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생활

여수는 시드니 못지않은 아름다운 항구다.
항구는 ‘우주적인 자궁’의 딴 이름이라고 내 사전에 기록되어 있다. 들락거리는 배들이 남성이라면 항구는 여성이다. 항구는 소비적이면서도 생산적인 시공이다. 먼 세계의 바다와 미래를 향해 활짝 열려 있다. 바다가 인류 미래의 블랙박스라고 한다면 항구는 그 미래 꿈의 초입인 것이다.
여수 바닷가에서, 먼바다로부터 달려온 파도와 갯바위가 만나는 것을 보면 신화의 속살이 보인다. 신화는 살아 꿈틀대는 여성성의 바다와 남성성의 육지가 맞닿은 부위에서 생성된다.
여수라는 항구도시와 여수 앞바다에 널려 있는 섬들을 깊이 읽어 보면 바다와 생명과 세계와 우주가 동의어라는 사실을 발견하게 된다.
바닷물은 증발하여 구름이 되고 구름은 비가 되어 육지의 산과 들에 뿌려지고 물은 지표면을 타고 흐르거나 지하수가 되어 바다로 되돌아간다. 순환이다. 바다의 해류와 세상의 모든 생명체와 우주가 다 순환한다는 점에서는 똑같은 것이다.
여수는 낭만적인 섬이다. 여수는 아름다운 항구인 여수로 읽히기도 하지만, 먼 곳에서 찾아온 나그네가 바닷가 여관방에서 한등을 밝히고 싱싱한 생선회와 소주와 고독을 즐기는 여수(旅愁)로 읽히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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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곡 ‘여수’는 이렇게 시작된다. “깊어 가는 가을밤에 낯설은 타향에 외로운 맘 그지없이 나 홀로 서러워….”
이 세상 살아가는 사람 가운데 나그네 아닌 사람이 있으랴. 여수항은 젊은 시절 내 동경의 대상이었다. 교통이 요즘처럼 발달하지 않은 그 시절, 나는 내 고향 장흥의 섬에서 서울에 갈 때 영산포역을 경유하여 기차를 타고 서울로 가는 것이 아니고, 회진항에서 여객선을 타고 여수로 가서 밤기차를 타고 서울로 가곤 했다. 기차시간을 앞두고 나는 여수항의 해안통에서 저녁밥을 먹고 갈매기가 날개에 황혼을 실은 채 나는 것을 보고, 장군도를 휘돌아 들어오는 통통배들을 바라보고 있곤 했다.
인문학적인 탐사를 하면서 여수를 둘러보면 그 맛이 더욱 좋을 수 있다. 여수는 좌수영이 있던 곳이다. 그 유물은 진남관이라는 거대한 모습으로 남아 있다. 이순신 장군이 이곳을 거점으로 해서 남쪽 바다 전체를 지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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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는 여수에서 세계박람회가 열리고 있다. 그것을 위해 많은 돈을 투자했고, 새로운 길이 여수를 향해 뚫렸고, 새로운 다리들이 여수를 향해 놓였다. 이 땅 사람들은 물론 세계 사람들의 발길이 줄을 잇고 있다. 여수에 가면 살아 있는 바다 숨 쉬는 연안을 확인할 수 있다. 여수는 이제 세계를 향해 날아간다.
여수는 돌산도를 비롯하여 많은 섬을 거느리고 있다. 여수에서 네트워크로 연결되어 있는 그 섬들에는 가두리 양식장, 전복 양식장이 많다. 일반 어망들로 인해 생산된 도미 우럭·농어·낙지들이 여수로 실려 나간다. 그 섬에서 생산되는 수산물이 여수를 키우고 있다.
나는 광주와 서울에서 살 때 혼자서 여수 여행을 하곤 했다. 해안통 식당에서 바다를 내다보며 서대회에 소주를 한잔 걸치곤 했다. 샛서방(금풍쉥이) 고기를 먹기도 했다. 그것은 도미의 일종인데, 하도 맛이 좋아서 여자들이 자기 남편에게 주지 않고 감추어 두었다가 정부에게만 준다는 고기다.
여수에서 가 볼 만한 곳은 오동도다. 거기에서는 동백꽃을 보는 재미가 있다. 그곳은 혼자서 사색을 하며 거닐어도 좋고, 정분 있는 사람과 함께 걸어도 좋다.
돌산도와 여수 사이에 다리가 놓인 다음에는 구불구불한 차도를 따라 차를 달려 향일암까지 가는 노정도 좋다. 향일암은 돌산도 끝의 절벽 위에 있는 자그마한 암자다. 암자 마당에 서서 일망무제로 탁 트인 바다를 보는 운치는 혼자서 맛보기 아깝다.
인근 여관방에서 자고 이튿날 아침 해 떠오르는 것을 보는 것도 의미가 있다. 많은 사람이 떠오르는 해를 신앙한다. 바야흐로 바다 저편에서 솟아오르는 해를 가다듬은 마음으로 소원을 빌면서 새로운 삶을 얻게 된다.
여수를 중심으로 널려 있는 섬을 둘러보는 것도 좋다. 고기잡이하며 사는 어부들의 모습을 살피고 그들과 대화를 나누는 것도 여행의 한 멋이고 보람이다. ‘시인과 어부’라는 시를 쓴 적이 있다.
묽은 안개너울이 피어오르는 바닷가에서 낚시질하는
늙은 어부에게 다가간 시인이 간절히 말했다.
좋은 시를 쓰고 싶소, 바다의 말씀을 들려주시오,
늙은 어부는 새끼손가락을 강물에 담갔다가
하늘로 들어올리고, 그 끝에 맺혔다가 떨어지는
물방울 한 개를 턱으로 가리키며 말했다,
물방울 관음보살은
속살이 훤히 비치는 고혹적인 성장을 한 채
오른손에 버들가지를 들고 왼손에 정병을 들고 있는데
그것은 버들가지로 정병 속의 생명수를 묻혀
중생들에게 뿌리려는 몸짓이오,
바다가 그러하듯
천국은 한 개의 물방울에서 시작됩니다.
‘시인과 어부’ 전문
여수 바다와 마주 앉게 되면 당신도 시인이 될 수 있고 한 사람의 철학자가 될 수도 있다.
글·한승원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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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K-공감누리집(gonggam.korea.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