였던 훈령대장 겸 영건도감제조 임태영(任泰瑛)의 글씨다. 각자장(刻字匠·중요무형문화재 106호) 오옥진 선생이 글씨를 새겼고 단청 채색은 단청장(丹靑匠·서울시무형문화재 31호) 양용호 선생이 맡았다.





 

복원된 광화문은 기존 위치에서 남쪽으로 11.2미터, 서쪽으로 13.5미터 떨어진 곳에 세워졌다. 1968년 복원 당시 중앙청 축에 맞추면서 3.75도 틀어졌던 각도도 이번에 바로잡았다.

이에 따라 복원된 광화문은 고종 중건 때처럼 흥례문, 근정문, 근정전까지 일렬로 배치됐다. 광화문의 서까래(椽木)는 1968년 복원 때 크기가 15센티미터로 얇아 비례가 잘 맞지 않는 문제가 있었지만 이번 복원에서는 이 역시 21센티미터로 바로잡았다. 지붕과 처마를 떠받치는 서까래의 크기가 커짐에 따라 문루(門樓)가 훨씬 더 안정감 있고 웅장해 보인다.

안전진단 등을 위해 2008년 3월 이후 관람을 막아온 경회루도 8월 15일 일반 국민에게 개방됐다. 명성황후가 시해된 가슴 아픈 역사를 지닌 건청궁 내부도 함께 공개됐다. 이날 광화문과 경복궁은 5만~6만명의 관람객이 인산인해를 이룰 정도로 뜨거운 관심을 모았다.
 

글·김지영 기자 / 사진·조영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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