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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생활

베트남 국적이지만 한국사람 다 됐어요




태겟은 친구들 사이에서 ‘외국인’으로 통한다. 사실 틀린 말은 아니다. 국적이 아직 베트남으로 돼 있으니까. 감수성이 예민한 사춘기라 ‘외국인’이라는 별명이 자칫 거부감이 일거나 상처가 될 법한데 태겟에겐 문제가 되지 않는 듯하다. “절친(가장 친한 친구)이 몇 명이냐”고 물으니 망설임 없이 “열 명”이라고 대답한다.

태겟은 베트남 출신 어머니 응웬옥더이(33·이하 응웬)씨가 2007년 한국인 아버지와 재혼하면서 동생과 함께 정식 입양 절차를 거쳐 어머니를 따라 한국에 왔다. 엄밀히 말하면 태겟의 가정은 다문화가정이면서 입양 가정이다.

한국에 올 때 4학년이었던 태겟은 이제 중학교 3학년. 한창 공부할 시기라지만 태겟은 다른 친구들처럼 학원을 가는 대신 태권도장 가는 날을 제외하곤 학교가 끝나면 집으로 돌아와 몸이 불편한 아버지(신체장애 3급)와 식당일을 하는 어머니를 대신해 어린 동생들을 돌보거나 집안일을 돕는다. 이제 갓 돌이 지난 막냇동생의 기저귀도 갈아준다.


“동생들을 잘 돌봐주니까 막내는 태겟이 아빠인 줄 안다”는 게 어머니 응웬씨의 말이다. “동생들이 예쁘냐”는 질문에 태겟은 씨익 웃으며 동생들을 ‘아빠미소’로 끌어안는다. 부부싸움할 때도 아버지편을 든다는 태겟은 어머니 응웬씨가 “힘들다”고 하면 오히려 “조금만 기다리면 내가 훌륭한 사람이 돼서 예쁜 옷도 사주고 맛있는 것도 사주겠다”고 말하는 속 깊은 아들이다.

응웬씨는 “아빠가 성격이 꼼꼼해서 잔소리를 많이 하는데도 태겟이 아빠를 사랑하고 친아빠가 아닌데도 아껴주는 모습을 보면 눈물이 나온다”고 말했다.

아버지 김병용(51)씨는 “잔소리를 많이 해도 태겟에게 ‘넌 끝까지 내 자식’”이라고 말한다면서 “아직 한국 문화가 익숙지 않은 태겟에게 잔소리를 하면 부딪히는 부분도 있지만, 속이 깊고 착해서 잘 따라준다”며 고마워했다.

아직 한국말이 능숙하진 않지만, 태겟은 동네에서 인사성 밝기로 소문 나 있다. 얼마 전엔 한국공항공사가 주최한 다문화가정수기 공모전에서는 최우수상을 받았다. 하지만 “적응 초기에는 진통이 많았다”는 게 김씨의 설명이다.

“태겟은 이미 어느 정도 성장해서 한국에 온 경우라 문화 차이로 바로 밑의 동생 오안보다 더 힘들어했어요. 베트남에서는 5학년이었는데 한국 교과과정 수준과 적응을 고려해 4학년에 편입하게 됐지요. 그때는 적응기라 친구들에게 놀림도 당하고 싸우기도 많이 싸웠어요. 하지만 그때마다 저는 ‘싸우지 말라’는 말 대신 ‘싸울 거면 더 최선을 다해 싸워라’ 하고 말했어요. 어차피 한국 사회에 적응하려면 강해져야 했으니까요.”

김씨는 당시 툭 하면 맞거나 싸우고 들어오는 아들이 안타까웠다. 그래서 그런 아들의 스트레스를 풀어줄 무언가가 필요하다는 생각에 어려운 형편이었지만 축구와 태권도를 접하게 했다. 축구와 태권도는 베트남에서도 인기였던 터라 태겟은 큰 거부감 없이 운동을 시작할 수 있었다.


태겟은 2007년 입국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울산 카이사 유소년 축구교실을 시작으로 그동안 전국 대회 주전선수로 참가했다. 박성화 유소년 축구교실을 거쳐 현재 대현중학교 토요일 방과후 축구교실의 클럽리그전에서 주전으로 활약하고 있다. “축구를 하면서 성격이 많이 차분해졌고, 적응도 수월해졌다”고 아버지 김씨는 말했다.

“훗날 멋진 태권도 선수가 돼 베트남에 한국의 태권도를 제대로 알리자”는 뜻에서 시작한 태권도는 이제 태겟의 장래희망이 됐다.

태권도를 꾸준히 배운 결과 태겟의 실력은 현재 2단이다.



그간의 성적도 화려하다. 2009년 제12회 울산광역시 교육감기 태권도대회 라이트급과 울산광역시 시장기 태권도 대회 라이트급에서 1위를 차지했다. 지난해 11월에는 울산태권도협회 협회장기, 지난 3월 제13회 울산광역시 시장기 태권도대회 라이트급 1위 우승도 거머쥐었다.

“학과 성적이 그리 좋지 않고 운동을 좋아하니 대학은 체육특기자 쪽으로 생각하고 있어요. 태권도 선수가 되거나 경찰이 되고 싶어요. 경찰이 되려면 군대를 가야 하는데 아직 국적 문제가 해결되지 않았어요.”

태겟이 말끝을 흐리자 아버지 김씨가 말을 이어나간다.

“결혼이민자의 경우 본인 사인만 있으면 국적 포기와 취득이 가능한데, 입양아인 태겟과 오안의 경우는 좀 복잡합니다. 태겟과 오안 남매는 현재 한국 국적이 허가된 상태이나 베트남 국적 포기가 이뤄지지 않은 상태예요. 베트남 국적을 포기하려면 친부의 동의서가 필요하고, 국적 포기에 필요한 서류 등 비용도 1인당 1백30만원 정도로 만만치 않아요.” 강씨는 한숨을 쉬며 말을 이어갔다.

“오안도 급하지만 태겟은 대한민국 국적을 취득하지 못하면 자격 제한에 걸려 축구협회의 축구교실에도 다닐 수 없고, 8월에 있는 태권도 심판자격증을 따는 데 당장 문제가 생겨요. 두 아이들의 국적취득을 손꼽아 기다렸는데 12월 26일까지 베트남 국적 포기 확인서를 제출하지 않으면 한국 국적 허가마저 취소되는 상황이라 요즘 걱정으로 잠을 못 이룹니다.”


기초수급자에 신체장애 3급인 김씨는 그동안 불편한 몸으로 명함이나 인쇄물 제작 등의 일을 해왔지만, 현재는 사실상 무직이나 다름없다. 이런 상황에서 김씨 가정에 ‘베트남 국적 포기 비용’은 결코 적은 돈이 아니다.

“아내와 결혼 후 2명의 친자녀(아들·딸)를 낳았는데, 사춘기인 태겟과 오안이 본의 아니게 상처를 받을까봐 요즘 더욱 조심스럽다”는 김씨는 “하루빨리 이런 상황이 개선돼 태겟과 오안이 ‘외국인’이 아닌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의무를 다하고 정정당당히 살아나갔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전했다.

글과 사진·박근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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