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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생활

<제46호>박찬욱 서울지방국세청장

[SET_IMAGE]2,original,center[/SET_IMAGE] 9급 공무원이었던 남자가 1급 서울지방국세청장에 올랐다. 학연도 지연도 없었다. 한국형 코드인사와는 거리가 먼 이번 임명은 기적에 가깝다. 생각해 보라. 공무원 9급에서 1급까지 오르는 것을. 그건 로또 당첨만큼이나 신기한 일이다. 헤아릴 수도 없는 조합의 확률이다. 이를테면, 조리퐁을 100봉지쯤 뜯어놓고, 그 중 한 알갱이에 ‘V’ 표시를 한 후, 그 숱한 조리퐁 알갱이 사이에서 V 표시를 찾는 일이라고나 할까. 낙타가 바늘구멍 들어가는 일이고, 부자가 천당에 갈 확률쯤. 한데 또 곰곰이 생각해 본다. 만일 조리퐁 100봉지의 알갱이를 일일이 다 찾아내 V 표시를 찾아낸 거라면? 밤낮 가리지 않고 열심히 일해서 V 표시를 거머쥐었다면? 그것은 더 이상 기적일 수 없다. 노력의 대가라면 당연한 수순일 뿐이다. 그랬다. 박찬욱 청장 임명을 두고 ‘기적’이 아닌 ‘당연’이라 말하는 것은 그 때문이다. 그가 쥔 아름다운 키워드는 ‘성실’이었던 게다. 실력과 버무려진 성실은 향 좋은 꽃인 양 만개해 2006년 여름, 국세청을 물들이고 있다. “후배들이 맡은 일을 열심히 해준 덕에 제가 결실을 보게 됐습니다. 역시 가장 고마운 사람은 후배들이지요. 중책을 맡겨준 전군표 국세청장과 대통령께도 감사드립니다.” 인터뷰는 무슨 인터뷰냐면서 손사래 치던 박 청장. 기어코 다른 이에게 덕을 돌리고 나서야 조금 편안해진 듯 보였다. 하긴 늘 하는 말이기도 했다. ‘그저 시키는 일을 했을 뿐’인데 뭐 특별한 게 있겠냐며 자랑은 일절 없는 사람. 그것이 그의 인품이고 실력이었다. 늘 조용히 일을 진행하면서, 또 조용히 일을 끝마쳤다. 그가 나타나면 일에 관한 한 걱정할 게 없었다. “원칙이라면 그런 거겠죠. 내가 맡은 일은 상사는 물론 동료나 부하들에게도 전혀 부담이 되지 않도록 해야겠다는 생각. 그런 것들이 저를 더 열심히 일하게 만들었습니다. 제 일이고 또 모두를 위한 일이라고 생각하면 어려울 게 없었습니다.” [SET_IMAGE]3,original,left[/SET_IMAGE]38년간 열여섯 분의 청장을 모시면서도 늘 최고의 서포터였던 박 청장. 그에게는 퇴근시간이 별 의미가 없다. 오늘은 7시까지만 일해야지 싶다가도 한 가지 해결할 일이 생기면 정신없이 몰두하는 스타일인 까닭이다. 6급 주사 시절, 사무관 시험을 치르고 난 직후에도 그랬다. 발령을 기다리느라 대충 일하기 십상인데도 그는 달랐다. 밤 12시까지 사무실을 지켰다. 그렇게 몰두해 있을 때는 누가 곁에서 서성여도 몰랐다. 시험을 앞둔 학생이라도 저러지는 못할 텐데 싶은 집중이었다. 그것을 두고 그는 ‘열정’이라 했다. “후배들에게도 ‘열정’을 갖는 것이 중요하다고 늘 말합니다. 어떤 자세로 임하느냐가 전부일 때도 있습니다. ‘열정’을 품으면 누구의 지시를 기다리지 않게 되지요. 더불어 일에 필요한 세법이나 회계학은 물론 국제조세나 새로운 금융상품 등에 대해 계속 공부해나가는 게 됩니다.” 이제껏 38년을 일하면서 힘든 것이 왜 없었을까. 하지만 그는 그 질문에 딱 잘라 말한다. 열정 하나면 충분하다, 공무원이 자기 힘든 게 뭐 중요한가, 맡은 일 깔끔하게 처리하면 힘들 게 뭐 있느냐. 어떤 상황도 담담히 받아들이며 최선을 다했기에 지금의 그가 존재하는 것이다. [B]효도하는 마음이 평생의 뒷심 [/B] 곱게 자라 어려운 게 없어서인가 보다. 혹자는 그의 ‘열정만 있으면 못 할 게 없다’는 지론을 의심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건 모르는 말씀이다. 그의 유년시절은 그리 평범하지 않았다. 호젓한 시골, 용인시 수지에서 태어난 그는 백일도 채 안 돼 부친을 여의었다. 당시 서울수도국에 근무하던 부친의 갑작스런 죽음은 가족 모두에게 충격이었다. 그렇게 부친에 대해 별다른 기억 없이 지냈다. 그 시절엔 다들 그러했기에 유별날 건 없었다. 다만 홀어머니와 조부 밑에서 지낸 유년은 가난했다는 것. 홀로 가정을 지키면서 농사일을 하시는 어머니를 보는 게 늘 안타까웠다. 한시라도 빨리 어머니를 쉬게 해드려야지 싶은 생각밖에 없었다. 숙부 댁에 기거하면서 어렵게 고등학교를 졸업했다. “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었어요. 1968년 9급 세무공무원 공채 시험에 응시했고 합격했습니다. 어머니께 효도할 수 있겠다고 생각하니 기쁘더군요.” 진정 아이처럼 좋아했으리라. 어머니라고 다르지 않았을 게다. 하지만 삶은 참으로 모질고 야멸친 법. 그가 근무를 시작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어머니가 암으로 돌아가셨다. 그 슬픔을 어찌 다 말로 표현할 수 있겠는가. 그 후, 그야말로 주경야독하며 대학을 졸업했다. 자신이 똑바로 서는 것, 좋은 공무원이 되는 것만이 효도라고 생각했다. 남보다 빠른 승진은 그러한 마음가짐 때문이다. 그래서다. 그런 환경이었기에 그는 ‘열정’의 힘을 믿는 것이다. 늘 근면 검소한 까닭도 마찬가지다. 어려운 시절의 습관이기도 했다. 그렇지만 인색함과는 거리가 멀다. 동료나 후배들과 국밥 한 그릇을 먹더라도 밥값은 꼭 그가 치른다고 했다. 그와 식사하러 갔을 때, 지갑을 먼저 꺼내는 사람이 거의 없다는 소문이 돌 정도로 그는 너그러웠다. 돈보다 사람인 까닭이다. “끝까지 고향에 남아 농사지으시던 어머니 덕에 제법 많은 재산이 생겼습니다. 용인 수지의 조그만 땅이 분당신도시 개발 이후 ‘택지개발지역’에 포함됐던 것입니다. 그 보상금을 받아들고는 어머니 생각에 얼마나 울었는지 모릅니다. 아마도 경제적으로 어려움 없는 청렴한 공직자가 되라는 어머니 선물이 아닐까 싶습니다.” 그렇게 홀로 남아 지내던 어려운 시절. 그는 공부와 일로, 그리고 어머니를 그리워하는 마음으로 하루하루를 지냈다. 가장 힘들었지만 또 치열했던 순간이기도 했다. [B]친근한 세정을 꿈꾸는 덕장[/B] 그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엄정하게 업무를 집행하는 것이다. 그러다보니 주위로부터 오해를 받는 경우도 있다. 사실이나 진심과는 다르게 닿는 감정들은 어디에서나 존재하는 법. 그럴 때면 아무리 굳건한 그라도 힘이 빠진다. 하지만 그는 되뇐다. ‘시간이 지나면 이해하게 되겠지. 진심은 통하는 법이니까.’ 그러기를 몇 번 되풀이하면서 다시 최선을 다한다. “지난 38년 동안 사회 환경도 급변했고, 그 과정에서 어려움이 참 많았습니다. 한데, 그렇게 변화가 심하고 어려움이 많을수록 힘이 났습니다. 더 긍정적으로 받아들이게 되더군요. 그런 긍정성이 저를 지금의 이 자리에 오르게 한 뒷심인지도 모르겠습니다.” [SET_IMAGE]4,original,right[/SET_IMAGE]그래서 그는 후배들에게 끈기와 긍정성을 부탁한다. 더불어 납세자를 배려하는 마음이 덧붙여져야 진정한 국세공무원으로 거듭날 수 있음을 강조한다. ‘형 같은 사람, 늘 한결 같은 사람’의 충고는 직원들에게 전언과도 같았다. 큰소리로 호통을 치기보다는 이러면 어떠냐고 부드럽게 제안하는 그는 직원들의 우상이었다. 9급에서 5급 사무관까지 국세청의 평균 승진 기간이 32년인 데 비해, 박 청장은 그 절반 수준인 16년 11개월인 까닭도 그를 우상의 반열에 올리는 충분한 이유였다. 5급에서 4급 서기관까지도 9년 8개월로 평균 승진 기간(11년)을 1년 이상 줄였다. 그뿐인가. 6급으로 일할 때는 세무사 시험에 합격했고, 초임 사무관 때는 국세공무원 교육원 교관으로 후배 교육에도 앞장섰다. 상황이 이러하고 보니 그는 직원들의 역할 모델일 수밖에. “후진 양성에 힘쓰고 싶습니다. 후배들을 바로 서게, 이제껏 제가 체득한 노하우를 아낌없이 물려주고 싶습니다. 열심히 일한 대가로 청장이 될 수 있음을 보여주는 후배들이 많았으면 좋겠습니다. 많은 후배들이 또 자신의 후배들에게 본이 되고 역할 모델이 되길 바랍니다.” 아마도 이런 그이기에 덕장과 지장의 면모를 겸비한 청장이라 했나보다. 모난 데가 없는 성격이라 ‘적이 없는 사람’으로 유명하다는 박 청장은 과연 덕장이었다. 그렇지만 그를 그저 ‘호인’으로만 생각하면 곤란하다. 그는 정통 국세공무원으로서 전문가적 브랜드를 갖고 있는 사람이다. 법과 원칙에 따라 엄정투명하게 일을 집행하되, 아무 무리가 없도록 매끄럽게 일 처리하기로 정평이 나있다. ‘국민이 공감하는 따뜻한 세정’을 만들기 위해 세무조사 시행 건수를 축소시키고, 그 대신 철저한 조사를 실시하겠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양보다는 질을 우선해서 공정하면서도 친근한 세정을 만들겠다는 것이다. 이처럼 국세공무원으로서의 근성과 고집을 갖고 있으면서도 따뜻함을 갖고 있는 공무원, 말과 행동이 일치하는 사람, 말단 9급에서부터 시작하여 1급 서울지방국세청장에 오른 박찬욱이 바로 그다. [RIGHT]우승연 객원기자[/RIGH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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